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구조된 해안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이국 땅에 와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제 너의 운은 만조가 되었어. 너는 이 태풍을 이용해야 해` 하고 내 귀에 속삭이는 듯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날 이 예감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난파당할 때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렸지만, 나의 트렁크만은 파도에 밀려 바로 앞바다에서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는 셔츠 양말 일기장 벤트 씨가 써 준 두세장의 추천장 따위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트렁크를 무사히 건져 올릴 수 있었다. (33)
운명은 달과 같아 그 모습이 덧없나니 가득 차면 이지러져 그칠 줄 모른다.
나는 별로 미신에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날 따라 명문의 문구가 이상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강렬한 인상 때문에 나는 어떤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슴이 떨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우편 마차를 타고 다시 여행을 계속 했는데, 얼마 안 되어 틸지트의 바로 다음 도시까지 갔을 때 뜻밖에도 목적지인 메멜 시가 바로 어제 일어난 큰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가까이 갈수록 그 소문은 사실로 나타났으며 도시의 참상은 예상 밖으로 심각했다. (46)
1858년(36세)에는 지금까지 모든 재산만으로도 나의 평생 소원을 이루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로 새로운 인생을 향해 첫발을 내딛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동안 꿈꾸어왔던 세계 여행을 떠나 스웨덴,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 등을 여행한 뒤, 다시 이집트로 건너갔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누비아의 제2폭포까지 갔다. 이때 나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라비아어를 배웠다. 또한 사막을 가로질러 카이로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페트라를 지나 모든 시리아 땅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나로서는 줄곧 아라비아어의 실제적인 지식을 익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언어에 본격적으로 몰두한 것은 나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 뒤였다. (53)
그 동안 나는 최초의 저서 <현재의 중국과 일본...>(1866년)을 집필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 니카라과를 거쳐 미국 동부를 여행했다. 그리고 아바나와 멕시코 시 방문을 끝으로 나의 여행을 끝내고, 1866년 봄부터는 고고학에 전념하기 위해 파리에 정착하였다. 그뒤 고고학 연구는 한때 미국을 여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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