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금융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도 문제에 한몫하고 있다. 미소금융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원래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금융 상품이 아니었다. 돈을 빌려줄 때 대출자가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그리고 이 돈을 통해 대출자를 어떻게 빚의 굴레에서 탈출시키고 자신의 삶을 개선시킬 것인지를 보살펴 주는 상담과 컨설팅, 커뮤니티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 단체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할 때에는 이런 기능을 통해 실질적으로 대출자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에 중점을 두었다. 그런데 정부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미소금융이라는 이름으로 흡수하면서 정작 중요한 기능은 거의 유명무실화되고, 그저 좀 더 싼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 정도로 변질되어 버렸다. (34)
우리는 흔히 부채에 관해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추궁하지만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 즉 상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준 책임에 대해서는 별로 묻지 않는다. …… 쉽게 생각하면 ‘갚을 능력이 없으면 안 빌리면 그만 아닌가?’ 하고 모든 문제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갚을 능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개인이 정확히 파악하기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출은 물론 카드 할부, 통신사 할부를 비롯해서 ‘빚으로 보이지 않는 빚’들도 얽혀 있어서 더더욱 어렵다. 갚을 능력을 판단하기에는 그동안 수많은 대출 관련 정보를 쌓아 오고 분석해 온 금융기관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실적 늘리기에 급급한 금융기관들은 손쉽게 빚을 낼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만들어 내는 데는 열심이었어도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주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게을렀다. (38)
사실 젊은 세대들 중에는 체면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결혼할 때 집도 차도 욕심 안 부리고 분수껏 소박하게 하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다. 자식은 싫은데 부모의 체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사정에 안 맞는 소비를 하게 되는 사례를 무수히 보아 왔다. (51)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나 금융권이 개인으로 하여금 빚을 줄이도록 유도해 나가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금융권은 자기들 수익이 줄어드니까 그렇다 쳐도 정부도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에 큰 관심이 없다. 빚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유도하면 소비가 줄어들까봐 찔끔찔끔 이자 부담만 줄여 주는 데 그친다. 부채를 줄이려고 하면 소비 심리가 더욱 위축되고 내수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서 경기 전반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단기적인 충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질을 바꾸어야 하는데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서 부동산 부채의 마지막 빗장까지 풀어버린 정부에게 그런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계속 빚의 코너로 몰려가고 있는 서민들에게 그 피해는 집중된다. (63)
최근에는 ‘소풍 결혼식’이라는 개념도 등장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야외에서 마치 소풍처럼 결혼식을 소박하게 치르는 것이다. 음식도 식장에서 즉석에서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소풍처럼 도시락으로 준비해 온다. 소박한 결혼을 하고, 절약한 비용의 일부를 기부하는 건강한 생각의 젊은 커플들도 늘고 있다. 화려함이나 남에게 보이고 싶은 과시를 개성과 독특함으로 대신한다면 정말로 ‘스몰’하면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멋진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남과 비슷한 결혼식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비교하게 되고 비용으로 경쟁하지만 개성을 가진 결혼식은 굳이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12)
외벌이를 가정하고 재무구조를 짜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예를 들어 남자는 한 달에 300만 원, 여자는 200만 원을 번다고 가정해 보자.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기 수입에 맞는 지출 구조가 있는데 결혼을 하고 나면 둘 다 지출이 확 올라간다. 여전히 남자와 여자는 각각 300만 원과 200만 원을 벌고 있는데, 심리적으로는 둘이 합쳐 500만 원을 벌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씀씀이가 커지는 것이다. 실제 부부의 수입은 합쳐서 500만 원인데 돈을 쓸 때에는 각자 ‘500만 원’ 수입을 생각하고 돈을 써서 결국 부부가 1,000만 원을 버는 것처럼 소비를 하게 된다. 심지어 아직 결혼도 안 한 예비부부들까지도 이런 착각에 빠져서 지출이 확 늘어난다. 이렇게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쓰다가 나중에 빚이 불어난 뒤에야 자신들의 착각을 뉘우친다. (120)
은퇴 후 창업을 생각하는 50대 고객들이 상담을 올 때에는 "정말 창업을 하고 싶다면 부인이 먼저 창업을 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소자본으로 작게 시작하고, 처음부터 수익 낼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 부부 중 한쪽이 계속 수입이 있는 상태에서 작게 창업을 하면 준비 기간에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처음부터 크게 벌리지 않아도 된다. 창업에 올인을 하면 이를 통해 가족 전체의 수입이 나와야 하므로 작은 규모로 시작하기도 어렵다. 경험도 없으면서 빚을 내서 무리한 투자를 하고[면] 실패할 확률을 높이는 결과가 된다. (160)
빚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한 방에 빚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빚을 질병이라고 생각한다면 치료도 질병과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얼마 동안의 시간을 거쳐야 완벽한 치료가 가능한데도 부채가 주는 고통에서 한 방에 벗어나려다 보면 치료도 안 되고 오히려 또 다른 빚을 지게 된다. 예를 들어 적어도 10건 이상의 빚을 진 다중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채 건수를 점차 축소해서 최종적으로는 한 건으로 줄여 신용 등급을 올려야 한다. 그 다음 이 한 건의 부채를 금리가 낮은 쪽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통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기간을 못 참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1년의 치료가 필요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치료를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나아진 게 없다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185)
노후 준비, 자금 마련보다 빚지지 않는 체질이 중요하다. (255)
노후를 위해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 이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노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무엇을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다음에는 자기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재테크 문제는 그다음이다. (256)
이러한 문제에 빠지지 않으려면 수입이 많아진다고 해서 지출이 따라 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은퇴 직전 몇 년이 대체로 가장 수입이 많다. 은퇴 전에 수입이 많은 것은 한편으로는 ‘그 돈으로 노후 준비를 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나의 수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미리 펼쳐 놓아 보면, 당장 들어오는 돈이 늘었다고 해도 지출이 늘지 않도록 자제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년의 위기 속에서 생활 패턴이 바뀌고, 건강관리나 자기 개성을 찾는 데에 소비를 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좀 더 건강하고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파이를 지금 먹어 치워 버리는 정도로까지 소비한다면 중년의 위기는 부채의 위기, 삶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261)
특별히 주의할 점은 지출을 통제할 때 숫자부터 줄일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한 달 외식비가 100만 원이 넘는다고 가정해보자. 상담하는 과정에서 외식비 지출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면 십중팔구는 "그럼 외식비를 30만 원 줄일게요."라는 식의 말이 나온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치고 실제로 지출을 줄이는 데 성공하는 사례는 별로 없다. 먼저 생각할 것은 ‘얼마’가 아니라 ‘어떻게’다. 우리는 삶을 위해 돈을 쓴다. 외식비를 줄이고 싶다면 먼저 어느 그룹과 함께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왜 먹는지, 그리고 먹어서 누리는 것, 얻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266)
계획을 세웠다면 배우자에게 이를 이야기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반대할 수도 있다. 설득을 하고 타협해 가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합의를 보기 전에는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에게 이야기도 안 하고 몰래 준비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면 더욱 분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 뜻을 알면 좋아하겠지’, ‘내가 이렇게까지 준비했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랄 거야’라든가 ‘반대하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내가 일단 준비 다 해 놓고 나서 이야기하면 나중에 가서 어쩌겠어,’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고 해도 부부 사이에 공유되지 않으면 불화의 씨앗이 되고 미래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94)
빚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돈을 쓰고, 누리는 것보다 나의 삶의 원천이 되는 가족들과 누리는 ‘삶의 기쁨’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더 자극적이고, 뭔가 가져야만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작은 것들을 행해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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