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는 눈을 깜박인다. 그는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삼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라틴 십자가 바로 밑에 놓인 요람 두 개, 뚜껑이 열린 스토브 속에 떠다니는 먼지, 열두 겹으로 칠한 페인트가 벗어지고 있는 굽도리 널. 싱크데 위에 걸린, 엘레나 아주머니가 캔버스에 바늘로 수놓은 눈 쌓인 알자스 마을. 거실은 지금것 그랬듯 무엇하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제 음악이 있다. 마치, 베르너의 머릿속에서 깨알만큼 작은 오케스트라가 부르르 떨쳐 일어난 것만 같다. (57)
눈을 떠요. 그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영원히 감기기 전에 그 눈으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요. 그리고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쓸쓸한 노래를 연주한다. 베르너에겐 그 노래가 어두운 강을 떠도는 황금 배처럼, 졸페라인을 아름답게 바꾸어 주는 화음의 흐름으로 들린다. 집들이 안개로 바뀌고, 탄갱 속이 채워지며, 공장의 높은 굴뚝들이 떨어지고, 태고의 바다가 거리마다 스며들며, 공기가 가능성을 담고 흐른다. (82)
그러나 그에겐 자부심도 있었다. 혼자서 딸을 키워 냈다는 자부심. 그의 딸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좀처럼 굴하지 않는다는 자부심. 이토록 올찬 아이의 아버지라는 겸손한 마음. 마치 자신은 다른 더 대단한 존재에게 가까스로나마 물을 대 주는 비좁은 도관이라도 된 것 같은 심정. 무릎 꿇고 앉아서 딸의 머리를 헹궈 주고 있는 이 순간의 감정이 그렇다고 그는 생각한다. 마치 딸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의 몸이 버틸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 버리는 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사방 벽이, 아니, 도시 전체가 무너져 버려도, 이 감정의 빛은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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