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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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간절한 본인 노력과 마음 맞는 짝궁의 협력 있다면 출발 늦었어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사람은 끼리끼리의 동물이라 내와 내 가정 바로 서면 비슷한 사람들 사는 동네도 찾아진다. 4년에 한 번 하는 투표보다 매일의 소비가 미래를 좌우하니 인간이라는 가치에 더더 많은 돈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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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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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의 경영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6)

언젠가는 지금 있는 세계의 밖으로 나가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고 싶었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고, 그것을 생활의 양식으로 삼아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몰랐다. 그래서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21)

이 세계에, 과연 시스템의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34)

음식은 싸면 쌀수록 좋다는 풍조가 있지만 마르크스의 말대로라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일(노동력)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다. (69)

`균도 산 생명이고, 나도 목숨이 붙은 생명이다. 생명에 위험한지 여부는 먹어보면 알겠지. 몇 백 년 전 옛날 사람들도 자신의 감각을 믿고 직접 먹어서 확인했음에 틀림없다. 그래, 도전할 수밖에 없어. 게다가 공방 직원은 나 혼자야. 현미경이고 뭐고 제 몸 하나로 구분했을 옛날 사람이 된 셈 치자.` (118)

아버지의 지인 댁에 초대받았을 때는 정원에서 기르던 토끼와 닭을 직접 잡아 조리한 음식을 먹을 기회도 있었고, 사냥해온 영양고기를 대접받은 일도 있었다. 야산을 돌아다니던 영양고기는 씹을 때마다 생명의 힘이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은 생명이라는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164)

언데는 돈을 `사람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교환을 위한 돈=빵집에서 쓰는 돈`과 `자본이 사업을 통해 불리려 하는 돈=자본으로서의 돈`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 두 종류의 돈에 동일한 `법정통화`(엔, 달러 등)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와 삶이 혼란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돈을 나누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빵집에서 쓰는 돈으로는 도시를 목적으로 한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 `지역통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바로 이 지역통화라는 조금 특이한 돈의 가능성에 당시의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177)

그래서 둘째 히카루는 집에서 낳았다. 8개월쯤 되었을 때 기저귀 안 쓰는 육아법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안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응가를 할 기미가 보이면 마당으로 데리고 가 변을 보게 했다. 그랬더니, 전에는 항상 설사 기가 있어서 자주 기저귀를 갈던 아이의 변이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기저귀 안 쓰는 육아법을 몰랐다면 지진 때문에 기저귀 구하기가 힘들었던 시기에 더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생리에 맞춘 육아법은 결과적으로 자연에도 좋고 비상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204)

저희들이 눈을 떴을 때 아빠는 이미 일터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고, 집안에는 온통 향긋한 빵 굽는 냄새가 퍼졌다는 것, 손님들로 가계가 북적이면 엄마와 아빠는 힘들어하면서도 무척 기뻐했다는 것,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한 뒤에는 `한 잔의 술`과 함께 이 세상 최고의 행복을 나눴다는 것....... 부모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모습을 기억 속에 깊이 새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226)

매일 돈을 쓰는 법을 바꿔보는 것도 경제를 부패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부패하지 않는 돈도 쓰기에 따라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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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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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을 먹으면 악몽이 사라진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내 친구들, 그들의 죽음을 다 헛된 일로 만들어 버리는 거잖아요. 전 베트남에서 죽은 친구들을 위해서 살아 있는 기념비가 되어야 해요."
나는 망연자실했다. 죽은 이들을 향한 충성심은 그가 삶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톰의 아버지가 친구들을 향한 헌신의 마음으로 삶을 이어갔던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전장에서 겪은 일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인생의 나머지 시간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 끔찍했던 경험은 어떻게 해서 당사자가 아무 희망 없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토록 벗어나기만을 바라던 곳, 그곳에 얼어 버린 듯 꼼짝없이 붙들려 버린 사람들의 마음과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35)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 해군병사들과의 상담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일원이 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들에게 의사가 될 수 없었다. (48-9)

우리의 훌륭한 선생님이셨던 엘빈 셈라드 교수는 내가 센터에서 보낸 첫 해 내내 정신의학 교과서를 읽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뜯어말리셨다.... 셈라드 교수는 확실성을 가장한 정신의학 진단 떄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인식한 내용이 흐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번은 내가 이런 말을 던졌다. "교수님은 이 환자를 정신분열과 분열정동형 정신병 중 어느 쪽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교수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턱을 어루만지더니 깊이 고민한 듯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면 마이클 멕킨자이어라고 하겠네." (62)

너무나 많은 희망과 함께 시작된 의약 혁명은 결국 장점만큼 수많은 해악을 낳은 것 같다. 정신 질환은 1차적으로 뇌의 화학적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특정한 약물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이론은 의료계 전문가들은 물론 언론 매체와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수용되었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약물 치료에 관한 연구를 다수 진행한 뒤, 나는 정신 질환의 약물 치료에는 심각한 단점이 따르며 초점을 흐려 문제의 원인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뇌-질병 모델은 사람들의 운명을 각자의 손에서 넘겨받아 통제하고, 의사들과 보험회사가 환자의 문제를 대신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만든다. (77)

약물이 만들어내는 수익이 워낙 크다 보니 의학계 주요 학술지들마다 정신건강 문제를 약 없이 치료한 연구 내용이 게재되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그와 다른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보통 `대안`으로 취급받으며 무시당하기 일쑤다. 소위 `매뉴얼이 확립된 치료 계획서`를 마련하지 않고, 환자와 치료 담당자가 유연성이 결여된 처방 일정을 따르고, 환자 개개인의 필요를 세밀하게 반영해 조정하는 절차가 거의 생략된 비약물 치료에 연구비가 지원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류 의학계에서는 화학의 힘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일을 단호히 행하고, 약 외에 다른 방법으로 개개인의 생리학적 상태와 체내 평형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고려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되고 있다. (79)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의 뇌를 보면 이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다. 여과 장치가 없으니 감각 정보가 금세 넘쳐난다. 이 상태를 이겨 내기 위해 이들은 시스템을 아예 정지시키려고 애쓰며, 시야는 좁아지고 한 가지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특성이 발달한다. 알아서 차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바깥세상을 차단할 수 있도록 약물이나 알코올의 힘을 빌리게 된다. 참으로 비극적인 사실은, 이렇게 문을 닫아 버리는 바람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원천도 함께 차단된다는 것이다. (125)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 제도나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방법은 이 감정 개입 시스템을 무시하고 대신 마음의 인지적 기능을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분노, 공포, 불안이 이성적 사고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충분한 증거들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진하기에 앞서 뇌의 안전 체계부터 재가동시켜야 하는 필요성을 간과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146)

애착을 향한 욕구는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 동떨어진 상태로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직장 생활이나 친구들, 가족들에게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질병, 법적 소송, 가족 간의 불화 등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무관함, 소원함이 주는 지독한 우울함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191)

메릴린은 힘없는 아이가 어쩌다 외부 세계를 차단하고 무엇이든 하라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어린 메릴린은 자신을 없애는 방법을 택했다. 침실 밖 복도에서 아빠가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면, 메릴린은 `머리를 구름 속에 넣어` 버렸다.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환자 한 명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그 방식을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녀 역시 자신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천창을 지나 하늘로 붕 떠올라서 저 위 높은 곳에서 침대에 누운 어린 소녀를 남처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자신이 저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저 소녀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다. (217)

최근에 특정 유전자를 `보유하면` 정해진 결과가 나온다는 단순한 생각을 일축하는 결과들이 발표됐다. 여러 개의 유전자가 함께 작용해 한 가지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유전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살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유전자의 외부에 메틸기...를 결합시키고, 이를 통해 몸이 보내는 메시지에 어느 정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함으로써 유전자의 발현을 활성화하거나 활성을 중단시키는 생화학적 메시지가 생성될 수 있다.... 일생의 중대한 사건은 이렇듯 유전자의 동태에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메틸화의 패턴은 자손에게도 전달될 수 있으며 그러한 현상을 후생유전이라고 한다. 유기체의 가장 깊숙한 단계까지 신체에 흔적이 남는 사례를 또 한 가지 확인한 셈이다. (247)

스루프 연구진은 이와 함께 회복력, 즉 역경을 겪은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삶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망스러운 일에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후 첫 2년 동안 1차 양육자로부터 얻은 안정감 수준이었다. 현재까지 인정되는 사실이다. 스루프가 내게 비공식적으로 전한 바에 따르면, 성인기의 회복력은 두 살 때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스러워했는지를 알면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262)

이어 그는 빈에서 가장 잘 사는 부류에 속한 여러 가정에서 학대가 만연한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게다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도 그 일에 연루되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둘러 한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무의식적인 소망과 환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지만, 가끔씩 성적 학대의 실상을 알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공포가 찾아온 후 프로이트는 전쟁 신경증의 실상과 마주하고 트라우마의 핵심은 서술적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행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억하는 대신 행동으로 재연한다. 물론 자신이 그 일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반복하고, 결국 우리는 이것이 그가 기억하는 방식임을 알게 된다." (290)

이와 같은 사건을 보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의사, 경찰관, 사회복지사는 상대방이 트라우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무언가를 기억하는 대신 그저 재현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환자는 자신의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과거를 통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대신 그저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범죄자로 처벌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292)

트라우마로 인한 결말을 부인하면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 구조에도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전쟁으로 발생한 피해를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나약함`이라는 편협한 판단을 내리려는 태도는, 1930년대 전 세계적인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부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르사유 조약에 명시된 어마어마한 전쟁 배상금은 이미 망신을 톡톡히 당한 독일에 더 큰 굴욕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자 독일 사회에서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자국의 참전 군인들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며 가혹하게 대했다. 힘없는 상대에게 잇따라 굴욕을 안겨 주는 이 같은 조치들은 나치 체제가 인권을 가차 없이 저하시키게 한 발판이 되었다. 즉 강한 자가 열등한 자를 격파하는 건 당연하다는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여, 전쟁을 실행하는 근거가 되고 만 것이다. (299)

`말이 안 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우리의 생각이 쉽게 수정될 수 있다는 착각은 언어로 인해 어떤 함정이 빠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인지행동 치료에서 `인지` 기능에 중점을 둔 과정에서는 그와 같은 `고장 난 생각`을 바꾸는 데 주력한다. 이는 곧 환자가 부저적으로 인지한 내용에 상담사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구성`하려는 하향식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성폭행에 대한 원망과 실제 사실을 비교해 봅시다"라든가 "운전대만 잡으면 솟구치는 두려움을 도로 안전에 관한 최근 통계 자료와 비교해 봅시다"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387)

인공지능 분야를 개척한 MIT 소속 과학자 마빈 민스키는 이렇게 선언했다. "단일한 자기가 존재한다는 전설은 자기에 대한 탐구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 뇌의 내부에 서로 다른 마음들이 사회를 이루며 존재한다는 생각이 더 이치에 맞는 이야기딜지 모른다. 이 서로 다른 마음들은 한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들처럼 서로 도와 가며 협력할 수 있지만, 각자 다른 마음들이 절대 모르는 고유한 정신적 경험을 한다." (443)

물론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원래의 기억을 진정시키고 그 기억과 맞설 만큼 강렬하고 현실감 있는 정서적 시나리오를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구조 형성 과정에서 환자들을 치유하는 장면들은 많은 환자가 한 번도 믿어 본 적 없는 일, 즉 세상 속에서 환영받고 함께 즐거워하고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488)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 현재를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과거로 해석하지 않는다. 세타파의 활성이 지배적인 최면 상태가 되면, 어디선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릴 때 총성과 죽음의 징조를 자동으로 떠올리는 것과 같은 특정 자극과 반응의 조건적인 연결이 헐거워진다. 그래서 똑같이 뭔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더라도, 새로운 연상 관계를 확립해 과거 어느 축제날 밤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해변에서 폭죽놀이를 했던 일을 떠올릴 수 있다. (515)

연기란 그 인물을 겉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그 인물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그 인물이 되며, 속에서 그 인물을 찾아야 한다. 아주 광범위한 자기 자신 속에서 말이다. (523)

자기 주체의식과 스스로 느끼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은 몸과 몸이 만들어내는 리듬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즉 잠에서 깨어나고, 잠을 자고, 먹고, 자리에 앉고, 걷는 모든 행동이 하루하루의 모습을 만든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면 자신의 `몸속`에 존재해야 한다. 깊이 숨 쉬고 내적 감각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몸과 분리되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게 만드는 헤리와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텔레비전이든 컴퓨터 모니터든 각종 화면 앞에 드러누워 수동적으로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우울한 상태와도 상반되는 개념이다. 연기는 몸이 인생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524)

발트 해 연안의 작은 국가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신경과학자 자크 판크세프는 내게 1987년 6월 에스토니아에서 일어난 `노래하는 혁명`에 관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북극과 가까운 지역답게 밤이 길게 이어지던 그해 여름, `탈린 노래 축제장`에 모딘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소비에트 치하에서 반세기 동안 금지곡으로 지정된, 에스토니아를 향한 애국심이 담긴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 함께 노래하며 저항하는 운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1988년 9월 11일에는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0만 명이 모여 함께 노래 부르면서 독립을 요구했다. 마침내 1991년 8월, 에스토니아 의회가 국가의 회복을 선언하던 현장에 소비에트 군대가 탱크를 앞세워 저지를 시도하자 사람들은 인간 방패를 만들어 탈린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을 보호했다. (529)

트라우마와 트라우마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정치적인 사항은 제쳐 두고 신경과학적인 내용이나 치료에 관한 정보만 말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도 트라우마를 정치와 분리하고 싶지만 지금처럼 근본 원인은 무시한 채 트라우마를 거부하고 치료하려 한다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유전 정보보다 생활 여건으로 훨씬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소득 수준, 가족 구조, 사는 집, 고용 상태, 교육 기회에 따라 트라우마 스트레스가 발생할 위험성은 물론이고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 (551)

트라우마는 자신의 나약함과 끊임없이 대면하게 만든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처하도록 만들지만, 동시에 월등한 회복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내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가진 즐거움과 창의성, 의미, 유대감 등 인생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여러 요소의 원천을 트라우마를 통해 탐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수많은 환자가 견뎌야 했던 이들을 생각하면 과연 내가 겪었어도 이겨 낼 수 있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나는 이들이 나타내는 증상들이 모두 각자가 가진 힘이며 생존하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이 그 고통스러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소중한 파트너가 되고 부모가 되며 모범적인 선생님, 간호사, 과학자, 예술가로 살아간다.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훌륭한 인물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를 잘 알게 될 기회가 있었다. ...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 보면, 모두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러한 통찰과 열정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64)

사회도 마찬가지다. 가장 대대적인 발전은 트라우마를 계기로 얻은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남북 전쟁 이후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대공황 이후 사회보장제도가 신설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낸 뒤 만들어진 미국의 `제대군인원호법`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중산층 비율을 늘렸다. 공중 보건 분야에서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트라우마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알고 있는 사실대로 행동할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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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구성 - 현대 일본이 부끄러워하는 진짜 일본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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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후 일본에서 자신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여러 가지 신화를 만들어 퍼뜨렸다. 1987년에 미국인이 발표한 어느 글에서는 "벌어질 수도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미국의 점령은 전승자에게나 피정복자에게나 여러 모로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경험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 점령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벌어질 수도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는 권유는 위험한 제안이다. 왜냐하면 거꾸로 "성취할 수도 있었던 최선의 상황"을 생각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최선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순간, 미국의 일본 점령은 평가절하된다. 실제로 상황은 훨씬 더 좋아질 수도 있었다. 현실은 어땠을까?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 쉽다.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일본은 전후 미국이 만들어놓은 일본, 즉 터무니없이 부패하고 시장우월주의에 집착하고 환경보호에 무관심하고 개인을 숨막히게 하고 정치적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지도자가 부패하고 결단력 없는.... 그런 나라이다. (36)

일본 노동자와 사용자 관계를 일반적으로 묘사하면 그저 평온한 기운만 감돌 뿐이다. 그러나 그런 묘사에는, 어떤 과정을 통해 그 평온함에 이르렀는가에 관한 설명이 빠져 있다. 우리가 오늘날 목격하는 표면적인 조화로움이 성취되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분규와 폭력이 존재했는가 하는 부분이 누락된 것이다. 즉 역사와 인간의 복잡한 본성에 대한 진술을 생략함으로써 우리가 일본인에 대해 뭔가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만다. (51)

대전통 소전통을 구별하는 역사는 오래되었다.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 간에, 대전통 소전통의 차이는 전 세계에 보편적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만큼 오랜 세월동안 대전통 소전통의 차이가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나라는 없다. 역사 이래로 대전통 소전통의 갈등, 즉 세련된 상부 엘리트층과 평범한 민중 간의 갈등은 지속되어왔다. 봉건시대 후기에 유명했던 구호 중 하나는 관존민비...였다. 관과 민을 분명하게 가르는 노골적인 이 개념은 메이지 시대에도 유지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적할 만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대전통은 항상 외국에서 들여온 문물을 반영한다. 소전통이 대체로 본래 고유의 것인 데에 반해서 대전통은 수입품이다. (72)

개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가장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조차도 개인을 민족국가 개념에 끌어다 붙였다. 후쿠자와의 실수, 즉 "한 개인이 된다는 것은 일본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보는 실수는 이후에도 여러 번 되풀이되었다. 최근까지 이름조차 없던 농노들에게, `일본인`이 되고 근대국가 참여하여 공인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렸을지는 여러 말이 필요없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메이지유신 시기에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던 `공적 개성`의 문제가 다 해결됐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고래고래 소리질러대던 개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덴노 중심 지배체제가 아무리 기세등등하더라도, 모든 일본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덴토 체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열렬한 추종자가 됐다고 가정하는 것은, 일본인이 모두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무런 복잡함도 없는 단순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112)

실상 메이지 시대의 이상과 근대라는 현실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일종의 사기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사기극은 진의를 감춘 개인이 공적 영역에서 가면을 쓰고 벌이는 기만이었다. 공적으로 덴노와 국가를 위해 새로운 일본에서 분투했지만 사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분투했던 것이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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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Trumbo (트럼보)(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Universal Studios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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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보다 더 참혹할까도 싶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고, 메카시즘이 전후 일본과 한국을 빚은 `보이는 손`에 끼친 영향 생각하면서 냉전 소용돌이 속 `제국`의 안밖을 동시 조망하는 게 중요. 국가 폭력에 무너진 개인 이야기 많으니, 이런 승리의 이야기 자꾸 발굴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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