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미학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이가림 옮김 / 영언문화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이런 이유로 루프넬에 의지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짓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현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은 각기 단독적인 충실이고 확실한 명증이다. 우리는 하나하나 자신의 완전한 개별성을 가지고 현재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단지 현재에 의해서만 그리고 현재 안에서만, 실재의 감각을 갖는다. 그리고 이 같은 현재에 대한 감정과 삶에 대한 감정 사이에는 절대적 동일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삶 그 자체의 견지에서 보면, 현재에 의해서 과거를 이해해야 하고, 과거에 의해서 현재를 설명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속의 감각 또한 그에 따라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안 된다. (31)

아마도 베르그송은 진화의 서사시를 씀으로써 우연을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면밀한 역사가였던 루프넬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것이 아무리 단순한 것일지라도, 삶의 생성의 연속을 필연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사람이 각기 삶의 역사를 상세하게 바라볼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증언부언, 시대착오, 초벌손질, 좌절, 되풀이로 가득 찬 역사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우연들 속에서 베르그송은 단지 생의 약동의 거기서부터 분할되고, 계통수...가 거기서부터 여러 개의 가지로 나눠지는 진화적 활동만을 다루었을 뿐이다. 이와 같이 그는 프레스코화...를 그리기 위해서라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세부를 소묘하지 않았다. 아니 대상을 소묘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라는 그의 저서가 보여 주듯이, 인상주의적 경향의 그림을 그리고 말았던 것이다. 거기에 보이는 유명한 직관은 사물의 초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의 이미지이다. (37)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검은 직선으로 베르그송적 시간을 아주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 하나의 무, 즉 허구의 공허로서의 순간을 상징화하기 위해 하얀 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루프넬에 있어서 시간의 참된 현실은 순간이고, 지속은 어떠한 절대적 현실성을 갖지 않는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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