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신 -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
카노 유미코 지음, 임윤정 옮김 / 그책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무엇을 만들지는 사람이 아니라 채소가 정한다. 나는 채소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뿐이다. 그러니까 요리가 완성되면 ‘아, 이 채소로 이런 요리도 만들 수 있구나‘하고 나조차도 놀랄 때가 많다. ... 유일무이한 채소와 나를 일체화시킴으로써 하나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밝힌다. 그러한 영감에 이끌려 나는 요리를 계속해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요리가 영혼 저 밑바닥부터 좋은 것이리라. (15)

살생을 반대해서 채식주의를 택했다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채소도 마찬가지로 자르거나 찌르면 죽고 만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생명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을 포함해서 이 지구상에 있는 동물 대부분은 다른 생명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혼자서는 살아갈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 다른 생명에게서 그 에너지를 전달받아야 한다.
그러다 죽으면 유기물은 토양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또 다른 생명을 키우는 초석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커다란 생의 순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34)

매콤한 채소 잎 무침
......
1. 채소 잎은 가능한 한 작게 썰어 준비해 소금을 뿌린 후 물기를 짠다.
2. 간장과 고추기름을 넣고 버무린다. (37)

나는 요리로 자립한 이후 그렇게 많이 읽던 요리책을 뚝 끊었다. 1만 시간 후에는 자유롭게 무한대로 자신의 세계를 창작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레시피에 기대지 않고도, 과거에 습득한 지식의 보고에 접근하지 않더라도 나는 요리를 하면 할수록 각종 재료에서 영감을 얻었고 두근두근 설레는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40)

궁극의 오니기리
죽기 전에 먹고 싶은 것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오니기리라고 말할 것이다. 맛도 맛이지만 삶의 종지부를 제대로 찍을 수 있는 힘을 줄 음식이기 때문이다. (45)

모든 것은 食(식)에서 태어나 食으로 돌아간다. 食의 비밀을 아는 자는 행복과 불행에서 자유롭고, 세상을 이끌 수 있다. 食의 비밀을 모르는 자는 불행을 고민하다 생을 망친다. (50)

보답받지 못한 요리는 그것 말고도 많다.
......
나는 전혀 다른 식문화를 가진 외국인과 국제결혼이라도 한듯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가족들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식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차이가 컸다. 관서와 관동은 다른 나라라고 말할 정도로 식문화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
결혼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이 함께 조금씩 부부로 성장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파트너와 식궁합까지 일치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질리지도 않고 상상한다. (57)

나는 ‘나카이세키 센‘이라는 가게를 만들고자 했을 당시 무농약 채소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연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가능한 한 많이 활용한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비단 야생초만이 아니라 산채, 버섯, 해초 등 천연 식물은 우리 몸에도 좋고, 저마다 개성 강한 맛을 지니고 있어 계절마다 우리의 입 속을 다양한 맛과 향으로 채색해준다.
봄에 나는 야생초는 일단 씁쓰레한 머윗대가 새봄의 포문을 연다. 땅두릅, 두릅, 고사리, 달래, 단풍취, 오갈피, 뱀밥, 쑥부쟁이, 쑥, 감제풀, 쐐기풀 등 특히 산속에서 겨울을 견딘 야생처는 떫지 않고 맛과 향이 아주 훌륭하다. (79)

모든 인생에는 끝이라는 게 있다. 오늘일지도 모르고, 10년 후일지도 모르는 끝.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10년 후에도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그때의 ‘지금‘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지금‘을 언제나 소중히 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을 맞이할 순간에는 기쁜 마음으로 다름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 (83)

요리는 세상에 남지 않는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
요리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바위나 금속을 사용한 것은 유적으로 남지만, 이 지구에는 형태를 남기지 않은 예술이나 문명이 분명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로 인식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DNA에 새겨지고 후세에 전해져 지구의 기억으로써 확실하게 남아 있다. (88)

송이 카푸치노
거품을 낸 수프는 풍부한 향을 지니고 있지만 먹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마치 꿈만 같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맛을 음미해야 한다. (91)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순간의 과정을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조건 같은 건 있다. 우선 과거의 경험을 깡그리 잊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는 물론, 좋은 경험까지도 전부 잊는다. 호평받은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앞서 말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없었던 요리를 창조해내고 싶을 때만큼은 과거의 좋았던 경험도 깨끗하게 잊는 편이 낫다. 과거에서 자유로워지면 무념무상의 상태로 접어든다. 그것은 단순히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무無‘의 상태야말로 무든 ‘유有‘의 기본이다. 즉, ‘창조의 근원=드넓은 바다‘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 창조의 바다로 나아가는 길이 바로 직감이라 불리는 것으로, 직감을 통해 오는 것이야말로 번뜩이는 사고와 연결되는 것이다. (97)

할머니가 만든 도미찌개는 정말 최고였다. 그래서 우리 이모들은 할머니의 도미찌개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할머니 옆에서 같은 재료로 만들곤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할머니가 만든 찌개 맛에는 크게 못 미쳤다. 하지만 같은 맛을 내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면 소금의 정도, 불 조절 등 할머니의 결정적인 맛의 비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몇 그램, 몇 초 같은 단순한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감각적으로 손에 익히는 신의 영역과도 같다.
또한 경험을 쌓음으로써 눈앞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집중시키게 되기 때문에 주변의 조리 진행 속도나 전체적인 흐름까지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코스처럼 몇 가지의 요리를 한 번에 만들어야 할 때 빛을 말해, 어느 음식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을 들여 완성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역시 경험만 한 게 없다.
‘배우기보다 익숙해져라‘라는 옛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101)

요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조리 자체는 손을 써서 뇌를 자극해 활성화를 돕는다. 메뉴를 정하는 것은 기획력과 창조력을 강화시킨다. 식재료의 조달부터 조리, 조리 후 정리까지 일련의 가사를 통해 어느새 가계의 융통, 건강관리, 청소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또한 먹는다는 행위는 환경, 농엽, 경제, 국제관계, 유통, 문화, 전통, 풍토, 식물학, 의학, 약학, 영양학, 화학 등 다양한 학문과도 관련지어 배울 수 있다.
나는 요리를 학교의 필수과목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13)

지금까지 나는 오랜 시간 채소를 활용한 요리를 줄곧 해왔지만, 아직도 채소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다. ‘모르는 것-불안‘, ‘아는 것=안심‘이라는 식의 사고방식 대신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갖고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그것을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우리 아이에 대해서도 성격이나 재능에 대해 콕 집어 정의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도 우리 아이에 대해 내가 모르는 면이 많고, 미지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러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요리를 할 때는 재료가 갖고 있는 힘을 어디까지 내보일 수 있을까에 전력을 다한다. 채소의 목소리를 들어가면서 그 재료의 잠재적 매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그때그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간다. (119)

재료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면 다른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맛 전체가 신기할 정도로 조화를 이루면서 깊은 맛을 낸다. 이는 개개인이 잠재 능력을 끌어올려 성장하면 이 세계에 강력한 지배력이 없어도 누구나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생각과도 통한다. (120)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타부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꿈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이상적인 죽음을 상상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꿈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그러한 상상 역시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실현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특별히 아픈 데 없이, 졸업식을 앞둔 사람처럼 밝고 명랑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167)

육수의 감칠맛을 사용하지 않고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데는 재료 본연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본양념과 향신료를 재료와 아우러지게 첨가하는 것이 포인트다. 재료를 통째로 굽거나 찌는 등 채소가 가지고 있는 수분을 최대한 이용해서 맛을 내는 조리법을 기본으로 해서 채소 본연의 맛을 손상시키지 않는 최소한의 양념만으로 요리를 한다.
육수에 얽매이지 않는 요리는 마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어떤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간이 본래 자신의 인성을 손애 넣은 것처럼 재료가 가진 맛을 살아 숨 쉬게 하기 때문에 그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가능하다.
화장이 민낯의 단점을 가리고 어느 정도 아름다움을 발현하게 하는 것처럼, 육수는 재료가 가진 미묘한 맛의 차이를 없애는 대신 어떤 재료라도 일정한 맛의 수준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요리가 거의 다 비슷한 뒷맛을 남기고 말아 재료가 가진 섬세한 맛이나 향을 음미하기는 힘들다. (171)

요리는 하는 데는 끓이고, 볶고, 삶고, 찌고, 굽는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 그럼 이런 조리법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국 재료에 따라 온도를 어떻게 가하는가 하는 방법의 차이다. 나는 요리를 할 때 채소가 온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오감을 총동원해서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경험 하나하나가 내가 만들고자 하는 맛을 창조하는 데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되어준다.
......
요리를 하면서 지금 어느 정도의 온도를 얼마나 가해야 만들고 싶은 요리가 완성될까를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 온도를 유지하도록 신경을 기울여 재료를 다루면 자신이 원하는 맛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78)

사람의 몸은 본래 신전...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성해서 우주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신성한 신전에 공물을 바치는 것과 같다.
또한 사람은 겉보기에 독립해 있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을 뿐 식물과 다르지 않다.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대지, 대기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1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