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무의식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5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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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 메모:


  • 평화사상으로서의 유교. 유교는 제자백가시대에 나타난 평화사상의 일종: 서문에서 언급된 이 아이디어가 좋았음. 유교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씩 극복하고 있는 중. 전에 조선에 관한 책, 그리고 송에 관한 책에서 유교로 인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높이 샀던 기억. 당시에는 딱히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 유교를 조선 통해 받아들인 일본이 당시 유교로써 전쟁 금지로 돌아섰다고 하니 신선하고 다시 유교를 생각하게 됨. 유교의 다면성은 매력 있음. <침묵의 종교> 생각도 나고. 그런데 정작 이 책에서는 더이상 유교에 대한 별 다른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음. 아마도 2015년에 가라타니 강연과 한 자리에서 있었다는 김우창의 발표문에 나오겠지.
  • 텍스트성에 대한 고찰: 1) 하나의 텍스트가 어떤 시절 맥락 속에서 쓰여지고, 그 시절이 지나 읽히지 않다가 새로운 시대가 왔을 때 그 시대의 아젠다에 맞추어 본래의 맥락은 잊혀진 채(무지로) 새로이 해석되는 기제. 2) 한편이 글이 그런 모습으로 성형되는 과정에서 작용한 저자의 본의와 이 본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저자를 구속했던 구체적 시절 맥락 간의 길항 작용에 대한 추적. 3) 한 텍스트가 집단 창작의 소산일 때, 집단 내부 갈등의 반영(드러남/은폐/왜곡/모순)으로서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시절 맥락이 잊혀짐에 따라 텍스트만 남아 '원전화'되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 기제. 이 세 가지 기제를 아주 유연하고 현란하게 자신의 헌법9조 독해에 활용하는 가라타니.
  • '영원평화'는 선한 의지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슬픈 역설 일단 접수, 이성의 간지와 자연의 간지 개념도 일단 접수: 이성의 간지(헤겔)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개인적 야심의 추구가 사회적 반작용을 광범위하게 일으켜 결과적으로는 보펀 이성/이념의 실현을 앞당기게 만든 것. 자연의 간지(칸트, 이 때 자연은 인류를 완전한 시민적 연합으로 발전하게 하려는 자연의 계획을 의미)는 인간의 본성(공격성)이라는 자연의 발현--즉 전쟁--에 의해 평화로 가는 길이 한 걸음씩 닦여 나가는 것을 의미.   
  • 여하튼 수많은 논증(때로는 일방적 주장)을 거쳐 드디어 얻는 결론은 아주~ 긍정적임: 정신분석 논증은 아주 스마트하지만 뭐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함. 이런 책에서는 그게 사실이냐가 아니라 그렇게 볼 수도 있느냐가 문제인 거니까. 가라타니의 책은 늘 뇌운동에 좋음. 어쨌든 돌아돌아 와닿은 결론이 헌법9조가 임의해석에 의해 형해화되도록 놓아두지 말고 그것을 실질화(실제로 현실화)하여 일본도 제대로 사람 노릇하고 사람 대접 받자,는 아주 흐뭇한 결론.
  • 역사 공부 즐겁게 그리고 폭넓게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 이 책은 가라타니가 전에 쓴 글들과,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연장선상에 있음. 막스, 칸트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어쏘시에이션 선호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사회의 변화과정을 처음부터 오늘 그리고 미래까지 구조적으로 성형화해보려는 빅히스토리적 성향 계속 나옴. 이 책을 읽으며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느꼈음. 지금이 세계사에서 대체 어느 지점인가, 어떤 터널을 지나고 있고 이 터널을 어디로 지나면 어떤 풍경이 나올까에 대한 사고 아니 상상을 역사를 우회하여 미래로 펼치고 있음. 역사는 반복이 아니라 리듬, 운율. 똑같은 반복은 아니지만 변주하면서 리듬을 타, 부동산 경기처럼. 지혜는 역사로부터 카피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주-창조됨. 테드에 자주 나오는 말: History doesn't repeal itself, but it rhymes. 지금 이 시대, 이 신자유주의적 단계는 미국 지고 새로운 패권국들이 등장할 듯 싶지만 쉽게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상황(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이란 말은 그 나름의 의미로 쓰임--4장 참고)이며 지난 제국주의적 단계가 그러했듯이 세계 전쟁을 통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야말로 이 책에서 둘째로 빛나는 부분.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일본이 할 수 있는 일, 아니 일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관한 사고가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 그가 늘 말하는 비평/크리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어. 이 때 비평은 문학비평, 정치비평 등 현대사회의 임의로 분절된 영역마다 나오는 것이 아니고, 횡으로 종으로도 다 이어져 있으며 그러므로 역사에서 무엇을 기억(또는 망각 또는 새로운 이해)할 것인가를 다시 선택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미래로 이동하는 것이야!  

      다음은 의문 또는 생각할 부분들

 

  • 결론은 좋지만 나는 헌법9조가 무의식이고 초자아이므로 의식적으로 부인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공식 절차에 의해 폐기될 수 없다는 주장은 다시 봐도 잘 모르겠음. 가라타니 자신이 인정하듯이 이미 헌법9조는 많은 면에서 속빈강정, 또는 알리바이가 되어 가고 있는데도, 그것은 무의식이고 초자아이므로 폐기될 리는 없다, 설사 잠시 폐기되더라도 피눈물 흘리는 대가 치른 뒤에 다시 9조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이해 안 됨. 무의식/초자아라서 의식의 수면 위로 올려져 폐기될 리는 없지만 교묘하게 이용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 교묘하게 이용된다는 것은 의식적 적어도 半의식적인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아무리 의식적으로 조작되더라도 무의식은 절대 영향 받지 않고 한번 형성되면 변화하거나 해소되는 일도 없다는 말씀? 호헌파 개헌파 모두 쓸데 없는 짓 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러번 말하는데, 집단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교육과 선전은 그럼 무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재의식에는 작용하지 않나? 이 과정에서 '역사의 간지'는 일어나지 않나? ... 더 이해가 안 되고 나의 지성과 감정이 혼합된 직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어쨌든 일본은 9조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 확신에 찬 태도. 듣는 일본인들이 놀라지 않을까?
  • 그리고 비교적 사소한 의문을 추가하자면, 가라타니 고진 자신은 사회의 무의식인 문화/초자아에 어찌 그리 쉽게 접근하는지? 여론조사를 보고 문화/초자아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어쩐지 너무 간단해 보임.
  • 1장에서 에토준이 9조와 무의식의 관계를 알아차렸다고 했는데, 그 부분 전혀 이해가 안 됨. 에토준의 말은 검열이 이중거울 노릇을 한다는 것 뿐인데, 9조와는 무슨 관계?
  • 천황의 인간선언은 전연 가치가 없는 것인지? 물론 이것은 미군정의 오해에서 비롯된 강제된 행위였고(그런데 자발과 강제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 틀의 하나이므로 이것 또한 순수한 강제인지는 알 수 없고, 강제라면 또 죄의식/초자아 안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일본 내에서는 별 반응 없었다고 알려져는 있지만, 이 책에서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을만큼이나 가치가 없었던 것인가? 1조와 인간선언간의 관계는? 
  • 도쿠가와 시대의 평화철학이 바로 유교였음. 그 도쿠가와의 전후체계에서 팍스--상징천황+전쟁방기--가 실현된 것은 이 철학이 작동을 했기 때문. 이 철학의 도입은 상당히 자발적(그러나 패전 이후의 선택이니 또 이 책의 논리로 본다면 자발적인 것도 아니지. 자발의 가면을 쓴 강요지). 그렇다면 그 때는 죄의식 없었나? 아니면 죄의식과 이 유교의 결합이었나? 더 중요한 문제는 45년 이후의 전후체계--상징천황+전쟁방기--를 뒷받침 했던 철학은 무엇? 그낭 도쿠가와 팍스를 져버린 것에 대한 죄의식 뿐?



여기서 프로이트는 초자아는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에도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그보다는 초자아란 집단(공동체)에서 보다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화란 집단의 초자아라고 생각했습니다. (27)

실제 요시다 수상은 맥아더의 요구에 따라서 경찰예비대를 만들었습니다. 미군이 한반도로 건너간 후 안전보장을 위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시다는 끝가지 헌법 개정을 거부했습니다. 경찰예비대가 안보대, 자위대로 발전한 시점에서도 그것들은 "전력...이 아니다"라고 계속 이야기하며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부정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9조에 대한 ‘해석 개헌‘의 시작입니다. 이후 9조의 문면...은 바꾸지 않은 채로 그것과 상반되는 군비확대가 계속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38)

헌법 1조와 9조는 왜 이처럼 결부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 원인은 이미 서술한 것처럼 연합군총사령관 맥아더가 일본을 점령통치하기 위해 먼저 천황제 유지를 시도하고 그것과 관련하여 연합군에 속한 여러 나라의 반대를 설득하기 위해 9조를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맥아더가 독자적으로 생각해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조언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52)

덧붙이자면 메이지헌법을 만든 것은 헌법에 씌어져 있지 않은 존재, 즉 원로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통반석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대립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조문... 자체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조문의 모순이나 애매함으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황에 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법에 대한 ‘해석‘으로서 천황주권설도 천황기관설도 성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6)

따라서 전후헌법의 ‘선행형태‘를 생각할 때, 메이지헌법만을 보면 오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메이지헌법의 ‘선행형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메이지유신 이전에 있었던 constitution입니다. 물론 그것은 성문법이 아니라 국가의 체제 기구, 즉 도쿠가와의 체제입니다. (60)

이윽고 일어난 프랑스혁명에서 실제 주변 나라들의 간섭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791년 8월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프로이센국왕은 공동성명...으로 무력간섭도 불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것은 위협에 불과했지만, 그것에 대항하여 프랑스 혁명세력의 일파인 지롱드파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긱외 세계와 연결된 귀족들의 반혁명운동을 일거에 봉쇄하기 위해 전쟁에 호소한 것입니다. ... 같은 해 6월 자코뱅파가 지롱드파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후 ‘공포정치‘를 강행했는데, 이것은 오히려 외부로부터의 ‘공포‘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111)

하지만 <영원평화>를 썼을 당시의 칸트는 세계전쟁이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영원평화를 위한 국가간의 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전쟁이 일어나 <영원평화>는 의미를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말 제국주의시대에 다시 읽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원평화>가 시민혁명과 분리된 평화론으로만 읽히게 되었습니다. (111)

지성이 충동생활에 비해 무력하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하고, 또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지성의 연약함이란 일종의 독특함이다. 지성의 목소리는 연약하다. 그렇지만 이 지성의 목소리는 그것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으며, 게다가 여러번 묵살당한 후 결국은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류의 장래에 대해 낙관적일 수 있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인데, 이것 자체도 적잖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을 실마리로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대문이다. 지성의 우위는 멀고먼 미래에 실현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한히 미래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121)

이런 의미에서 일보의 헌법 9조를 문자 그대로 실행헤 옮기는 것은 자위권의 단순한 방기가 아니라 ‘증여‘가 됩니다. 순수증여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군사력이나 금력보다도 강한 힘입니다. 칸트가 인류사의 목표로 삼은 ‘세계공화국‘은 A나 B나 C에서 유래하는 힘이 아니라 D, 즉 순수증여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136)

물론 아메리카의 헤게모니에 대한 독일이나 일본의 저항이 있었고 그것이 제2차 대전이 되었습니다. 또 그 후에는 소련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아메리카의 헤게모니를 위협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메리카를 헤게모니국가로 하는 세계시스템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2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선진자본주의 국가는 아메리카의 협조를 받거나 아메리카의 개방된 시장을 통해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소련권을 공통의 적으로 삼음으로써 서로 협력했습니다. 그리고 소련권의 존재는 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자보호나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 소련권의 존재는 그때까지 식민지 내지 반식민지에 있었던 저개발국가들이 독립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소련권이라는 ‘제2세계‘의 존재 덕분에 ‘제3세계‘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162)

이스라엘 건국이 강행된 것은 중동에 거점을 만들려는 미국의 전략에 의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서구 고유의 ‘유대인문제‘를 중동에 전가하고 주입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스만제국 시대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나 기독교도가 장관을 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중동의 종교적 원리주의는 ‘제3세계‘의 이념이 소멸한 이후에 생겨난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이술람권(IS)의 건설이 이슬람권의 전통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이스라엘 건국의 모방이라고말할 수 있습니다. (174)

그러므로 마지막 문제는 몰락하고 있는 아메리카를 대신하여 어느 나라가 새로운 헤게모니국가가 되는지에 있습니다. ... 인구만 봐도 중국이나 인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중국이나 인도의 경제발전이 세계자본주의의 종언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176)

자본은 자기증식을 할 수 없게 되면 죽습니다. 즉 산업자본은 성장하지 않으면 끝납니다. 나는 자본축적의 세 가지 형태를 지적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역시 산업자본적인 축적이 중요합니다. 금용이나 상업은 그것에 근거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업자본적인 축적(성장)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끝납니다. (176)

하지만 이상 두 종류의 투쟁은 깊이 얽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개발국가로부터의 반격에 대해 신자유주의(신제국주의)적 국가는 연대를 하면서도 서로 싸웁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개발국가는 신자유주의국가의 헤게모니 투쟁에 말려들어 서로 단절됩니다. 그러므로 연대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서로 싸웁니다. 이와 같은 혼돈스러운 싸움이 생각지 못한 세계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ㅅ흡니다. (178)

하지만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세계전쟁을 통하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해결은 오히려 세계전쟁을 저지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일본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헌법 9조를 문자 그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나는 제1장에서 호헌세력이 헌법 9조를 보호해온 것이 아니다, 역으로 헌법 9조에 의해 보호되어 왔다고 서술했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비꼬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본인은 헌법 9조에 의해 보호되어 왔습니다. 공상적 리얼리스트는 헌법 9조 때문에 자국을 보호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헌법 9조에 의해서만 전쟁으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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