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뒤 해변에서 파라솔 아래에 있는 파디가티 선생님이 멀찍이 보였다. 나는 불현듯 그가 치유할 수 없는 끝없는 고독에 방치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델릴리에르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데 내심 안도감을 느꼈다. 적어도 나는 선생님을 기만하지 않았어. 그를 배신하고 이용하려는 자와 놀아나지 않고 그 유혹을 뿌리침으로써 그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이나마 지킬 수 있었어. (86)
그는 관리인의 오두막으로 황급히 달려가서, 낡고 기우뚱한 심판용 의자를 끌어냈다. 그러더니 적어도 이 미터 높이쯤 되는 의자를 두 팔로 끌어 코트의 한쪽으로 옮긴 뒤 마친내 그 위로 올라샀다. ... 하지만 그는 그높은 가지 위의 거대한 새처럼 걸터앉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단호한 목소리로 한 점 한 점 득점 수를 외치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평한 심판이라는 자신의 임무에 몰두한 채 그 위에 머물렀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하루하루 밀려오는 지독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91)
이탈리아에서 반유대주의는 심각한 정치적 형태를 띨 수 없다고, 다시 말해 뿌리내릴 수 없다고 그는 확신했다, "소위 아리아인"의 것에서 유대인의 "요소"를 단호하게 분리한다는 생각은 사실상 이탈리아에서 실현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회 구조의 단면"을 놓고 볼 때 다소 전형적이라 할말 수 있는 도시, 페라라를 생각해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페라라에서 "이스라엘인들"은 모두 혹은 거의 모두가 도시 부르주아에 속하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도시의 힘줄이자 척추를 이루는 존재이니까. 마찬가지로 그들의 다수가 파시스트였던 것도 사실인데, 내가 잘 알고 있듯, 그들 중 꽤 많은 수가 일찌감치 파시스트당에 가입해서 사회적으로 그들의 완벽한 연대와 융합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 유대인들의 이름에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직함,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크고 작은 업체의 사장 따위의 신분이 빠짐없이 붙어 있는 전화번호부를 죽 훑어보더라도, 페라라에서 인종 정책이 실행되기란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즉시 받게 될 거라고도 했다. (114)
"저것 좀 봐!" 그가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처럼 자신을 본성을 받아들여야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도 다분히 동물성이 존재하는데, 과연 인간이 복종할 수 있을까? 동물이라는 것을, 단지 한 마리의 동물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123)
"오호, 제대로 맞혔어. 그래, 새끼들 걱정 때문이었어! 어떻게 알았느냐고? 나중에 내 방구석, 개가 있던 자리에서 널따랗게 젖이 흘러 생긴 웅덩이를 발견했거든. 밤사이에 말하자면 젖이 불어올랐던 거지. 그래서 그토록 안절부절못하면서 끙끙거렸던 거야. 그 개는 오롯이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고통을 견디고 있었던 거야. 불쌍한 것!" (130)
아버지의 기쁨은 부당하게 쫓겨났다가 선생님의 복귀 명령을 받고 교실로 돌아온 학생의 기쁨과 같았다. 삭막한 복도에 영영 추방되어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갑작스럽게 친구들이 있는 교실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된 그 학생은, 벌칙을 면했을 뿐 아니라 아무 잘못이 없음을 인정받고 완전히 명예를 회복했다고 기뻐했다. 결국 아버지가 그 아이처럼 기뻐하는 것이 옳지 못한 걸까? 나에겐, 그렇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고독감이 바로 그 순간 한층 더 심해졌다. 총체적이며 결정적이었다. 나는 나의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142, 이 한 문단이 이 소설의 명치임.)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제목 아래 반 토막짜리 기사를 읽기 전에 이미 알아챘다., 기사에는 물론, 시대적인 정서상 자살이라는 말은 일절 없었고(당시에는 자살이 누구에게도 용인되지 않았다. 세상에 남을 그 어떤 이유도 없는 치욕스러운 늙은이들에게조차 자살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불행한 사고라고만 언급되어 있었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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