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중국: 중국 사회문화의 원형
페이샤오퉁 지음, 장영석 옮김 / 비봉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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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백선에 들만한 책이다. 번역이 되어 좋다. 그러나 불필요하고 자의적인 한자 표기는 왜? 책을 冊으로 표기할 필요 있나? 그럼 전수는 왜 傳受로 안 썼나? 한자는 한국어의 소중한 일부이고 한자교육 중요하다고 보지만 무의미한 장벽은 없애자. 그리고 학술서적이라도 대중감각 좀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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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중국: 중국 사회문화의 원형
페이샤오퉁 지음, 장영석 옮김 / 비봉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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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의 관점은 완전히 토론을 위한 것이었고, 제기된 개념도 `깍고 다듬은` 것이 아니라 거칠고 질박한 것이었다. 그런데 반영하고자 했던 실제를 떠나면 항상 상당한 거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면 실제의 모습과 다르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 스스로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견해까지 `모두 털어 놓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비교적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의 임무가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스스로 책을 통해서 학습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감히 미지의 영역으로 진군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교사는 앞장을 서야 한다. 난관을 돌파한 뒤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획득했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실제로 새롭게 돌진해 들어간 영역에서 그와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12, 한자는 한글로 바꾸었음)

고정적인 생활환경에서 성장하여 생리적 기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습관을 가지게 된 우리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리듬을 갖는다. 기억은 불필요한 것이다. "노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른다..."는 말은 `시간을 잊고 사는...`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진 나라가 망하고 한 나라가 부흥해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향토사회에서는 망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망각이 편안하다. 생활의 상궤를 벗어난 일이 있을 때에만, 망각이 두려울 때에만, 비로소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표시해 둔다. (47)

자기를 위해서 가(가정, 가족)를 희생시키고, 가를 위해서 족(부족, 민족)을 희생시키는 것 ...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을 반영하는 공식이다. 이와 같은 공식이 통하는 현실에서 만약 당신이 그의 행위를 가리켜서 `사`만을 생각하는 것이니 어쩌니 하면서 비난한다면, 그는 당신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족을 희생시킬 때에는 그것을 가를 위해서인데, 가는 그에게는 바로 `공`이기 때문이다. ... 차등적 질서 상황에서 `공`과 `사`는 상대적인 것이고, 어떤 테두리 안에 서 있는지에 따라서 그 내부를 향하고 있는 것도 `공`이 될 수 있다. (64)

"그렇다면 순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맹자가 말했다: "순은 천하를 마치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몰래 자기 부친을 업고 멀리 바닷가로 도망가서 숨어 살면서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자기 부친을 봉양하며 즐겁게 살고 천하의 일들은 잊어버렸을 것이다." (77)

단체구조의 사회에서는 같은 한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이로움을 같이 한다...`, 즉 `서로 동등하다...`. 그러나 맹자가 가장 반대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맹자는 "무릇 모든 사물마다 차이가 나는 것이 사물의 본성이다. 자네가 그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이 보는 것은 곧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라고 했다. 따라서 묵가...의 "사랑에는 차등이 없다..."라고 하는 주장은 유가의 `인륜의 차등적 질서...`와 정반대되는 것이므로, 맹자는 그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의 안중에는 아버지도 없고 군주도 없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80)

중국의 향토사회에서 `가`의 성격은 이 점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중국의 `가`는 지속성을 갖는 `사업사회집단`인데, 그 주축은 부자간이고, 고부간의 관계는 횡적이 아니라 종적이다. 부부는 `보조축`이다. `보조축`은 주축과 마찬가지로 결코 임시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의 필요 때문에 두 축은 모두 일반적인 감정을 배척한다. 내가 말하는 일반적 감정이란 기율과 대비되는 것이다. 모든 사업은 효율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효율을 추구하려면 기율이 유지되어야 한다. 기율은 사적인 감정인 관용을 배제한다. 중국의 가정에는 `가법`이 있는데, 부부간에는 서로 존경해야 하고, 여자는 `삼종사덕`의 기준을 따라야 하며, 부모와 자식 간에는 책임과 복종을 중시해야 한다. 이 모두는 `사업사회집단`의 특성이다. (68)

향토사회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오히려 개인의 생리적인 차이이다. 그 차이는 결코 현저한 유전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세대 간 상호 결혼하는 작은 `사회공동체...`에서 유전적 특성이 현저하게 차이가 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리적 차이를 영원히 갈라놓는 것은 남녀 양성이다. 인간은 양성의 차이를 몸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차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항상 간접적이다. 말할 수 있는 차이는 대개 표면적인 것에 한정될 뿐이다. 실제 생활에서 누구라도 이셩의 거리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차이의 내용은 영원히 추측되는 것일 뿐 몸소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95)

남녀유별의 경계는 중국 전통의 감정의 정향이 동성 방면으로 편향되어 발전하도록 하고 있다. 변태적인 동성애와 나르시시즘...이 어느 정도로 퍼져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향토사회에서 의를 맺는 조직, `동일한 날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동일한 날에 죽기를 바라는` 친밀한 결합은 감정의 정향이 동성 관계의 차원으로 발전해 나간 정도가 이미 매우 낮은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나타내고 있다. (98)

먼저 예치 사회는 <경화록>에서 묘사하고 있는 `군자의 나라`와 같은 우아한 사회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두고자 한다. `예`는 결코 `문명`, `자선`, `사람을 보면 인사하고`, `극악무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 역시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대단히 `야만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어떤 지역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장례 때 다른 사람에 의해 화장되는데, 그것이 예이다. ... 예의 내용을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아주 참혹한 것일 수 있다. 잔혹한지의 여부가 결코 예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103)

농촌에서 현행의 사법제도는 아주 특수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즉, 본래의 예치 질서를 타파하였지만 법치 질서는 유효하게 확립하지 못했다. 법치 질서는 단지 몇 개의 법률 조항을 제정하고 몇 개의 법정을 설립했다고 해서 확립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제도와 시설을 응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구조와 사상관념에서 한바탕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것을 개혁하지 않고 단지 법률과 법정만을 농촌에 들여놓는다면, 법치 질서의 좋은 점은 확립되지 않고 예치 질서를 파괴하는 병폐가 먼저 발생하게 된다. (119)

웅대한 계획과 전략을 가진 황권은 변경을 개척하고, 성을 쌓고 치수사업을 전개한다. 본래 이와 같은 것을 학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일종의 투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루즈벨트의 대규모 테네시 프로젝트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축적된 것이 없는 농업경제는 그와 같은 프로젝트의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충분한 잉여가 없기 때문에 원성이 자자하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황권을 난처하게 만든다. 그럴 경우 전도가 양양한 황권은 대내 압력을 가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때문에 비용은 더욱 증대되기만 한다. 진섭과 오광과 같은 무리의 봉기가 일어나고 천하가 혼란에 빠진다. 인민들은 도처에서 죽어나고, 인구는 감소한다. 그래서 오랜 혼란은 반드시 정리되고, 휴식보다 더 사람을 유혹할 것이 없는 국면이 형성되며, 황권은 백성을 기른다(養民)는 소위 `無爲`를 애써 추구하게 된다. (126)

향토사회로 돌아가도록 하자. 향토사회의 권력구조에서는 비록 민주적이지 않은 횡포권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또한 민주적인 동의권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권력 이외에도 교화권력이 존재한다. 교화권력은 민주적인 것도 아니지만 또한 비민주적인 전제도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권력이다. 그래서 민주와 민주가 아닌 척도로 중국의 사회를 가늠하는 것으 모두 옳기도 하고 모두 옳지 않기도 하며, 모두 일부 그럴듯한 측면도 있지만, 그러나 모두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반드시 하나의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에는 `장로통치`보다 더 좋은 개념을 생각해낼 수 없다. (136)

나는 열 살 때 고향 오강을 떠나 소주시에서 9년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각 문건의 본적 란에 줄곧 `상소성 오강`이라고 적었다. 중일항전 시기 운남에서 8년간 거주했지만 본적은 변하지 않았고, 운남 출생의 딸도 나의 본적을 따르고 있다. 딸 또한 아마도 평생 동안 자신의 본적을 `강소성 오강`이라고 쓸 것이다. 나의 조상은 오강에서 이미 20여 대를 살아왔지만, 우리 집의 등롱에는 `강하 비`라는 커다란 붉은 글자가 적혀 있다. 강하는 호북성에 있다. 지연으로 보았을 때, 내가 강하와 관계를 맺을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우리의 본적은 우리의 부모의 것을 따르는 것이고, 자신이 출생했거나 혹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며, 또 성과 마찬가지로 계승된다. 그것은 `혈연`이고, 따라서 우리는 본적은 `혈연의 공간적 투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42)

게다가 친밀한 공동생활에서 각자가 상호 의존하는 지점은 다면적이고 장기적이다. 따라서 서로 주고받는 것을 하나하나씩 명확하게 계산하여 되돌려줄 수가 없다. `친밀한 사회집단`의 단결성은 각 분자 모두가 서로 오랫동안 질질 끌면서 갚지 못하고 있는 인정에 의존한다. 친구들 사이에는 서로 서둘러 보답하는데, 그것은 마치 일부 자금을 투자한 것과 같이 나의 `인정`에 대해 상대방이 빚지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 친밀한 사회집단에서는 서로 인정을 빚지지 않을 수 없고, 또 `결산...`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서로 인정을 빚지지 않으면 상호왕래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결산` 또는 `청산`은 절교의 말과 동일하다. (144)

여기서 `문화영웅`이 나타난다. 그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고, 새로운 실험을 조직할 능력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그를 따르는 군중을 지배할 수 있고, 따라서 새로운 권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권력은 횡포권력과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착취 관계에서 확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의권력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가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로권력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통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세가 만들어낸 것이데, 이름이 없기 때문에 `시세권력`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152)

장로권력 하에서 전통의 형식은 반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그 형식을 인정하기만 하면 내용은 주석을 거쳐 변화시킬 수 있당. 그 결과 `말로는 찬성하지만 마음으로는 반대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의 구식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 모두는 가장의 의지가 표면적으로는 지켜지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왜곡되는지 잘 알고 있다.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실용에 부합하는 것도 아닌 교조 혹은 명령에 대해서는 왜곡하는 길밖에 없고, 체면만 살려주면 된다. 체면은 곧 표면적으로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156)

현대사회에서 지식은 곧 권력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요에 따라서 계획하기 때문이다. 지식에서 획득한 권력은 내가 앞 장에서 말했던 시세권력이다. 향토사회는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계획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이 그들을 대신하여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전통적인 생활 방안을 선택해 주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생활하더라도 무방하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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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
후지와라 신야 글.그림, 장은선 옮김 / 다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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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함을 인정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설명할 수 없는 예지몽, 불공평한 고통과 죽음, 물 위로 치솟았다가 동족의 시체 위에 떨어져 숨을 거두는 나비, 뜬 눈으로 꾸는 정토몽 등. 그리고 형이 남긴 맛집수첩을 복사해 나눠주는 형수. 일본식 소박함은 가끔 뭉클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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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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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가 총에 맞는 장면까지가 좋다. 몸통은 좀 지루하다: 마야와 연결되는 과정 부자연하고 편지 통해 리카르도 부부 사정 알리는 설정도 올드하고. 그래도 끝에선 왜 먼 길 돌아왔는지 이해된다. 이제 부모가 된 콜롬비아 70년대생들만은 평범한 가정의 행복 지킬 수 있기를 이 책은 기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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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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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 당시의 내 삶은 다양한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 가능성 또한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가능성이, 썰물처럼,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림으로써 결국에는 현재의 내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19)

삶이 우리를 헤어지게 했는데, 삶은 그런 짓들을 하곤 하지요. 내가 엘레나에게 못된 짓을 해버린 거요. 내가 못된 짓을 해서 우리가 헤어져버린 거라고요.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못된 짓을 했다는 게 아니에요, 얌마라, 내 말 잘 들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엘레나에게 한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 실수를 보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오. 비록 세월이 흘렀다 해도, 수많은 해가 흘렀다 해도 자신이 깨뜨려버린 것을 고치기에는 결코 늦지 않은 법이요. 그게 바로 내가 하려는 것이에요. 이제 엘레나가 올 테고, 그것이 바로 내가 하려는 것이죠. 그 어떤 실수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에요. 그 모든 것은 오래전, 아주 오래전 일어난 일이지요. 내 생각에 당신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일 거요. (38)

물론 이것 역시 확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삶은 우리에게 정을 쌓을 시간을 준 적이 없고, 나를 움직였던 것은 감정이나 감동이 아니라 우리가 가끔 가지게 되는 어떤 직관, 즉 일부 사건들이 우리의 삶의 형태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직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명민함이 실제 세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배웠다. 많은 경우에는 그런 명민함을 저버려야 하며, 누군가가 듣고 싶어하는 것을 그에게 말해주어여 하며 지나치게 정직하지 말아야 한다(정직은 비능률적이고, 아무 쓸모가 없다). 나는 콘수를 쳐다보았는데, 내가 본 것은 한 명의 여자, 내가 혼자이듯이 혼자인 여자였다. "많이." 내가 반복했다. "그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100)

나는 봉지를 잘 펴서 녹음기 위, 즉 녹음기의 카세트 도어가 달린 모서리 쪽에 놓았다. 그러고는 여러 가지 감정을 뒤섞어 가슴에 품은 채, 그리고 집에 가기 싫다는 어떤 확신, 방금 전에 내게 일어난 것, 즉 내가 알게 된 비밀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는 어떤 확신을 간직한 채 도시로 나왔다. 나는, 블랙박스의 녹음이 지속되었던 몇 분 동안 그곳 리카르도 라베르데의 집에서 머물렀던 때만큼 내가 그의 삶에 그토록 가까이 갔던 적이 결코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이한 흥분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카레라 셉티마로 내려가 보고타 시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볼리바르 광장을 지나 북쪽을 향해 계속 걸어가 늘 붐비는 보도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 나보다 더 바쁘게 기나가는 사람들에게 밀쳐지고 앞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쳤다. (115)

나는 그런 게 정말로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만의 비밀스러운 소통 방식을 통해 그녀가 내 또래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 소통 방식이란 표정이나 말의 총체 또는 어떤 결정적인 음색, 인사를 하거나 몸을 움직이거나 감사를 표하거나 앉을 때 다리를 꼬는 방식으로, 이런 것은 우리가 한배에서 태어난 같은 세대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것이다. 그녀의 눈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투명한 초록색이었고, 소녀 같은 얼굴에는 고생을 많이 한 여인의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고 난 후의 파티장 같은 얼굴이었다. (133)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내가 이야기해준다면, 당신도 같은 식으로 해줄 건가요?" 내가 말했다. 나는 문득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내 공책을, 대답 없는 외로운 물음표를 생각했고, 단어 몇 개가 내 머리에 그러졌다. `나는 알고 싶어.` 마야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녀가 나처럼 해먹 안에서 편안하게 드러눕는 모습을 어스름 속에서 보았고 내게는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었다. 나는 말을 하기 시작해 리카르도 라베르데에 관해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과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든 것과 잊어버렸다고 두려워하던 것, 라베르데가 내게 들려준 모든 것과 그가 죽은 뒤에 내가 조사한 모든 것을 마야에게 얘기했고, 우리는 각자의 해먹에 감싸인 채, 박쥐들이 움직이고 있던 천장을 각자 주의깊게 응시하면서, 후끈한 밤의 적막을 말로 채우면서, 하지만 고해성사를 하는 사제와 죄인처럼 서로를 결코 쳐다보지 않은 채, 그렇게 첫새벽이 될 때까지 머물렀다. (168)

콜롬비아에서는 항상 우발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확실했는데, 사람들은 늘 스스로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 되려고 궁리하고 애를 쓴다.... 일레인은 지금 자신이 그러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일하는 요령을 터득했는지 물어봐줘요." 일레인은 리카르도와 함께 버스를 탔을 때 그에게 말했다. "일하는 요령을 터득했나요, 엘리나 프리츠?" 리카르도가 물었다. 그러자 일레인이 대답했다. "그래요, 나는 일하는 요령을 터득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225)

두번째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감탄으로, 그 남자가 그토록 쉽게 그 밤을 보냈다는 사실에 대한, 그가 단 한순간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친밀하게 함께 보낸 긴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거대한 속임수에 대한, 마지막 말을 뱉어낼 때의 흐트러지지 않은 차분함에 대한 감탄이었다. 나중에 일레인은 `운이 좀 좋다면 그렇게 되겠죠`라는 말을 떠올렸을 것이고, 아니 `운이 좀 좋다면 그렇게 되겠죠`라는 말을 쉬지 않고 되뇌었을 것이다. 마이크 바비에리는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그녀에게 그 말을 했는데, ... 실제로, 엄밀히 말해 마이크 바비에리는 그것을 위해, 일레인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곳에 왔었다. 리카르도가 집에 도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왔었다. (282)

우리 세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묻는다. 즉,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팔십년대에 발생했고, 우리는 그 사건들이 일어난 순간에 우리의 삶이 어떠했는지 서로에게 묻는데,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던 것을 우리가 채 인지하기도 전에 규정하거나 바꾸어버렸다. 나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십 년 동안 성장한 것들의 결과를 우리가 중립화시킨다는 사실, 또는 늘 우리가 함께하던 취약성에 대한 느낌을 우리가 완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늘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 대화들은 늘 법무부 장관 라라 보니야에 관한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마약 운반업자들에게 공공의 적이자 법조인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람이었다. (310)

"맞아요." 마야가 말했다. "그건 나에게 있는 얼마 안 되는, 아주 적은 진짜 기억들 가운데 하나예요. 말을 보살피던 아빠. 엄마의 개를 쓰다듬어주던 아빠. 내가 아르마딜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꾸짖던 아빠. 유일한 진짜 기억들이죠. 그 밖의 것들은 만들어낸 거예요, 안토니오. 거짓 기억들이라고요.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은 거짓 기억을 갖는 거예요." (325)

나는 언젠가는 알고 싶다. 나와 마야처럼 칠십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 중 몇이나, 마야나 나 같은 사람 중 몇이나 평화롭거나 보호받거나 적어도 불안정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 그들 가운데 몇이나 자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가... 공포와 총소리와 폭탄 소리에 파묻히는 사이에 그 도시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두려움에 젖어 어른이 되었는지. 내 도시에서 몇 사람이, 어찌되었던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느끼면서 도시를 떠났는지, 그리고 몇 사람이 자신들이 구원받을 때 화염에 휩싸인 도시에서 도피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뭔가를 배반하고 있다고 느끼고, 난파선의 쥐떼처럼 변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알고 싶다. (347)

거기서, 나는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형상들의 형태와 색깔에 정신을 집중한 채 아우라가 내게 전화를 걸어오면 그녀에게 해줄 말을 생각했다. 아우라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아우라를 데리러 가도 되는지, 혹은 나에게 아우라를 기다릴 권리가 있는지 아우라에게 물어볼까? 우리의 삶을 방치한 것은 실수였다는 사실을 아우라가 깨닫도록 침묵을 지켜볼까? 아니면 애써 아우라를 설득해보고, 우리가 함께라면 세상의 악을 더 잘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또는 세상은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가 집에 오지 않으면 걱정해주고, 우리를 찾으러 나올 누군가가 없이 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라고 애써 주장해볼까?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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