강의 내용의 관점은 완전히 토론을 위한 것이었고, 제기된 개념도 `깍고 다듬은` 것이 아니라 거칠고 질박한 것이었다. 그런데 반영하고자 했던 실제를 떠나면 항상 상당한 거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면 실제의 모습과 다르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 스스로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견해까지 `모두 털어 놓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비교적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의 임무가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스스로 책을 통해서 학습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감히 미지의 영역으로 진군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교사는 앞장을 서야 한다. 난관을 돌파한 뒤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획득했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실제로 새롭게 돌진해 들어간 영역에서 그와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12, 한자는 한글로 바꾸었음)
고정적인 생활환경에서 성장하여 생리적 기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습관을 가지게 된 우리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리듬을 갖는다. 기억은 불필요한 것이다. "노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른다..."는 말은 `시간을 잊고 사는...`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진 나라가 망하고 한 나라가 부흥해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향토사회에서는 망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망각이 편안하다. 생활의 상궤를 벗어난 일이 있을 때에만, 망각이 두려울 때에만, 비로소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표시해 둔다. (47)
자기를 위해서 가(가정, 가족)를 희생시키고, 가를 위해서 족(부족, 민족)을 희생시키는 것 ...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을 반영하는 공식이다. 이와 같은 공식이 통하는 현실에서 만약 당신이 그의 행위를 가리켜서 `사`만을 생각하는 것이니 어쩌니 하면서 비난한다면, 그는 당신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족을 희생시킬 때에는 그것을 가를 위해서인데, 가는 그에게는 바로 `공`이기 때문이다. ... 차등적 질서 상황에서 `공`과 `사`는 상대적인 것이고, 어떤 테두리 안에 서 있는지에 따라서 그 내부를 향하고 있는 것도 `공`이 될 수 있다. (64)
"그렇다면 순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맹자가 말했다: "순은 천하를 마치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몰래 자기 부친을 업고 멀리 바닷가로 도망가서 숨어 살면서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자기 부친을 봉양하며 즐겁게 살고 천하의 일들은 잊어버렸을 것이다." (77)
단체구조의 사회에서는 같은 한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이로움을 같이 한다...`, 즉 `서로 동등하다...`. 그러나 맹자가 가장 반대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맹자는 "무릇 모든 사물마다 차이가 나는 것이 사물의 본성이다. 자네가 그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이 보는 것은 곧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라고 했다. 따라서 묵가...의 "사랑에는 차등이 없다..."라고 하는 주장은 유가의 `인륜의 차등적 질서...`와 정반대되는 것이므로, 맹자는 그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의 안중에는 아버지도 없고 군주도 없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80)
중국의 향토사회에서 `가`의 성격은 이 점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중국의 `가`는 지속성을 갖는 `사업사회집단`인데, 그 주축은 부자간이고, 고부간의 관계는 횡적이 아니라 종적이다. 부부는 `보조축`이다. `보조축`은 주축과 마찬가지로 결코 임시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의 필요 때문에 두 축은 모두 일반적인 감정을 배척한다. 내가 말하는 일반적 감정이란 기율과 대비되는 것이다. 모든 사업은 효율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효율을 추구하려면 기율이 유지되어야 한다. 기율은 사적인 감정인 관용을 배제한다. 중국의 가정에는 `가법`이 있는데, 부부간에는 서로 존경해야 하고, 여자는 `삼종사덕`의 기준을 따라야 하며, 부모와 자식 간에는 책임과 복종을 중시해야 한다. 이 모두는 `사업사회집단`의 특성이다. (68)
향토사회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오히려 개인의 생리적인 차이이다. 그 차이는 결코 현저한 유전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세대 간 상호 결혼하는 작은 `사회공동체...`에서 유전적 특성이 현저하게 차이가 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리적 차이를 영원히 갈라놓는 것은 남녀 양성이다. 인간은 양성의 차이를 몸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차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항상 간접적이다. 말할 수 있는 차이는 대개 표면적인 것에 한정될 뿐이다. 실제 생활에서 누구라도 이셩의 거리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차이의 내용은 영원히 추측되는 것일 뿐 몸소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95)
남녀유별의 경계는 중국 전통의 감정의 정향이 동성 방면으로 편향되어 발전하도록 하고 있다. 변태적인 동성애와 나르시시즘...이 어느 정도로 퍼져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향토사회에서 의를 맺는 조직, `동일한 날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동일한 날에 죽기를 바라는` 친밀한 결합은 감정의 정향이 동성 관계의 차원으로 발전해 나간 정도가 이미 매우 낮은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나타내고 있다. (98)
먼저 예치 사회는 <경화록>에서 묘사하고 있는 `군자의 나라`와 같은 우아한 사회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두고자 한다. `예`는 결코 `문명`, `자선`, `사람을 보면 인사하고`, `극악무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 역시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대단히 `야만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어떤 지역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장례 때 다른 사람에 의해 화장되는데, 그것이 예이다. ... 예의 내용을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아주 참혹한 것일 수 있다. 잔혹한지의 여부가 결코 예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103)
농촌에서 현행의 사법제도는 아주 특수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즉, 본래의 예치 질서를 타파하였지만 법치 질서는 유효하게 확립하지 못했다. 법치 질서는 단지 몇 개의 법률 조항을 제정하고 몇 개의 법정을 설립했다고 해서 확립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제도와 시설을 응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구조와 사상관념에서 한바탕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것을 개혁하지 않고 단지 법률과 법정만을 농촌에 들여놓는다면, 법치 질서의 좋은 점은 확립되지 않고 예치 질서를 파괴하는 병폐가 먼저 발생하게 된다. (119)
웅대한 계획과 전략을 가진 황권은 변경을 개척하고, 성을 쌓고 치수사업을 전개한다. 본래 이와 같은 것을 학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일종의 투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루즈벨트의 대규모 테네시 프로젝트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축적된 것이 없는 농업경제는 그와 같은 프로젝트의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충분한 잉여가 없기 때문에 원성이 자자하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황권을 난처하게 만든다. 그럴 경우 전도가 양양한 황권은 대내 압력을 가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때문에 비용은 더욱 증대되기만 한다. 진섭과 오광과 같은 무리의 봉기가 일어나고 천하가 혼란에 빠진다. 인민들은 도처에서 죽어나고, 인구는 감소한다. 그래서 오랜 혼란은 반드시 정리되고, 휴식보다 더 사람을 유혹할 것이 없는 국면이 형성되며, 황권은 백성을 기른다(養民)는 소위 `無爲`를 애써 추구하게 된다. (126)
향토사회로 돌아가도록 하자. 향토사회의 권력구조에서는 비록 민주적이지 않은 횡포권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또한 민주적인 동의권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권력 이외에도 교화권력이 존재한다. 교화권력은 민주적인 것도 아니지만 또한 비민주적인 전제도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권력이다. 그래서 민주와 민주가 아닌 척도로 중국의 사회를 가늠하는 것으 모두 옳기도 하고 모두 옳지 않기도 하며, 모두 일부 그럴듯한 측면도 있지만, 그러나 모두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반드시 하나의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에는 `장로통치`보다 더 좋은 개념을 생각해낼 수 없다. (136)
나는 열 살 때 고향 오강을 떠나 소주시에서 9년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각 문건의 본적 란에 줄곧 `상소성 오강`이라고 적었다. 중일항전 시기 운남에서 8년간 거주했지만 본적은 변하지 않았고, 운남 출생의 딸도 나의 본적을 따르고 있다. 딸 또한 아마도 평생 동안 자신의 본적을 `강소성 오강`이라고 쓸 것이다. 나의 조상은 오강에서 이미 20여 대를 살아왔지만, 우리 집의 등롱에는 `강하 비`라는 커다란 붉은 글자가 적혀 있다. 강하는 호북성에 있다. 지연으로 보았을 때, 내가 강하와 관계를 맺을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우리의 본적은 우리의 부모의 것을 따르는 것이고, 자신이 출생했거나 혹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며, 또 성과 마찬가지로 계승된다. 그것은 `혈연`이고, 따라서 우리는 본적은 `혈연의 공간적 투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42)
게다가 친밀한 공동생활에서 각자가 상호 의존하는 지점은 다면적이고 장기적이다. 따라서 서로 주고받는 것을 하나하나씩 명확하게 계산하여 되돌려줄 수가 없다. `친밀한 사회집단`의 단결성은 각 분자 모두가 서로 오랫동안 질질 끌면서 갚지 못하고 있는 인정에 의존한다. 친구들 사이에는 서로 서둘러 보답하는데, 그것은 마치 일부 자금을 투자한 것과 같이 나의 `인정`에 대해 상대방이 빚지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 친밀한 사회집단에서는 서로 인정을 빚지지 않을 수 없고, 또 `결산...`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서로 인정을 빚지지 않으면 상호왕래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결산` 또는 `청산`은 절교의 말과 동일하다. (144)
여기서 `문화영웅`이 나타난다. 그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고, 새로운 실험을 조직할 능력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그를 따르는 군중을 지배할 수 있고, 따라서 새로운 권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권력은 횡포권력과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착취 관계에서 확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의권력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가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로권력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통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세가 만들어낸 것이데, 이름이 없기 때문에 `시세권력`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152)
장로권력 하에서 전통의 형식은 반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그 형식을 인정하기만 하면 내용은 주석을 거쳐 변화시킬 수 있당. 그 결과 `말로는 찬성하지만 마음으로는 반대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의 구식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 모두는 가장의 의지가 표면적으로는 지켜지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왜곡되는지 잘 알고 있다.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실용에 부합하는 것도 아닌 교조 혹은 명령에 대해서는 왜곡하는 길밖에 없고, 체면만 살려주면 된다. 체면은 곧 표면적으로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156)
현대사회에서 지식은 곧 권력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요에 따라서 계획하기 때문이다. 지식에서 획득한 권력은 내가 앞 장에서 말했던 시세권력이다. 향토사회는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계획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이 그들을 대신하여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전통적인 생활 방안을 선택해 주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생활하더라도 무방하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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