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류쇼에는 마감이 없다. 모든 원고를 훑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검토한 후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오만은 허용되지 않았고 독자도 겸하한 마음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오가와는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23)

그런 만큼 ‘잘 나갈 것이다‘ ‘널리 보급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출판하는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 아니겠는가. 그럴 때는 보통 가능한 ‘정가‘를 낮추고 ‘부수‘를 늘린다. 하지만 후지와라쇼텐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았다. 애초부터 환상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지중해> 첫 권은 2000부를 발행했다. 그리고 발매 초기부터 1000부 단위로 몇 달동안 중쇄를 거듭해 2001년 초까지 1만 5000부를 팔았다. 소부수, 높은 정가.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가진 독서인들이 원하는 책을 기획해 최대한 높은 정가를 매겨 2~3000부를 확실하게 파는 것. 이런 후지와라표텐의 마케팅 수법이 적중한 것이 <지중해>였다. ‘얼마나 벌 수 있는가‘ 보다는 ‘손해를 최소화하는‘ 지점에서 채산을 맞춘 덕이다. 이렇게 진행해 몇 권이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64)

국제적인 두 학자, 그것도 사회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권위자다. 후지와라쇼텐은 두 사람의 대담을 기획해 날짜까지 정해 두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병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두 학자는 모두 사선을 넘어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했다. 대담은 형태를 바꾸어 두 사람의 왕복 서간집 <해후...>(2003)로 출간되었다. ... 다다 도미오는 왼손에 지팡이를 들고 조금씩 걸을 수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다. 쓰루미는 오른쪽 뇌를 다쳐 말은 할 수 있지만 왼쪽 하반신을 쓸 수 없다. 두 사람은 쓰러지고 난 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사상을 향해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이것이 당초 기획을 뛰어넘은 엄청난 책의 탄생 배경이다. 두 사람이 각자 전문 분야에 대해 설명하고 서로 배려하며 만들어낸 이 왕복 서간집은 간행되자마자 여러 매체의 서평에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화제작이 되었다. (69)

여러분은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었는가? 지금도 그 꿈을 기억하는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1945년, 열 살이 된 다나카 가즈오...는 ‘어른이 되면 고서점을 해야지. 내가 주인이 되면 아이들이 책을 읽어도 총채로 떨며 내쫓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다. (71)

산리즈카에 온 나카자토를 기다린 것은 ‘인간의 삶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자기가 편한 길을 선택하면 별 재미가 없다‘는 가카기의 한마디였다. 나카자토는 산질즈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도쿄에서 맺을 수 없는 농밀한 인간관계, 논이나 밭에서 하는 육체노동, 그 밖에도 인생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92)

먼저 일본의 한센병을 다룬 <소장 ‘한센병 예방법, 인권침해사죄 국가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살펴보자. 한센병은 감염률이나 발병률이 매우 낮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과거 전시 체제에 돌입하면서 ‘조국정화, 한센병 없는 일본‘이라는 모토 아래 모든 한센병 환자를 강제 수용소에 격리했다. 이 정책은 ‘한센병 없는 아시아‘라는 미명하에 한반도 등 식민지까지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용 시설에서 치료를 받아도 사회에 복귀할 수 없었다. 생식 능력을 없애는 단종 및 우생 수술을 시술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만든 후, 모두 똑같은 옷을 입히고 요양소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사용하게 해다. 또한 강제 노동으로 증상을 악화시키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죽음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중징계를 내렸다. 한편, 환자들은 가족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두려워 가명을 사용하는 등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를 감내해야만 했다. (108)

전쟁이 없다는 것,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상이었다.
마치 밤이 되어 전등 스위치를 켜는 것,
잠옷을 입고 잠드는 것처럼...
전쟁에서는 졌다. 그러나
전쟁이 없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112)

‘깨끗한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지면에 대한 고집은 광고를 싣지 않고 편집자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된 잡지라는 편집 방침을 만들어냈다. 광고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가 지불하는 책값으로 잡지 제작비와 급여를 충당했다. 시대보다 ‘반 보 앞서가는 잡지 만들기‘를 표방한 삶의수첩사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반드시 자신의 삶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파고들어 납득할 만한 기사를 썼다. 그 결과 놀랍게도 어떻게 독자의 공감을 얻었는지 창간 이후 각 호가 몇 년간 중쇄를 거듭했다. (115)

신간 위탁은 하지 않지만 한 세트씩 판매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므로 구입한 고객을 모두 파악해둔다. 구입한 사람의 이름을 대장에 기록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점에서 판매한 것이라도 가능한 한 끝까지 추적한다. 새로운 자료를 발견했을 때 목록에 있는 이들에게 무료로 자료를 보낸다. 애프터서비스까지 책임지는 활동의 근본은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집을 낸다는 후지출판의 원칙에서 비롯된다 오노는 ‘20년이 지난 후에도 누가 샀는지 알고 있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130)
......
이제 궁금증이 조금은 풀린 듯하다. 후지출판의 가장 큰 특징은 간행 분야를 확대하지 않고 판로가 되는 데이터를 충실히 축적한 점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다음 기회에 활용한다. 즉 깊어지는 방법이다. 새로운 기획을 판매하는 동시에 재고도 처리한다. 몇 번씩 판촉 활동을 할 수 있으므로 연구가들에게 정보가 전달되지 않을 염려는 없다. (131)

"저희 회사는 근본적인 지...에 대해, 그리고 책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 현대사회에서 ‘관계 회복‘을 위한 길을 찾고 싶습니다." (223)

"우리 회사는 근원에 대한 역행과 미래에 대한 투기... 없이는 절대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고 믿으며 시대를 개척하고 엮어내는 방법으로서 책 만들기에 주력하고 싶습니다." (226)

"고령자 또는 특별한 욕구를 가진 분들로, 일반적인 종이책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독서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싶다. 그것이 도쿠쇼코보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나리마쓰는 50대, 60대, 70대부터 시각이나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책을 기획했다. (233)

슌주샤는 이렇게 얻은 이익으로 자사에서 책을 내고자 하는 저자에게 머물 곳을 제공했다. 이러한 행위가 나중에 새로운 자산을 낳는 초석이 되었다. (253)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선생님은 무심코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아시아 민중들의 인간 이하의 삶 위에 성립된 것‘이라고 하셨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에서 자란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무언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 나의 얄팍한 지식, 인간관계 속에서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자본주의와 식민지 관계에 대해 읽거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론일 뿐이었다. 이렇게 인간에 근거하여, 생활에 근거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어떤 슬픔마저 감도는 어투로 말한 이가 있었던가. 이론이 아닌 인간의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그 한마디에 나는 깊이 감동했다. (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