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 르포기자 귄터 발라프의 인권 사각지대 잠입 취재기
귄터 발라프 지음, 서정일 옮김 / 알마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이런 몇몇 사소한 꾸밈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의 변장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직접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게 했다. 연기 삼아 하는 바보짓이 나를 더 대담하게 만들어주었고, 그토록 이성적이고 우월하며 궁극적으로 정의롭다던 이 사회의 편협함과 냉혹함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따. 나는 사람들이 진심을 꾸미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바보였다. (11)

내가 감히 대꾸를 하려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도 확실한 거쳐 모무를 곳 없어요!" 더이상 설명도 않고 나를 밀치며 문을 닫아버린 것을 보니, 그가 이 말을 하느님에 대한 모독으로 느꼈던 것 같다. 자격을 갖춘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ㅗ디려는 내 결심이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주기 위해 계속 초인종을 눌러대자 신부는 혼내주려고 다시 문을 열었다. "여기는 난민수용소가 아니오. 당장 떠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소!" 나는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애원하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그리스도교적 양심과 직업적 사명을 환기시키려고 애썼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그러자 대답 대신 문이 꽝 닫혔다. (70)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관료티를 전혀 내지 않는 이 젊은 신부의 발음에 약간 동유럽 쪽 억양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는 4년 전 폴란드에서 이주해온 사제였다. 아마 자신이 겪은 경험 때문에 박해받는 외국인과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거나 적어도 이들이 처한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자신이 고국에서 박해가 어떤 것인지 체험했거나, 최소한 그곳에서 배가 불러 비대해진 제도권 교회 아래에서 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여기 사람들이 그를 환영받지 못하는 외국인으로 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즉 ‘자유로운 독일 한쪽‘에 와서 비로소 감정이입 능력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91)

쉬는 20분 동안 우리는 먼지가 좀 덜 쌓인 철제계단에 앉아 있었다. 터키인 노동자들은 내가 음식을 싸 오지 않은 것을 보고는 자신들이 거져온 빵을 나눠 먹자고 권했다. 이들 가운데 제일 연장자인 네딤은 자기 보온병에서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 이들은 얼마 안 되는 음식을 서로 나누면서 모두 부드럽고 친근하게 대했다. 나는 도깅ㄹ인 노동자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데 눈에 띈느 것은 쉬는 시간에도 이들은 대부분 독일인 동료들과 멀리 떨어져 앉고, 서로 대화를 나눌 때도 터키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 나중에 그 이유를 네딤이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자기들 험단을 하는 줄 알아. 그리고 터키어로 말하면 우리가 지나치게 강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자신들이 우리에게 더 쉽게 명령할 수 있도록 전부 다 알고 싶은 거야.." ... "너희들 무슨 예기를 하려면 독일 말로 해. 독일에서는 항상 분별 있는 독일 말로 하란 말이야. 돌대가리 같은 너희들 말은 제발 너네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실컷 지껄이라고."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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