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베시는 주인집 딸들의 옷을 다 입히고 나면 곧 떠들썩한 부엌이나 가정부의 방으로 촛불을 들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인형을 무릎에 올려놓고는 난로의 불이 흐릿해질 때까지 주위를 둘러보며 방에는 나 혼자뿐이며 달리 도깨비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타다 남은 불이 둔한 감빛으로 되면 이음매나 끈을 살며시 잡아당기고 급히 옷을 벗고는 추위와 어둠을 피해 침대로 기어들었다. 이 침대 속으로 나는 언제나 인형을 가지고 들어갔다.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법이다. 달리 애정을 쏟을 만한 그럴듯한 것이 없었던 나는 조그만 허수아비처럼 초라하고 퇴색한 우상을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가운데서 즐거움을 구하였다. 그 조그만 인형이 살아 있어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바보같이 고지식하게 그것을 사랑했던가를 회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묘한 느낌이 든다. 인형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누워 있으면 나는 얼마간 행복스러운 기분이 되는 것이었고 인형 또한 그러리라고 여겨졌다. (48)
"네. 그러고말고요. 얘야. 여기 <어린이의 지침>이란 책이 있다. 기도를 하고서 읽어보려무나. 특히 <거짓말과 속임수가 장기였던 마사 G의 끔찍한 급사...>란 이야기를 잘 읽어보아라." (59)
인간을 떠난 영혼은 그것이 왔던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아마도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로 옮겨지기 위해서. 아마도 창백한 인간의 영혼으로부터 최고 천사의 위치로까지. 영광의 계단을 올라라게 되는 거야. 그와 반대로 인간에서 악마로 떨어져 내려가는 법은 없을 거야. 가래. 난 그런 것은 믿을 수가 없어.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또 내가 입 밖에 내는 법이 거의 없지만 내게는 다른 신념이 있어. 그러나 나는 그 신념에 매달려서 기쁨을 찾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신념이니까 말이야. ... 게다가 이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죄인과 죄가 분명하게 구별되기 마련이거든. ... 이 신념을 가지고 있는 한 복수로 마음을 괴롭히는 일도, 타인의 타락에 혐오감을 갖게 되는 일도, 애매한 구박에 마음이 아스러지는 일도 없게 돼. 나는 이 최후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살고 있는 거야. (102)
"난 참 행복하단다, 제인. 그러니까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절대 슬퍼하지 마. 슬퍼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것이고, 나를 데려가는 병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거든. 부드럽게 조금씩 나빠져가는 거야. 내 마음은 아주 편안해. 내가 죽더라더 그리 슬퍼할 사람도 없어. 아버님이 한 분 계실 뿐인데 그 아버님도 근래에 재혼을 하셨으니 내가 없더라도 그리 섭섭해하시진 않을 거야 어려서 죽기 때문에 큰 고생을 모르고 가는 셈이야. 어차피 이 세상에서 성공할 만한 소질이나 재주도 없고, 살아보았자 늘 잘못이야 저지를 거야." (145)
나는 실제 세계는 넓고 넓으며 희망과 두려움, 감동과 흥분 등의 다양한 영역이 그리고 들어가 위험 가운에서 삶의 참된 지식을 찾으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였다. (151) ...... 나는 자유를 원했다. 자유를 갈망했다. 나는 자유를 원해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소리는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흩어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기도를 그치고 좀 더 겸손한 탄원을 했다. 변화와 자극을 달라고 기원했다. 그 간절한 애원마저 막연한 공간 속에 휩쓸려 들어가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게 새로운 고생살이를 하도록 해주소서!` (153)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내게 좋은 일을 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소.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의 눈에서 그 징조를 보았단 말이오. 당신의 눈의 표정과 미소는 결코... 결코... 까닭 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을 갖다 준 것이 아니었소. 흔히들 타고난 조화란 말을 하오. 평생 동안 따라 다니는 수호신 얘기도 있소. 허황한 옛 예기 속에도 진리가 담겨 있는 것 같소. 안녕히 주무시오. 나의 수호신!"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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