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 뚝딱 홈메이드
다카기 나오코 지음, 손이경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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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재미 없어서 당황. DIY 자체는 높이 평가함. 아무리 서툴러도 해보는 것과 그냥 사는 것은 큰 차이. 프리랜서라도 벽에 큰 일과표 세워두는 것은 비추. 집은 가장 편안하고 창조의 샘물 긷는 곳이 되어야. 우메보시 만들기 이렇게 쉬웠나. 매실 제철에 나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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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7
토마스 만 지음, 윤순식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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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시간 말인데.> 요아힘은 이렇게 말하고, 사촌의 분개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앞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있는 친구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 넌 아무래도 믿지 않겠지만 말이야. 3주란 이들에겐 하루와 같은 거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그 모든 것을 배우게 될 거라고.> 이렇게 말하고 그는 덧붙였다. <여기서는 사람들의 개념도 변해 버려.> (21)

우리는 우리 존재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보편적이고 비개인적인 토대를 절대적이고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며 이에 대해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 그러한 토대에 결함이 있을 경우 자신의 정신적 건강이 이로 인해 막연히 침해받는다고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목표와 목적, 희망과 전망이 눈앞에 떠다니고 있어 이러한 것들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 행동으로 몰고 가겠다는 원동력을 얻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주위의 비개인적인 것, 즉 시대 그 자체가 외견상 매우 활기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희망이나 전망이 걸여되어 있다면, 또 시대가 우리에게 희망도 없고 전망도 없으며 해결책도 없다는 것을 남몰래 인식시켜 주고, ... 시대에 대한 어떤 형태의 질문 ...--즉 우리의 모든 노력과 활동이 지닌, 개인적인 의미 이상의 궁극적이고도 절대적인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공허한 침묵을 계속 지키고 있다면, 그러한 사태로 인한 모종의 마비 작용을 보다 솔직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거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비 작용은 ... 육체적이고 유기체적인 부분으로 파급될지 모른다. (68)

<저런, 그럼 당신은 우리와 다르다는 말씀인가요? 아프지 않고 건강한데, 이곳에는 단지 청강생으로 오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지옥을 찾아간 오디세우스처럼 말입니다. 참 대담도 하시군요. 죽은 자들이 취생몽사...하는 이곳 심연으로 내려오시다니요.>
<심연이라고요, 세템브리니 씨? 아니 무슨 농담을요! 난 당신들이 사는 이곳으로 5천 피트 정도 올라왔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요! 단연코 그건 착각입니다.> (115)

그 순간 그는 갑자기 2~3일 전 밤에 꾸었던 꿈이자, 최근에 받은 인상을 모델로 한 꿈의 원형인 옛날의 한 장면으로 끌려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 꿈은 너무나 생생하고 철저하며, 또 시간과 공간이 소멸해 버릴 정도였기 때문에, 한스 카스토르프는 당시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끌려 들어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위의 시냇물 옆 벤치에 누워 있는 것은 생명이 없는 육체에 불과하고, 진짜 카스토르프는 먼 과거의 시간과 환경 속에, 그것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하지만 모험에 넘치고 심장을 흥분하게 하는 그 옛날의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232)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눈 자체가 문제였다. 가느다랗고 더없이 매혹적인... 키르키스인의 눈, 먼 산의 회색이 섞인 푸른빛 혹은 푸른빛이 섞인 회색을 띠고 있는 눈은, 가끔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닌 곁눈질을 할 때면, 눅아내리듯 베일에 싸인 캄캄한 색으로 완전히 흐려지는 것이었다--클라브디아의 눈, ...그 눈은 위치나 색깔, 표정에 있어서 프리비슬라프 히페의 눈과 깜짝 놀랄 정도로 닮았던 것이다! <닮았다>라는 말은 결코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그것은 꼭 같은 눈이었다. ...--이 모든 것이 프리비슬라프와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프리비슬라프도 학교 교정에서 그의 옆을 지나갈 때면 이와 똑같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던가.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프리비슬라프가 이 위에서 쇼샤 부인의 모습으로 다시 눈앞에 나타나 키르키스인의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았다는 것도 자신이 피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행복한 의미에서건 불행한 의미에서건 피할 수 없는--어떤 운명에 지배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284)

북쪽의 할아버지와 남쪽의 할아버지, 이 두 분은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 목적은 자신과 타락한 현재 사이에 엄격하게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쪽 할아버지는 자신의 본질에 속하는 과거와 죽음을 위해 경건한 심정에서 검은 옷을 입었으며, 이에 반해 다른 할아버지는 반역을 꾀하려는 마음에서 경건과는 적대적인 진보를 위해 입었던 것이었다. 그렇다, 이 두 분은 두 개의 세계이거나 방위라고 할 수 있다고 한스 카스토르프는 생각했다. 그리고 세템브리니가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이 마치 이 두 세계의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두 세계를 꼼꼼히 살피면서 한번은 이쪽 세계를 바라보다가, 한번은 저쪽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300)

아름답게 쓴다는 것은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이나 거의 진배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아름다운 행위를 하는 것까지도 그리 멀지 않다. 모든 순화와 윤리적 완성은 문학의 정신에서, 인간 존중이라는 이러한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인문성과 정치의 정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이며, 동일한 힘, 동일한 이념이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할 수 있다. 어떤 이름으로 말인가? 이 이름은 친숙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사촌들은 확실히 그 음절의 의미와 위엄을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그 이름은 바로 문명이다! (309)

그렇다면 애국심, 인간의 존엄성, 아름다운 문학과는 다른 방향, 이와 반대되는 방향에는 무엇이, 또는 누가 있었던 것일까? 거기에는 축 늘어지고, 벌레가 갉아 먹은 듯 침식되어 있고, 키르키스인의 눈을 한 클라브디아 쇼샤가 있었다. 그녀를 생각하니... 그는 다시 홀슈타인의 호수에서 작은 배를 타고 서쪽 강가의 유리같이 밝은 낙조의 빛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겨 눈부시고 현혹된 눈으로 동쪽 하늘의 안개에 싸인 밤의 달빛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311)

세템브리니는 허리를 구부렸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그가 상세하게 설명했다. <어려서부터 여러 번 죽음과 가깝게 접촉한 사람은 무분별한 세상 사람들의 냉혹하고 거친 행동에 대해, 다시 말해 이들의 냉소적 태도에 대해, 감정이 상하여 화가 나고 예민해진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겁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진심으로 감격하며 외쳤다. <너무도 정확히 완전무결하게 표현했습니다. 세템브리니 씨! 죽음과의 접촉이라!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문학가로서.......> (389)

내가 당신의 직업을 알마나 찬미하는지 알고 계시지요.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인 직업이지 정신적인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나와는 달리 저 아래 세상에서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평지에서만 유럽인이 될 수 있으며, 당신 자신의 방식으로 고통을 적극적으로 타파하고, 진보를 촉진하며, 시간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부과된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이것을 상기시키고, 당신이 정신을 차리도록 하고, 당신의 개념을 바로잡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거듭 당신에게 촉구합니다. 당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쓰십시오! 자부심을 가지고, 낯선 이 세계에 빠져들지 마세요! 이러한 진흙탕 구덩이, 마녀 키르케의 섬에서 벗어나 주십시오. 당신이 오디세우스가 아닌 이상 이곳에서 무사히 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당신은 네 발로 기어다니게 될 것입니다. 벌써 당신의 두 앞발이 땅에 붙으려고 합니다. 이제 당신은 금방 꿀꿀거리기 시작할 것입니다--주의하십시오.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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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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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비문학적일만큼 밋밋하다고 봤는데 그게 이 화자의 강점이었음. 일상도 재앙도 삶으로서 편견-편집없이 통으로 받아들이는 무던하면서도 섬세한 아량이 이 소년에게서 자라나는 것 독자는 보게 됨. 돌아온 뒤 삶을 조잡한 교훈이나 싸구려 휴머니즘 가쉽으로 축소 않고 정시하려는 태도 감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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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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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이 번호가 있는지 직접 확인했다. 소문에 의하면 연녹색 잉크로 손목에 숫자를 새기는데 지워지지 않도록 바늘로 찔러서 문신을 한다고 했다. 그 무렵 수프를 가져온 봉사자들의 대화 소리도 들려 왔다. 그들도 번호를 봤는데 부엌에서 일하는 온 지 오래된 죄수들의 피부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우리 중 한 명이 "그게 뭐요?"라고 묻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사람들이 그 의미에 대해 점점 곰곰이 생각하거나 주변에서 자주 언급하곤 했다.
"Himmlishe Telephonnummer."
그 죄수가 독일어로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 의미인즉 `하늘의 전화번호`였다. (118)

"이디시어 할 줄 알아?"
...
"넌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잖아."
그들은 고개를 저였다. 소위 사업 세계에서는 능수능란하다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이익보다 손해와 손실이 훨씬 많은 이런 일에 어리석게 집착하는 걸 보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헝가리에서도 느낀 당혹감과 같은 근질근질한 미숙함을 그들 틈바구니에서 간혹 느꼈는데 그것은 내가 완전히 정상적이지 않고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가 유대인 같다는 느낌이었다. 강제 수용소에서, 그것도 유대인 사이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 좀 이상했다. (153)

장중한 말 한마디나 제스처, 여기저기에 보내는 반짝이는 눈빛 하나까지 모두 하나의 빛이다. 최소한 나라도 이런 것들을 더 유용하게 사용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유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개인적으로 서로에게 화가 나는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실 수용소에서도 우리에게 자존심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드러내지 않고 남들에게 하는 상냥하고 분별 있는 사소한 말이 결국 본인에게 더 많은 것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58)

그런데 나는 집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일종의 겸손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는 바르게 살지 못했고 집에서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했으며 후회할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나오면 음식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일부만 골라 먹고 나머지는 옆으로 밀어 둔 일들이 생각났다. ... 또 인간적으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쓸데없이 줄다리기를 했던 일 역시 후회되었다. 나는 `나중에 집으로 돌아간다면` 하고 생각했다. ... 그래서 내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을 내고 화해를 이끌어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70)

도저히 더 이상 심각해질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런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많은 노력과 부질없는 시도 끝에 시간이 흐르면서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되었다. ... 추위나 습기, 바람이나 비도 나를 막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느낌조차 없었다. 배고픔마저 사라져 버렸다.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입으로 가져갔지만 말하자면 그것은 재미 삼아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일할 때? 물론 일할 때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두들겨 팼지만 그래 봐야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나로서는 오히려 시간을 벌 뿐이었다. 나는 한 대 맞으면 바로 땅에 누워 버렸다. 그러고는 금세 잠이 들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187)

아무튼 그때까지는 내가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거의 믿을 수 없었더 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자주 듣곤 했던 `시체`라는 표현을 그때까지는 죽은 사람에게만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나도 그런 모습으로 아직 살아 있고 완전히 꺼질 듯 말 듯 깜빡거리지만 여전히 내 안에 이른바 생명의 불꽃이 타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내 몸이 그곳에 있고 나는 내 몸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지만 문제는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덜컹거리는 열차 바닥의 차갑고 사방이 의심쩍은 액체로 축축한 짚 위에 내 몸이 눞혀져 있고 내 옆과 그 위에도 비슷한 물체가 눕혀져 있음을 나는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이 나에게 가까이 와 닿지 않고 관심도 가지 않을 뿐더러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이미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이 가볍고 평화로웠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마치 백일몽에 빠진 듯 정말 평안한 느낌이었다. (200)

한마디로 여기서는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 예측해 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아프지 않기만을 바랐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진심이었고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좀 더 현실적인 다른 희망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바람이 내 마음속에 가득했다. 이때 나는 허영심이라는 감정이 최후의 순간까지 사람을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내 가슴을 후벼 파서 어떤 질문이나 요구,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3)

공기 중에 멀리 퍼져 있는 떨떠름한 냄새로 보아 순무 수프임에 틀림없었다. 이 광경과 향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이미 굳은 가슴속에서 파도가 밀려오듯 갑자기 강렬한 감정이 일었고 나는 차갑고 축축한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나는 통찰력을 발휘해 신중하고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가슴속에서 한 가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욕망의 비합리성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끈질기게 욕망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것은 이 멋진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205)

내가 어떻게 그렇게 여러 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기는 원래 헝가리 북부 지방에 있는 펠비데크 출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헝가리인들을 피해, 그의 말을 빌리면 "헝가리인들의 점령"을 피해 가족들이 친척과 지인들과 함께 단체로 그곳에서 도망쳤다고 했다. 나는 언젠가 헝가리에 있었을 때 펠비데크가 다시 헝가리 땅이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국기를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하루 종일 기쁨의 축제를 열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는 내가 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테레진`이라는 지역에서 강제 수용소로 오게 됐다고 했다. 그가 내게 틀림없이 테레지엔슈타트를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곳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체펠 섬에 있는 세관 건물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을 보고 놀랐던 것처럼 매우 놀라워했다.
"그건 프라하에 있는 게토야." (239)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것을 통해서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그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그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 결국 그의 이러한 행동은 일종의 고집이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아무튼 그것은 정말 완벽하고 그때까지 내가 경험한 가장 성공적이고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유용한 고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242)

"우선 그 끔찍했던 일들을 다 잊어야 한다."
내가 좀 놀라며 물었다.
"왜 그래야 하죠?"
...
"그래야 네가 살아갈 수 있거든."
...
"그런 짐을 지고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단다."
나 역시 그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나에게 그런 불가능한 일을 요구할 수 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에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인데 내 기억에 대고 명령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 내가 말을 계속했다.
"특히 저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278)

나 역시 점점 화가 치밀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왔다. 나 역시 비르케나우뿐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나의 걸음을 걸어왔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걷고 어머니와 함께 걷고 언너마리어와 함께 걸어왔다. 그런데 가장 힘든 걸음을 위층에 사는 자매의 언니와 걸었던 것 같다. 이제는 `유대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나 역시 주어진 하나의 운명을 버텨 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었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 냈다. 그들이 왜 내가 지금 그것을 품고 출발해 어딘가로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착오이고 우연이고 일종의 탈선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281)

푸른 언덕 위를 지나가는 양털구름은 보랏빛을 띠고 하늘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변이 뭔가 좀 바뀐 듯했다. 교통량이 줄어들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느려졌으며 목소리가 나지막해지고 시선도 부드러워지고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이 시간대는 수용소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지금 여기에서도 그 느낌이 전해졌다. 뭔가 섬세하고 고통스럽고 허무한 느낌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바로 향수였다. ... 그렇다. 어찌 보면 그곳에서의 삶이 더 순수하고 단순했다. 수용소에서의 모든 일이 다시 떠올랐다. 또 그곳에서는 별로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과 나의 관념과 실존 속에서만 존재를 증명해 주는 번디 치트롬, 피에트하, 보후시, 의사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떠올랐다. 나는 처음으로 약간의 원망 어린 마음과 애정 어린 반감으로 그들을 떠올려 보았다. (284)

이제 우리 과장하지 말자!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수없이 비바람을 맞아 왔지만 여전히 수천 가지 기대로 충만한 거리들을 둘러보며 내 안에서 하나의 각오가 생겨나더니 그것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삶을 지속해 가겠다는 각오였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 나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극복하지 못할 불가능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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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교화 과정 - 신유학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 너머의 역사담론 4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이훈상 옮김 / 너머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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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망외 소득. 조선 관련 부분은 신유학 자체도 아쉽고 서술도 아쉽고. 신유학이 무엇에 대해 `新`인지는 알겠으나 지적으로 박약하고 비인간적임. 가족 내 존비귀천 가리는 게 무슨 의미? 안 되는 회사가 규정집(<경국대전>)만 두꺼운 꼴. 유익하나 문장 난삽, 통찰 불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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