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칭 - 숨은 시장을 발굴하는 강력한 힘
앨빈 E. 로스 지음, 이경남 옮김 / 알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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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권거래소… 같은 큰 시장부터 동네 농산물 직매장 같은 작은 규모의 시장에 이르기까지 시장은 이렇게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시장이 좀 더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이들 규칙을 계속 조정해 나가는 작업이 바로 ‘시장 설계’다. ‘설계’를 뜻하는 영어 단어 ‘design’은 동사이면서 동시에 명사다. 아무리 느리게 진화하는 시장이라도 나름대로 하나의 설계를 갖고 있다. 비록 의식적으로 설계한 사람이 없더라도 말이다. (24)

매칭 프로세스를 연구하다 보면, 참가자들이 ‘시스템과 작전 싸움’을 벌이는 방법을 알아낼 때가 종종 있다. 설계가 잘 된 매칭 프로세스는 참가자들이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고려한다. 그래서 시스템과 작전 싸움을 벌일 필요성을 줄여 참가자들이 자신의 진정한 요구와 욕구를 확인하는 데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도 시장 설계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참가자들이 시스템과 작전 싸움을 벌이는 일을 막을 수 없다 해도, 시장 설계자들은 시장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전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야말로 좋은 시장이다. (30)

시장 설계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행동과 관련이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행동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무조건 이득만 취하려 들거나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의 주장은 기존의 경제적 가설을 뒤집었다. 시장 설계자들이 이들의 성과를 간과한다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지정 신장 기증자들만 봐도 그렇다. 기존의 전통적 경제 모델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자기 위주로만 행동한다면, 이타적인 기증자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동시적 체인에 있는 기증자들은 또 어떤가? 사람들이 자신과 자기 가족과 친구에게만 관심을 갖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신장을 기증받은 후에는 약속을 어기고 기증 계획을 철회하는 일이 잦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92)

이 모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창업자들은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 어떻게 하면 구매자와 판매자를 많이 끌여들여 시장을 두텁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 그 결과 나타날 수 있는 혼잡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즉 어떻게 하면 시장이 두터워졌을 때도 시장의 속도를 빠르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 어떻게 하면 시장을 안전하고 믿을 만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176)

이런 시각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열심히 추구하는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곧 안정적인 결과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차단 쌍이 있다면, 즉 시스템 밖에서 서로 매칭되기를 바라는 회사와 근로자가 하나라도 있다면, 어떻게 그들을 막는단 말인가.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그 시장은 불안한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앞에서 그런 쌍이 만나는 것을 막는 요소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장이 너무 얇고 너무 혼잡하고 너무 위험하여 관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그렇다.
…… 이런 불안한 알고리즘을 택한 영국 정보 센터는 결국 실패했고, 이해 당사자인 지원자와 병원(차단 쌍)이 시스템을 피할 방법을 알아낸 뒤 정보 센터는 폐지되었다. 하지만 같은 영국의 정보 센터라도 안정된 결과를 낳은 곳은 매칭에 성공했고, 그들의 프로그램은 계속 활용되었다. (234)

이런 맥락에서 내게 던져진 질문 한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그동안 필요한 의료진을 다 채우지 못했던 시골 병원에 ‘매치’를 조정해 레지던트를 더 많이 보낼 방법을 찾을 수 있는가?"
……
어떤 병원이 안정적인 결과에서 빈자리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병원은 어떤 안정적 결과에서도 그 정도의 의사들 밖에 확보할 수 없다. (249)

관심과 바람직성, 이 두 종료의 정보가 모두 안전하게 전달될 때, 시장은 원활하게 제 기능을 발휘한다. (293)

차점 가격 경매에서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적어 내는 것이 안전하지만,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것이 손해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고가 봉인 입찰 경매에서는 입찰자가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적어 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경매에 이길 경우 입찰가를 전부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이득을 얻으려면 진정한 가치에 따라 매긴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을 적어 내야 한다. 결국 최고 가격 경매에서 파는 사람은 최고 입찰가를 받지만, 그 가격은 최고 가격 입찰자의 진정한 가치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에 비해, 차점 가격 경매에서 파는 사람은 차점 입찰가만 받지만, 그때 나오는 입찰자들은 그 물품의 진정한 가치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적어낸다. 즉, 경매 방식이 바뀌면, 입찰가도 바뀐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상쇄 효과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301)

한 가지 우려는 ‘대상화…’다. 대상화는 어떤 사물(신장)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 그리고 그것을 사고파는 행위가 그것들을 그것이 속해서는 안 되는 비인격적 ‘대상’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즉, 그런 행위는 그 사물이 가지는 고유한 ‘도덕적 가치’를 잃게 만들 위험이 있다.
또 다른 두려움은 ‘강제성…’이다. 상당한 액수의 금전적 지급은 사실상 거부하기 힘든 제의로 일종의 강제적인 회유일 뿐이어서, 보호받아 마땅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에 노출시키게 된다. (334)

그렇다고는 해도 시장을 금지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을 통제하는 한 가지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법을 제정해도 시장을 막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무턱대고 시장을 불법화하면, 합법적인 시장만 사라진다. 우리가 금지시키려는 시장, 즉 혐오 시장은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기어코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런 시장이다. 서로 거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다. 시장을 오랜 역사를 지난 채 침투력이 강한 인간의 활동 무대로 만든 바로 그런 세력은 합법적인 시장을 막는 곳에서 암시장의 모습으로 고개를 튼다. (347)

"사회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태도는 식물을 가꾸고 식물의 성장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식물의 구조와 그 기능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정원사의 태도와 같다." (367)

이처럼 장터를 통한 시장 설계는 농업보다 역사 깊은 태고의 인간 활동이다. 그러나 그 역사가 1만 년도 더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시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경제학자들은 언어를 생각하는 방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연현상을 보듯 시장을 연구했다. 그래서인지 시장은 아직 우리의 손아귀 안에 있는 것 같지 않다. (372)
……
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설계를 다시 하면 된다. 아예 새로운 시장을 설계할 수도 있다. 시장 설계는 시장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연구하고 조심스레 감시할 수 있는 기회다.
시장은 자연 현상이 아닌 인간의 발명품이다. 시장 설계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유구하고 본질적인 발명품을 유지하고 개선할 기회를 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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