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한 오라기의 혁명 - 자연농법 철학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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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를 말하고도 그 하나를 말하지 못했고, 무엇 하나 남길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참회록이다. (5)

"이쪽에는 선창이 있고, 저쪽에는 제4부두가 있다. 이쪽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쪽이 있다. 이쪽이 생(生)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쪽에 사(死)가 있는 것이다. 사를 없애고자 한다면 이쪽에 생이 있다는 생각을 놓으면 된다. 생사는 하나다." (20)

교육에 관해 저는 이런 걸 느끼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전, 처음 감귤산에 들어가서 자연농법을 표방했던 시기에 저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방임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방임‘과 ‘자연‘을 혼동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가지가 혼란을 일으키며 병충해에 시달리게 되면서 70아르 감귤산을 망쳐버렸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자연형이란 무엇이나?"는 문제를 머릿속에 넣고 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오랫동안 모색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연형이란 이런 것이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연형을 만들게 되면서 병충해 방제도, 농약도 필요없게 됐습니다. 가지치기라는 기술도 필요없게 됐습니다. 자연을 이해하면 인간의 지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교육에서도 이치는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래서 실패했지만, 방임과 자연을 혼동하고 방임이 자연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른바 방임상태로 내버려두니까 다시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이라면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25)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방법의 골조는 취하더라도 비료나 농약, 농기구조차 쓰지 않는다고 하면 현대사회 속에서는 대단히 지장이 많기 때문에, 때와 경우에 따라서는 써도 무방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장려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농가에서는 과학을 부정하는 자리까지는 물론 갈 수 없고, 영자를 절충한 듯 보이는 자리에서 해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쓰는 것과,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진짜 농법이라는 생각에서 쓰는 것과는 오십보백보처럼 보여도 향하고 있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실제로 가서 보면, 더딘 한걸음일지언정 진정한 농업의 원류의 돌아가고자 하는 기색이 있는가 하면, 바로 두걸음 거기에서 벗어나는 결과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되면, 세상은 참으로 어느 쪽으로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역시 한발짝도 자연 농법에 가까워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욱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5)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짚을 덮는 방법이 잘못된 경우였습니다. 짚을 가지런히 늘어놓아 실패한 경우인데, 그렇게 하면 짚에 가려 발아율이 떨어집니다. 가지런히 늘어놓는 것보다 마구 흩어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벼에는 반드시 보릿짚이 아니면 발아가 잘 안 됩니다. 다량의 볏집을 사용해보면, 볏집 사이에서는 싹이 즐 트지 않더군요. 또한 병충해에도 걸리기 쉽습니다. 보리의 경우는 볏집이 대단히 좋고, 벼에는 보릿짚이 아니면 안 됩니다. 짚은 기장 그대로 훌훌 뿌립니다. 그 땅에서 나오는 짚 전량을 몽땅 원래의 그 자리로 되돌려줍니다.
이것은 입으로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는 단계가 되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씨앗을 제대로 뿌리고 짚을 흩어뿌려주는 작업만을 이야기하더라도 저는 여기서 하루가 걸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진실로 납득해주시기까지에는. (65)

색깔(물질)만을 보는 서양 영양학에서도 세가지 색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부분적이고 근시안적인 방법에 불과합니다. 당근, 가지, 토마토와 오이를 먹으면 좋지 않느냐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색깔에 유혹되거나 헷갈릴 뿐입니다. 더 큰 안목에서 조합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채소라면 채소의 원점, 과일이라면 과일의 원점, 고기의 원점, 어패류의 원점, 그리고 화본과 식물이라면 피, 기장, 보리, 벼 등 이렇게 원점에 가까운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먹고살 수 있습니다. 역시 욕망이 맣으면 많을수록 그 욕망을 위해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며,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면 뛰어돌아다니지 않으면 안됩니다. 반면 진귀한 것을 먹고자 하지 않으면 기차나 배로 멀리까지 나다니지 않고도 먹고살아갈 수 있습니다. (115)

현재 인간이 이 지구상에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는 것은 태어나야만 할 동기와 조건 그리고 인연이 있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도 일단 태어난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먹으며 살고 있다든가, 어떤 것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은 인간의 좁은 생각입니다. 자연에 맞겨두면 죽을 리가 없어요. 자연의 힘에 의지하고 있기만 하면, 자연에 따르는 생활을 하고 있기만 하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 그것이 최초의 원점인 것입니다. 그것을 망각할 때 인간은 탄수화물과 지방과 단백질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질소와 인산과 칼륨을 주고 거기다 물을 주면 식물은 살이 오르며 성장한다는 이런 단순한 과학지식이 토대가 되어, 인간이 살고 식물이 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입니다. (130)

저는 얼마 전에 놀란 일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 작은 신사...의 배전...을 청소하다가 거기에 액자가 걸려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액자에는 예사 실력이 아닌 하이쿠... 수십구가 쓰여있더군요. 이 자그맣고 보잘것없는 마을에서 20~30명이나 되는 사람이 하이쿠를 지어서 봉납한 것이었습니다. 대략 100~200년 전의 일로 짐작되는데, 그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라면 궁핍한 농가뿐이었을 텐데도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연재는 이 마을에서 한사람도 하이쿠 따위를 짓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나 이삼일 공기총으로 산토끼 사냥을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레저라지만 그것도 텔레비전이 주체이고, 생활과 밀착된 놀이시간이란 것은 오늘의 농부에게는 모두 사라져버린 실정입니다. 이것은 농업이 물질적으로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빈약해졌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7)

미국에 가며 저는 미국 농민들에게 일본 농가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지나친 수출을 그만두어달라는 부탁을 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사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돌아다녀보니 미국 농민들이 얼마만큼 고생하고 있는가가 몸에 스미듯 느껴졌습니다. 호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은 데다 자연의 힘으로 만드는 농작물이 아니었습니다. 석유에너지를 가공해서 만든 농작물을 내놓는 데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무엇 하나 좋을 것이 없습니다. 선키스트 따위 기업만이 과즙을 일본에 수출한다거나 하여 큰 이익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농가는 대단히 소박한 정신으로 소박하게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검소한 생활로, 식사는 마치 돼지의 밥입니다. 근대적인 기계를 사용하는 데다 농약을 뿌린다거나 비행기를 사용한다거나 하여 얼핏 근대농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농사 그 자체는 대단히 소박하며 유치한 농법으로 단순 작물밖에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238)

보스턴 세미나에서 제가 이야기한 것은, 이러한 사실로부터, 어떤 이유로 미국인의 사상은 모조의 푸르름을 만들었고, 또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잔디가 부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아름답기는 틀림없이 아름답지만, 그것만으로는 제게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차를 달이거나 꽃꽂이를 할 기부이 생기겠습니까?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진짜 자연에 녹아드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은 도무지 들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단순하며 평면적이 기하학적인 시멘트 공원 속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데, 이것이 진짜일까, 아니면 인간이 만든 초록 속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미국인이 진짜일까, 이것을 의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클라크 박사의 말...에 대한 답례로서, "이 대학 구내의 초록이 가짜 초록인 것을 간파해낼 수 없는 학문이라면 없어도 좋다. 미국의 청년이여, 분기하라. 미대륙의 자연이 허구의 자연이 돼버려도 좋다는 말인가"라고 대언장담을 하고 왔습니다.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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