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령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 처음에 담당했던 실용서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요리책 같은 것은 단 한 권도 사본 적이 없었고요. ... 도대체 왜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일까부터 시작해서, 일을 일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사토 씨에게 자주 혼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서가 책장 전체가 보이는 순간이 있었어요. 필요한 책의 배치, 진열법 같은 것이 한꺼번에 말이에요. 역시 상을 받은 3년째였던 것 같아요. (29)
나는 안이안 ‘카리스마 서점원‘ 취급은 싫지만 책을 매개로 사물의 도리를 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서점원들이 좀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 지역에서 존경받는 의사나 교사와 같은 존재에, 지역서점 주인이나 서점원이 포함되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역할이 과거에 있었고, 앞으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39)
원래 내가 영역 설정을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없어요‘, ‘우리 집에서는 취급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하는 태도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었다. (63)
‘이처럼 모순적이고 말이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많은 책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베테랑 서점원들이라면 ‘뭐 그럴 수 있지‘라며 쓴웃음을 지을 뿐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칙으로부터 일시적인 붐으로 끝날 책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서점이란 그런 책까지도 시대의 산물로 매장에 진열하며 좋은 싫든 어른스럽게 대처하는 곳이다. (71)
지역과의 관계가 깊지 않으면, 역시나 사람이 적은 데서는 버티기 어렵지요. 거기서 할 수밖에 없는, 뭐랄까 업보 같은 것이랄까, 그런 게 없으면 관둬야 하는 이유가 너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젊은이가 그렇게라도 해서 새로운 서점을 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내 경우에는 이상을 가지고 서점 비슷한 것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차라리 운명이라고나 할까....... 큰아버지에게 물려받기로 스스로 정했지만, 나로서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거든요. 책을 그리 많이 읽으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요. 어린이 책은 상당히 공들여 장사했지만, 이것도 많이 읽지는 못했어요. 집에 가면 아이 셋의 엄마 역할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거든요. (100)
그때가 좋았지....... 나이 든 사람들로부터 수도 없이 그런 말들을 들어왔다.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깍아내리는 말인지 본인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때가 좋았다‘는 말은 ‘지금은 안 좋다‘거나 ‘좋았던 그 시절‘에 자신이 한 일이 현재는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자신이 해온 일이 지속해야 할 가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정말로 필요한 일을 해왔다면 반드시 지속될 것이다. 지속될 필요성이 없는 일을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지속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연배가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157)
소설만 하더라도, 보통 서점원의 독서량은 기껏해야 1, 2천 권, 아니면 수백 권이나 그 이하밖에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다구치는 수천 권 단위가 아니라 만 권 단위의 독서 체험에서 <<1858년의 대탈주>>를 지목한 겁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화면으로 보면 다구치나 다른 서점원이 모두 ‘좋은 책이다, ‘팔아봅시다‘ 그러거든요. 그렇지만 두 사람은 똑같지가 않습니다. 독서량의 차이는 인터넷에 몇 줄 써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구치는 두드러진 경우지만, 그런 사람이 그 사람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참 나이가 어려도, 이 친구는 어지간히 읽는 서점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164)
세대가 같은 나라 도시유카와 우치다 다츠루에게 <증여론>이 중요한 고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나라와 나이가 같은 하시즈매 다이사브로...의 <처음 배우는 구조주의...>...에 따르면, "내가 대학 문을 나설 무렵은 마침 구조주의 붐이 거칠게 불어닥쳐 절정기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우치다 다츠루와 나이가 같은 나카자와 신이치...의 <순수한 자연의 증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불황에 빠진 프랑스 등 유럽 각국에 미국식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크리스마스라는 전통적인 제사가 미국식 상업주의에 흡수되기 시작할 때 "마르크스도 케인즈도 이 문제 앞에서는 그다지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때 예민한 몇 사람은 마르셀 모스의 사상만이 여기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7)
"서점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작은 가게를 시작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을 위해서는 1만큼의 힘이 필요하다는 식의 효율만 생각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1을 위해서 8의 힘을 써본 경험이 많을수록 그 이야기는 좀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214)
나라는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말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다른 직원들을 연결시켜준 것도 나라인 듯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그때 무엇을 위해 그리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 고립된 한 사람과의 교류를 중시했던 경험은, 나라가 이윽고 데이유도 서점을 개업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227)
나라 도시유키가 화두로 내건 ‘독립적인 자영서점이 아닌, 대형서점 매장 담당자로서의 서점에 대한 욕망‘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경영자는 어떻게든 시곗바늘을 한 방향으로만 돌리려 한다. 매장 담당자에 지나지 않는 서점원은 그 시곗바늘을 반재로 돌려야 할 역할이 있다. 한 명의 서점원이 ‘책‘을 전하는 행위는 때로는 한 회사의 부침...보다 더 무겁다. (249)
인문서와 같은 특정 분야로만 국한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신간서점 대부분은 어떤 책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맥락이나 흐름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방대한 양의 책이 출간되고 사라지는 데만 대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점적으로 밀고 싶은 책을 한 권이라고 내세우는 서점원은 현실에서 자기 발언을 하는 것이지만, 이것도 책의 계보를 보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책은 과거에 나온 책의 도움으로 영감을 받아 나오는 것‘이라는 ‘책‘의 기본조건이 매장에 표현되어 있지 않다. 중고서점에 내가 관심이 커지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274)
"서점끼리 연계하는 것은 이제 안 했으면 합니다. 다른 분야 사람들과 어울려야 우리를 넓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점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이제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노동은 힘들수록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힘든 노동을 통해서만 제대로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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