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반쯤 놀이 기분으로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더군요. 진지함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일본에서는 별로 없는 스타일이죠. 일보인에게는 진지한 것이 좋고, 진지하지 못한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의 태도로, 진지하게 그림과 마주해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냉수 마찰을 하고 불단에 기도를 한 뒤 작업에 들어가는 도예가가 있는가 하면, 저는 휘파람을 불면서 작업 선반을 걷어차며 일을 하는 편이라고 할까요(웃음). (102)
전에 무라카미 씨가 오이시에 새집을 지어서, 그 집 장벽화를 부탁받은 적이 있습니다(86년). 하얀 벽을 마주하면 무언가 그릴 것이 떠오르겠지 하고, 사전에 아무것도 구상하지 않고 갔습니다. 현장에서 무라카미 씨가 연습용으로 헌 신문을 잔뜩 갖고 와서, 그걸 천천히 읽었습니다. 바로 휙 그리면 고마움을 모를 테니. 장벽화를 그리는 것은 처음이었죠. 너무 복잡한 것을 그리면 실패할 수 있으니 간단한 것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후지산을 그렸더니, 무라카미 씨 왈. "이거 푸딩인가?" (120)
신타니: 미즈마루에게는 한 가지 미학이 있었지. 그건 절대로 세탁물에 다림질을 하지 않는 것. 상의도 셔츠도 전부 꾸깃꾸깃,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 히라다: 트렌치코트를 새로 사면 입은 채로 샤워를 했었죠. 신타니: 맞아, 일부러 쭈글쭈글하게 만들었지. 그래도 청결하긴 했어. 대체 그건 왜 그랬던 걸까. 히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그랬었어요. 낡은 옷을 좋아한다고. (241)
신타니: 나는 잘 몰라서 처음에는 부인이 집안일을 안 하나 생각했었지. 딱하구나 하고(웃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철저한 사람은 본 적이 없네. 특유의 미학이랄까. 기호가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난 부분이었어. 빳빳하게 다린 셔츠를 입고 있거나,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도 거의 본 적이 없네. 그런데 서른다섯 살까지 회사를 다녔으니, 제대로 된 인사도 하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었을텐데. 회사원의 대응력도 있으면서 프리 지향도 있어 양다리를 걸쳤던 것도 마찬가지겠지. 꾸깃꾸깃한 셔츠지만 품질 자체는 정통파였어. 블레이저는 기본적으로 갈색 기본형이었고 실은 아주 스탠더드한 사람이었던 거야. (242)
신타니: 맞아. 일찍 가서 좋은 자리 맡아놓고 시간될 때까지 로비에 있다가, 엔쇼의 만담만 듣고 끝나면 바로 돌아왔지. 엔쇼란 말만 들으면 태풍이 와도 갔었으니. 롯폰기의 하이유좌, 닛세이 극장, 가부키좌…… 그야말로 사방 쫓아다녔네. 맞아, 미즈마루 씨한테는 엔쇼 같은 인상도 있었어. 웃으면서 무서운 소리를 하거나, 등이 꼿꼿이 펴지는 설교를 하는 분위기가. 나하고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세살은 위로 보이기도 하고, 아버지 같은 느낌이 있었지. (244)
다들 완벽하게 준비가 돼 있는데, 미즈마루 씨만 좀처럼 작품을 갖고 오지 않아서 말이야. 제일 마지막에 전시된 걸 봤더니, 색지 한복판에 빨간 동그라미만 달랑 그려져 있었지. "뭐야, 이거?"하고 물었더니 "우메보시. 또 한 장의 네모는 두부." 이러는 거야. 뭐?하고 깜짝 놀라서 "당신, 이거 오늘 그렸지?" 그랬더니, "들켰나……" 이러더군. "평소에도 의뢰 전화 받으면서 그리는 거 아냐?" 그랬더니, 그 말에도 "들켰나." 이러고(웃음). (246)
그림체가 그런 분위기니까. 데생 같은 것도 안 했고. 그 사람은 공들여서 하는 것을 믿지 않았지. 이 책을 읽는 학생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246) …… 그리고 되풀이해서 그리면 잘 그려지는 것이 싫다고도 했었지. 교토에서 펜촉을 바꿀까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을 때, … 바로 바꿀 수 있다더군. 펜에 익숙해져서 생각대로 선이 그려지면 재미없다고. 난 그때 우연을 믿고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고 할까, 철학적인 얘기여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지. (247)
가벼운 건 말이지, 미즈마루는 의식적으로 그림에서 설명을 빼려고 했기 때문이지.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 선을 지워버려. 그걸 감각으로 할 수 있는 힘, 즉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어. 보통 일러스트레이터는 기초가 중요하지만, 기초 없이 그만큼 인기가 있고 일을 많이 하고 생활이 돌아갔던 사람은 드물어. 호리우치 세이이치 씨도 가벼운 그림이었지만, 모든 훈련을 거친 뒤의 가벼움이었지. 뭐 역시 스탠더드야. 미즈마루 씨의 작품은 하이쿠화라고 할까. 그의 속에 어떤 텍스트를 만든 다음에 그걸 그리고 있어. 그래서 그림에 하이쿠를 넣으면 완성된다고 할까,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언어가 태어나게 하는 그림이란 느낌이 들지. (258)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고민할 것 없다." (291)
수업 이상으로, 수업을 마친 뒤 식사나 술자리를 가지며 들려주신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 지금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대로 술 마시는 법도 배웠죠. 비유 훈련에서 "술맛, 음식맛을 설명해봐."라고 해서 비유가 서툴면 "넌 안 되겠네…"라고 놀리기도 하셨죠. 사물에 관한 사고법이나 단어 선택의 중요함도 배웠습니다. 다면적인 견해나 탐구심을 기르기 위해, 그림에만 빠지지 말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으라고 권하셨지요. 기술이 있어도 인간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매력적인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 지론이었습니다.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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