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죽음 -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나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성공은 환자들이 일상을 되찾아 우리와 영영 헤어지는 것이다. 병이 나은 환자들은 우리를 다시 볼 일이 없다. 아니, 볼 일이 생기면 안 된다. 그렇게 무시무시했던 우리와의 기억을 그들은 과거의 일로 덮는다. 단순해 보이는 뇌 수술이 실은 얼마나 위험했는지, 그들이 무사히 회복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결코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반면 신경외과 의사는 잠시 동안이지만 천국을 느낄 수 있다. 지옥에 아주 가까이 가보았으니까. (54)

그가 엉터리 영어로 말했다. 곧 길고 지루한 설명이 이어질 테지. 우크라이나 병원을 찾양하는 장황한 이야기라면 이제 이골이 나 있었다. ...
"보시다시피 여긴 모든 게 끔찍합니다!"
이 친구, 괜찮은데? 그 말을 듣는 즉시 이고르가 좋아졌다. 로마다노프를 빼면, 그는 내가 만난 의사들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의료 상황이 비참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의사인듯했다. (98)

그 뒤로도 일을 하며 음울하면서도 짜릿한 강렬함을 느꼈지만, 의대생일 때 가졌던 단순한 이타심은 금세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시에 환자들에게 동정을 쉽게 느꼈던 이유는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이 없어서였다. 환자에 대한 책임과 함께 실패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면, 의사에게 있어 환자는 불안과 스트레스의 근원이 된다. 물론 동시에 성공에 대한 자부심의 근원인 것도 맞는 말이다. (119)

삼차신경통은 꽤 드문 증상으로 얼굴의 한쪽에서 발작적으로 참기 힘든 통증이 지속된다. 이 증상의 환자들은 그 통증을 엄청난 전기 충격이나 빨갛게 달군 칼로 얼굴을 쑤시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고통이 엄청나다. 과거에 효과적인 처치법이 생기기 전에는 이 병을 앓는 사람들 일부가 통증 때문에 자살까지 했다고 알려져 있다. 1990년대에 우크라이나에서 내가 치료한 환자들 가운데 몇 명은 실제로 정말 자살 직전까지 갔노라고 말했다. (141)

이 얼마나 희한한 노릇인지. 30년 동안 병원에서 내가 겪으며 깨친 것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과 재앙, 무수한 위기와 재난과 싸운 끝에 피 흘리며 죽어가는 환자들을 그동안 수도 없이 지켜봐 왔다. 셀 수 없을 만큼 동료들과 격렬하게 논쟁했고 환자의 가족들과 끔찍한 만남을 가졌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철저한 절망과 심오한 환희의 순간들을 무수히 겪어왔다. 그러데 이제 와서 전직 출장 요리사였던 젊은이로부터 공감을 발휘하고 항상 집중하고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한다니. 출석부에 서명을 하자마자 나는 방을 뛰쳐나왔다. (181)

의사는 환자에게 설명할 책임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경력이 많은 의사일수록 자신이 쥐고 있는 권력 때문에 책임 의식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불만 신고 절차와 소송, 조사 위원회, 처벌과 배상 등의 감시 도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실수를 숨기거나 부인하지 않으면 의외의 결과가 기다리는 잠깐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환자와 그의 가족이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의사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그 의사는 용서라는 귀한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 (250)

여전히 이른 유의 종양은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영국에서는 아마추어리즘의 장점을 믿는 문화가 있어서 대부분의 신경외과 의사가 자신이 맡기 어려운 환자를 더 경험 많은 동료에게 위탁하기를 매우 꺼려한다. 때문에 그 어떤 외과 의사도 미국 의사들만큼의 경험을 얻을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환자가 훨씬 더 많으므로 그러한 종양을 가진 환자도 더 많을 것이다. 미국 환자들은 영국 환자들보다 덜 공손하고 의사도 덜 믿는다. 그들은 도움을 청ㄷ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소비자에 가까우므로 노련한 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기를 원한다. (292)

건강한 사람들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일단 본인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모든 것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미심쩍어도, 아무리 실낱같아도, 조금 남은 그 희망에 얼마나 매달리는지 과연 알기나 할까. 환자에게서 그 연약한 한 줄기 빛을 빼앗는 것이 의사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과연 알기나 할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학자가 `분열`이라 부르는 증상이 생긴다. 의사 역시 어느 날 문득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살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모순된 두 사람.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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