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들었던, 아직도 잊지 못할 그의 명언이 있다. 누군가가 물었다. "창의성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창의성이란 베끼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명료했지만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고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항상 베끼기만 해 왔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나는 진화하여 기술자에서 창조자가 되었다. (24)
아버지는 우리들이 모아오는 각기 다른 모양의 장작을 어떻게 태워야 하는지 설명해 주셨다. 벚나무는 참나무와 타는 형태가 틀리고, 참나무는 올리브 나무와 또 틀리다. 나무는 그 자체로서 알아야 할 지식의 전부라고 배웠다. 어떤 나무들은 3~4분만에 빨리 타고 빨리 스러진다. 이러한 나무는 결정적으로 세게 끓여야 하는 순간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나무들은 천천히 타는 대신 오래 간다. 어떤 나무는 끓이기 전이나 후에 사용하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파에야에 불을 피우고 조절하는 일을 잘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얼마나 땀에 흠뻑 젖었던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마도 불의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서였을 것이다. (29)
그 바에서 나는 무언가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를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말지의 경계에 서서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삼촌, 그리고 이번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이 너무나 진지하게 음식에 관해 말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러나 "우리 엄마가 만든 것이 제일 맛있어......."라고 내가 아는 미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프로슈토를 먹기 전에 돼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했다. 그들은 창문 너머로 몇 마일 떨어져 있는 와인 마을이 위치한 방향을 가리치면서 이 와인이 바로 그곳에서 온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62)
시골의 제철 음식을 취해서 그것을 단순하면서도 품위 있게 조리하는 과정은 아주 정직하면서도 직설적이었다. 겉치레가 없는 이 음식들을 먹으면서 단순하고 정직하게 준비된 요리 이상의 것은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천상의 기쁨 비슷한 것을 맛본 것 같았고,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항상 그보다 나은 또 다른 음식을 찾는 것이 아니었음을 나는 또한 알게 되었다. 이 분의 농장에서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면서 아무도 그 전에 먹었던 다른 아스파라거스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다. 비교나 경쟁이란 없었으며, 생기 넘치는 감사함만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먹고, 이야기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골과 동화되어 있었다. (64)
이탈리아를 떠나면서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본능적인 수준에서 반응할 만한 음식을 만들고 싶다고 나는 막 깨달았다. 정직하고 겉치레가 없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좋은 품질의 재료를 찾아 이탈리아에서 했던 것처럼 음식을 존경하고 경외하고 싶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분명한 영감을 받게 되었고, 나는 오로지 그를 위한 한 길을 걸어 온 것이다. (65)
이 요리는 나의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내가 가능하다고 상상했던 것을 초월하는 수준의 요리를 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정직한 요리의 세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는 결코 아니었다. 요리에 대한 신념을 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게 되었고[비문], 수없이 많은 여러 가지 재료로부터 간섭을 거의, 아니면 전혀 받지 않고 순수한 미각 그 자체를 얻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뚜렷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고, 입천장과 눈, 코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어느 것도 천박하게 보였던 세계에서 요리라는 공예의 완벽한 달성을 인생의 행복으로 여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열정적이기만 하다면 아마추어의 집 주방에서도 가능한 것이었다. (155)
조지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을 즐거운 특권이었으며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가장 좋은 재료로 적절하게 조리된 것이었다. 지나치게 리치하거나 너무 많거나, 너무 젠 척하거나 그것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어떤 것을 추구하는 법이 없었다. 조지의 음식은 자신이 요리하고 싶어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가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영향을 받겠다고 선택한 것에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자기 자신의 요리와 요리 스타일을 어떻게 하면 더 세련되게 만들지를 추구하였다. 조지가 도달해 있는 수준까지 가려면 기나긴 세월과 비범한 재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157)
한 가지 도움이 된 것은, 특히 초보 단계에서는 빅터가 나를 칭찬하면서 요리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 준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평생 이 길을 걷게 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빅터는 내가 막 만들어낸 요리를 맛볼 때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와 키스를 하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다고 말하고는 하였다. 그래서 나는 계속 요리하고 발전하고 싶어졌다. 이런 방법으로 어린 신부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빅터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99)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요리책에 관해서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10개월의 시간을 주겠어요, 적어도." 그리고 빅터와 나, 우리 둘은 해냈다. 빅터는 너무 정확하였다. 너무나 정확하여 같이 책 쓰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무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을 때마다 그는 방으로 달려와서 내가 의미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매번 그렇게 했다. 내가 찾선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데도 아랑곳 없이 끼어들어 수많은 질문을 퍼붓고는 했다. 이걸 찔 때는 얼마나 많은 물을 찜통에 부어야 하지? 찜통 뚜껑은 닫아 놓아야 하나, 열어 놓아아 하나? 여기에는 왜 소금을 안 넣지? 이건 왜 이렇지? 저건 왜 저런 것이고? 그래서 나는 레시피를 다시 고쳐 쓰고, 다시 고쳐 쓰고는 했다. 서른 줄로 시작한 레시피가 예순 줄로 늘어났다. 그러나 레시피 내용은 더 좋아졌다. (203)
위층으로 주방장을 만나러 갔을 때 나는 그와 몇 미터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가 다시 한 번 칼을 휘두를 경우에 대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차분했다. "용서해 주겠다. 에릭." 그가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실수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어야지. 왜 오리를 하나씩 포장하지 않은 거지? 어떤 주방에서 이따위 것이 필요 하겠어?" 그는 실망스럽다는 듯한 몸짓을 하면서 내가 던져 놓은 오리 가슴살 덩어리를 가리켰다. "집중을 해야 했어. 너는 단지 기계처럼 일했을 뿐이다. 생각을 하지 않았어. 주방에서는 머리를 써야 하는 거야." (276)
"사용하지 않았어요, 주방장님." 어쩔 수 없었다. 도저히 나는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샐러멘더로 가서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지지지지지지지....... 전류가 그의 손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였다. 불행히도 그는 손을 떼내지 못했고 샐러맨더에 들러붙어 전기 충격을 받고 있었다. 바로 그 앞에 서 있던 나는 공포와 책임의식으로 얼어 붙었다. 다행히도 부주방장은 제정신이었고 달려가서 두꺼비집을 내려 주방의 모든 전기를 차단하였다. 전기가 끊어지자마자 주방장은 감자 부대처럼 마룻바닥으로 쓰러졌다. ...... 그는 나를 주 조각 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날 오후 철이 많이 들었으며, 남은 여름 기간 내내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였다. 그리고 ‘르 사르디날‘로 보내졌기 때문에 그런 수련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디에서라도 그저 우연히 겪을 수 있는 일이었는지,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다. (279)
믿을 수가 없었다. 므슈 엘르구아르슈는 계속 우리들 곁에 있었다. 어떻게 우리를 위해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지? ...... 식사는 4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식사가 너무나 유쾌했다. 지쳐 있던 우리는 이제 크리스마스 날의 맹렬한 노동을 상대할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수면을 취하기 위하여 아파트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므슈 엘르구아르슈는 우리를 또 놀라게 했다. "좋아, 자네들. 15분 쉬고 주방에서 다시 보자."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한 순간이었다. 므류 엘르구아르슈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그를 위해 거기 있을 것이고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특히 우리 모두는 므슈 엘르구아르슈가 해가 뜰 때까지 우리와 함께 일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84)
그러나 몇 번의 기분 좋은 아침 서핑, 끔찍한 호텔 주방에서의 우울한 날들과 마이타이 술을 폭음하면서 보낸 공허한 밤들을 겪은 후 나는 비참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비스트‘는 나를 변화시켰던 것이다. 나에게는 음식이 중요하고 일을 잘 하는 것이 (단지 그저 그런 수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했다. ‘하비스트‘의 창의적이고 생각이 많은 요리사들과 웨이터들의 공동체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지만 ‘하비스트‘는 내가 일부가 되어야 할 공동체였다. 세계의 모든 레스토랑에는 맥주와 웨이트리스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매사추세츠에서 서핑 하는 것도 하다 보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훌륭한 조언을 하신 것이다. 하와이를 안 가 봤더라면 나는 아마 무언가를 놓쳤을지도 모른다고 계속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어디 있어야 하는가를 확실히 알았다. 몇 달 후, 항공 요금을 모으자 마자 나는 ‘하비스트‘로 돌아갔다. (294)
새로 시작된 올빼미 근무 시간을 극복하는 것 외에도 베이커리 초창기에는 여러 번의 제빵 사고가 있었다. 반죽을 만들고, 덩어리로 모양을 만들고 빵을 구웠는데 빵이 나올 때에는 무언가 빠진 듯 했다. 이유는 몰라도 그냥 불만족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면 가게 입구로 가서 ‘open‘ 표지를 ‘closed‘로 바꾸고 차양을 내리고 다시 시작한다. 사업 파트너들이 극도로 흥분하여 무슨 일로 개점을 안 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올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309)
제빵사의 근무 시간이 참을 만한 것은 한밤중의 평화롭고 방해 받지 않는 시간에 일한다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이커리 문 밖의 세계가 마음이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빵과의 밀접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310)
막시맹 씨와는 8년을 함께 보냈다. 그는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고 폴 부퀴즈 씨, 알랭 뒤카스 씨, 가스통 르노르트 씨 같은 분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프랑스 곳곳에 나를 보내 일하고 여행하고 배우게 하였다. 군대에서 갓 제대하고 아무런 경험도 없던, 길을 가다가 일자리를 요청한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 말이다. (317)
피에르 씨는 일주일 내내 미키마우스를 만들었고 일주일은 한 작품에 들인 시간으로는 가장 긴 시간이었다. 완성된 미키마우스는 90센티미터 높이의 작품이었다. 작품은 완벽했다. ... 절대적으로 완벽했고 모든 부분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 하루는 냉동고로 가다 멈춰 서서 미키를 쳐다 보았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엄지손가락을 들어 미키의 배에다 대었다. 엄지 손가락을 떼자 크고 선명한 지문이 찍혀 있었다. 나는 도망쳤다. 며칠 동안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피에르 씨가 모든 셰프를 도열시키고 미키 배에 찍힌 지문과 우리들의 엄지손가락을 대조하는 꿈을 꾸었다. 솔직히 지문을 없애기 위하여 엄지손가락을 태우거나 지문 부분을 잘라 내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너무 과한 것 같았다. 대신 난 매일 겁에 질려서 ‘포숑‘으로 출근하였고 소환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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