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출판을 위하여
니시야마 마사코, 김연한 / 유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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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가가 작품을 보내오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는 방식은 싫고, 할 수도 없어요. 좋은 저자에게는 우리 출판사보다 조건이 좋은 대형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줄 서 있어서 저같이 작은 곳은 결국 맨 뒤에 서게 됩니다. 그러면 ‘작은‘ 출판사는 너무 불리하죠. 그래서 역으로 제가 공유하고 싶은 주제를 저자에게 제안합니다. 1인 출판사는 작가들이 볼 때 단점도 있겠지만, 5년, 10년이 지나도 담당자가 바뀌는 일이 없어요. 변치 않는 정열로 책을 계속 소개한다는 점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8)

도요샤는 쓰는 이의 ‘개인으로서의 태도‘를 가장 존중하고 싶습니다. 글 이전에 먼저 그 인물의 행동이 있으니까요. 사카구치 씨는 지금이야 작가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그가 정말로 행동할 때는 발로 뛰어다니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카구치 씨를 작가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출판사도 그걸 좋다고 할 때, 책을 내면 됩니다. 개인 활동의 부산물로서 책이 나오면 좋겠어요. (55)

시와 문학은 본질적으로 더 인간적인 부분, 생과 사에 얽힌 ‘혼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시는 혼을 짧은 글로 응축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면에서 그 외의 문학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시집, 가집..., 구집... 등을 만드는 일은 혼의 목소리를 형태로 만드는 특별한 일이기에 더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94)

기타무라 씨의 삶은 마치 흰 선의 바깥쪽을 걷는 것 같았어요. 가족은 소중히 여겼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지 않는 삶을 택했어요. 흰 선의 바깥쪽으로 나가서 자신만의 시를 얻은 거죠. 그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얼마나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저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지만, 그런 기타무라 씨의 자세를 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98)

대부분의 책은 표지를 디자이너에게 의뢰하고 본문 조판은 저와 직원이 합니다. 본문 작업을 내부에서 하는 것은 애초에 경제적인 이유에서 선택했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공정입니다. 본문 레이아웃이 정해질 때까지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에요. 그 작업을 통해서 지금 만다는 책의 본질을 잡거나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공정이 없으면 어떻게 책으로 만들지 잘 안 보입니다. 이건 제 생각이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학술서든 시집이든 문예서든 책의 핵심에 접근해서 그것을 어떻게 전개하고 독자에게 전할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이걸 ‘책의 핵심을 끝까지 잡아낸다‘고 합니다. (100)

책의 중요한 역할은 세상의 ‘작은 목소리‘를 줍는 일이에요. 그 일을 하는 우리가 대기업처럼 스펙이 좋은 인재를 채용해서 일에 효율을 추구한다면 획일적이어서 재미가 없고, 흐리멍덩한 공기 속으로 우리도 들어가 버립니다. 어떤 사람과도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실제로 책을 만드는 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감각의 공유는 드러나는 행동으로는 할 수 없고, 함께 일을 해야 가능합니다. 즉시 일할 능력과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이 일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결과를 요구할 게 아니라 어디에 도착할지 몰라도 매일 함께 걸어가는 겁니다. 그러다 어떤 풍경이 보일지도 모르잖아요. 시간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회사는 사람이 전부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날마다 성장한다고 믿고 가야 출판의 밝은 미래로 이어집니다. (128)

그런 의미에서 매일 아침 아무도 안 보는 곳까지 청소하고 물 주는 일의 반복을 뭐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어요.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먼지까지 신경 쓴다면, 일상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게 됩니다. 또 그것은 제가 교토에 사무실을 두기로 판단을 하는 데도 직결됩니다. 행동할 수 있고 없고는 일상의 자세가 결정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되지요.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매일 그런 자세로 일하고 싶어요. (138)

눈앞에 살아 있는, 비슷한 세대의 작가들과 소통하면서 제 삶을 뒤흔드는 리얼리티를 가진 작품과 만났어요. 그로 인해 자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죠. 더구나 사진 자체가 위험한 날것의 느낌이 있었어요.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등의 기준 이전에 뭔가 생명체 같은 혼란스러운 생생함. 그것에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이 두 책을 내고 나니, 제가 사진집을 만들 때와 다른 책을 만들 때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주 보는 상대가 살아 있는 작가인 경우, 몸에 오는 풍압이 달라요. 물론 충돌할 때도 있지만,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작가와 호흡을 맞추고 싶습니다. 오늘을 사는 사진가들의 작품을 책으로 만들고 싶은 열망이 더 강해졌거든요. (159)

처음에는 그에 관해 논문을 쓸 생각으로 태어난 해 같은 인적 사항을 물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경찰 심문 같은 이야기엔 관심이 없어.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한 것을 당신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야"라고 단칼에 거부했어요. 불쾌하다고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죠. 대관절 대학에서 배운 정체성론 따위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요. .. 70년 가까이 여행으로 살아온 사람의 압도적인 말에 고작 스무 살인 제가 맞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한 권의 책 같은 존재였거든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더니 제가 읽어 왔던 어떤 책에도 없는 진실의 페이지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178)

책의 구매자는 20~40대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책을 안 삽니다. 시간이 있으니까 가지고 있는 책을 다시 읽고, 책을 늘리지 않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요. 돈을 내서라도 책에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절박한 욕구를 가진 독자층은 역시 성장 중인 젊은 세대예요. 옛 문학을 왕년의 문학 팬 대상으로 만들면 비즈니스가 되지 않아요. 책을 파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이상, 젊은 세대를 정확히 겨냥해서 옛 지혜와 이야기를 새롭게 단장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그 문맥과 제안을 확실히 전달해야 합니다. (189)

또 하나 생각하는 것은 종이책의 다음 가능성이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저는 디지털 미디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종이책을 읽는 시간은 누군가와 공유하기 어렵습니다. 타인이나 일상과의 경계가 끊겨야 혼자 있는 시간이 깊어지죠. 깊은 고독 속에서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시공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끊겨야 연결되는’ 미디어가 그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SNS처럼 ‘끊기지 않는 연결’을 위해 존재하는 디지털 미디어와는 소통의 역할이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디지털 미디어로 모조리 바뀌진 않을 거라고 봐요. (191)

자기가 만든 책이 어떻게 팔리는지 바로 느끼기 때문에 오키나와의 출판사는 독자에게 꼭 필요한 책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오키나와산 도서의 80퍼센트 이상은 오키나와 내에서 팔린다고 한다. 만드는 이와 파는 이, 사는 이가 모두 가까이 있고 때로는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196)

라쿠고...를 자주 참고합니다. 에도 시대의 라쿠고는 가부키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입장료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오락이었어요. 저는 라쿠고가 하는 일을 전혀 다른 장르에서 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해, 인간문화재가 된 야나기야 고산지 씨가 "고전 라쿠고는 있는 그대로 하면 재미있으니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읻. 따라서 쓸데없는 걸 보태지 말고 그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하셔서 시야가 확 트였어요. 책 만들기도 쓸데없는 장식은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좋은 본질 그대로를 어떻게 책에 담을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려면 좋은 것을 더 잘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편집력이 아닐까요. (250)

20대 후반에는 저도 일과 결혼, 이직에 관해 나름 고민한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느 것을 선택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나이에는 다들 진지하게 고민하죠. 이걸 선택하면 저건 포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것을 선택해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그 뒤에도 인생은 기니까요. 제가 <일 문맥> 발생을 시작하고 인디자인을 독학으로 공부할 때도 40대 후반이에요. 남들이 그 나이에 이런 일을 잘도 한다고 하는데, 해마다 새로운 일만 하고 있어요(웃음). 도전이라고 하긴 뭐하고 찾아보면 편리한 도구가 여러 가지 보여요. 그런 것들을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앗, 또 혼자서 해 버렸네......‘ 하고요. (272)

- 당시 사가판 만화집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예를 들면 더미나가 이치로 씨 등은 사가판이라도 케이스가 있는 호화판을 만들었지만, 이노우에 요스케 씨 작품은 중철로 된 1도 인쇄의 간단한 책이었어요. 저는 그 단순한 책의 마니아스러운 느낌, 알멩이만 멋지면 된다는 발상이 사랑스러웠어요. 지금도 그 기억이 남아서 톰즈박스에서는 단순하면서 멋진 책을 만들려고 해요. (278)

"이 책은 우리 서점에선 안 팔려요"라고 하면 "그렇군요‘ 하고 물러나고 "잘 팔릴 것 같아요"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기뻐한다.
그러나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책의 가치는 팔린다, 안 팔린다만이 아니다. ‘팔고 싶다‘는 것도 있다. ‘안 팔릴지‘도 모르지만 ‘팔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나온 책은 서점에서 봐도 뭔가 다르게 보인다. 마음이 담긴 것처럼 보인다. 나는 책 파는 데 프로인 서점 직원들이 ‘팔고 싶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90)

발생되는 책 종수가 해마다 증가하면서 ‘이 책은 A서점에 몇 권, B서점에 몇 권‘ 하는 식으로 애당초 정밀한 판단 자체가 어려웠던 작업은 더 어려워졌다. 서점 측도 ‘안 팔리면 반품하면 돼‘라는 관행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 책은 우리 서점에서 몇 권 팔 수 있을지‘ 파악하는 힘을 잃어 버렸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서점에 놔 보고 반품되면 또 다른 책을 보낸다. 이것을 되풀이하면서 매월 명목상의 매출을 올리려는 곳이 늘었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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