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배운다 -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깊은 지혜와 성찰 나무에게 배운다 1
니시오카 쓰네카즈 구술, 시오노 요네마쓰 엮음, 최성현 옮김 / 상추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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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로 여든여섯이 되었습니다만, 이제까지 민가는 한 채도 짓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조차도 다른 목수분이 지어 주셨습니다. 민가는, 아무래도 얼마에 언제까지는 일을 끝내야 한다든가, 벌이에 관해 생각하지 않고는 해 나갈 수 없어요. 저는 할아버지가 저의 스승이셨습니다만, 할아버지는 "절대로 민가를 지어서는 안 된다"하고 엄하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건, 벌이가 되는 일로 내달리게 되면 마음이 혼탁해지게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논밭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을 거두어들이라는 것이었지요. (15)

그런데 성깔이라는 것도 나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방법에 달린 문제입니다. 성깔이 있는 나무를 쓰자면 번거롭지만, 잘 사용하면 그쪽이 오히려 좋은 일도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요. 기질일 강한 자일수록 생명력 또한 강하지요.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성깔이 없는 부드러운 나무는 약합니다. 힘도 약하고 쓸 수 있는 기간도 짧습니다.
오히려 개성을 파악해서, 그것을 살려서 쓰는 쪽이 강하고 오래 갑니다. (28)

학자가 있고 건축물이 있는 게 아니라, 건축물이 있고 비로소 학문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스카 양식이라든가 하쿠호 양식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뒷날 붙여진 이름이지요. 그렇지요. 뭐든지 계산이나 형식에 끼워 넣어 생각하기 때문에 매사가 사리에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79)

목수가 존경받지 못하게 된 것은 1867년부터 19812년까지 이어진 메이지 시대 때부터입니다. 그 시대에, 건축물과 건축학자로 나눠지고, 일꾼과 학자로 갈라진 뒤부터입니다. 서양 학문이 들어오고 건축학이라는 것이 위세를 떨치며, 직접 나무를 다루는 목수가 아닌 사람들, 곧 설계사들이 설계를 하게 되고부터입니다. 하여간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건축학자라는 것이 생겼고, 건축 설계 사무소가 생기며 분업이 됐습니다. 설계는 설계 사무소, 견적은 견적이라는 식의. (78)

하지만 나무는 살아 있습니다. 계산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한 그루 한 그루 성질이 다릅니다. 그것이 본디 나무의 모습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라난 장소나 기후, 바람과 햇볕을 받은 양이나 세기가, 그리고 성질까지 다 다른 것입니다. 그것을 모두 똑같은 것으로 계산하고, 그 설계도대로 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어진 건물은 그 뒤 몇십 년, 몇백 년, 건물에 따라서는 천 년 넘게 서 있도록, 남겨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편백나무를 써서 탑을 지을 때 적어도 삼백 년 후의 모습을 생각해 가며 짓습니다. 삼백 년 뒤에는 설계도 같은 모습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서까래와 들보를 올리는 것입니다. (80)

선인의 경험을 하나의 지식으로,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그 위에 쌓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은 말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경험은 바닥부터 기초를 쌓고, 반복 속에서 익혀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인이 되기란 무척 힘겹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러한 것을 모르는 어머니가 많습니다. 우리 애는 머리가 나쁘니 목수라도 시켜야겠어요, 라고 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스스로, 제힘으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기기를 모자라게 생겼으니 장인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학교에 가는 쪽이, 회사에 들어가는 쪽이 좋습니다. 조직 속이라면 조금쯤 근성이 부족하더라도 목을 움츠리고만 있으면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99)

그리고 사람이란 한 번 칭찬을 받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하며 `이건 어떨까?`라든가 `어디 한번 내 솜씨를 보여 볼까?` 하는 흐트러진 생각 아래 일을 하게 되기 쉽다는 거지요. 이런 생각을 하며 지은 집이나 건물에는 제대로 된 것이, 변변한 것이 없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서며 연장이 진보하자 그런 건물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화려함으로 달려갑니다. 그 때문에 구조가 희생됩니다. 중심을, 우선시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고 있지요. (128)

대목장의 마음가짐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백 가지 말을 하나로 모으는 기량이 없는 자는 조심스럽게 대목장 자리에서 떠나라."
여러 가지 구전 중에서 가장 제 마음에 드는 구전입니다만, 정말 그렇습니다. 수많은 장인을 하나로 조화시켜 갈 수 없으면, 자신에게 대목장 자격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135)

그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농업 학교는 오 년제와 삼 년제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오 년제 학교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 년제 농업 학교는 학문 쪽으로 치우쳐서 진짜 농부의 일은 모른다, 그러니 삼 년제의 실습이 많은 학교에 보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3)
......
"좌우간 성실하게 공부해라. 농사를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땅의 생명을 잘 보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144)

"너희들 농업 경제라는 걸 배웠지?"
"예, 배웠습니다."
"최소의 노동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고 배웠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서양식 사고다. 우리 일본의 농민은, 자기 한 사람의 노동으로 몇 사람을 먹일 수 있느냐가 기본이 돼야 한다. 이런 방향에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 (146)

그 뒤 오가와가 오지 않았다면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을 테지만, 상당히 패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 오가와는 불단...을 만드는 집에 견습공으로 들어갔고, 또 다른 곳에서 도면 그리는 일을 하다가 제가 호류지 삼중탑 재건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약속대로 제자로 삼아 달라며 왔던 것입니다. 오가와를 보고, 이 사람의 각오를 알고, 그때 처음으로 제가 제 자식에게 할 수 없었던 것을 이 사람에게 해 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대목장으로 키워 가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 자식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남의 집 자식이지만 내 뒤를 이을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윗사람 대접을 해라, 밥 먹을 때도 내 옆에 앉힌다, 이렇게 식구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156)

좋은 시대를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것이 모두 수업이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왔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고, 학자들과도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았고, 일도 납득이 가는 자리에서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조금만 시대가 어긋났더라도 야쿠시지 건립은 불가능했습니다. 빨랐더라면 제게 힘이 없었을 것이고, 늦었더라면 나이가 들어 체력이나 정신력이 따라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176)

선조로부터 여러 대에 걸쳐서 이어지며 남겨진 것이, 제 대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어림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긴 실에 꿰여 있고, 그 끝에 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천삼백 년 전에 지어졌으나 지금까지 견뎌 온 사찰이 남아 있고, 우리가 세운 탑이나 당도 이제부터 시간의 시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백 년이나 이백 년이 지나서 우리들이 지은 당이나 탑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어 왔습니다. 그때는 과연 어떻게 되어 있을까,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삼백 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가 세운 석탑이 등탑과 나란히 서 있으면, `제대로 했구나.`라며 그때 바로소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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