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마하티르는 내가 예전에 알고 존경했던 사람이 아니다. 권력, 바로 그 절대권력이 그를 바꾸어놓았다. 사실 나는 그가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그가 1960년대 말레이 과격파로 다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학자들과 연구원들이 가장 오래 총리 자리를 지켰던 인물로 그의 행적을 조사하게 될 먼 훗날, 부디 역사가 그에게 관용을 베풀기를 소망한다. (9)
아이러니하게도 마하티르를 바라보는 시선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적어도 미국 정부에는 잔혹한 독재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제압하는 조련사로 바뀌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는 서구 인권의 불명예 전당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대표적인 나라였다. (78) ......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페트로나스 타워 사무실에 앉아 있는 마하티르에게 이렇게 물었다. "예전에 비정부기구를 비롯한 다양한 서구 단체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강압적인 태도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9.11 이후에 서구 사회는 당신이 맞서 싸우고 있던 상대가 대단히 거칠고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있었다면 그들은 아마 페트로나스 타워도 날려버렸겠죠?" (81)
"문제에 (혹은 저항에) 직면할 때 정교와 무관한 입장에서 해답을 제시해서는 안 되비다. (그렇게 해서는 반대파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제 결정에 대해 종교적인 해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가령 국가 발전을 위해, 혹은 국민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건 핵심적인 대답이 아닙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종교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며,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요." (95)
나는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해본다. "종교를 근간으로 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반대 여론이 나올 경우 정치적, 정책적 차원으로만 해답을 제시해서는 안 되고, 종교적 차원에서 대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군요. 이슬람 인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의 지도자는 정치와 종교를 모두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악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의미죠?" 마하티르는 단호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97)
터키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는 세속주의자였음에도 현실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종 청소를 감행했습니다. 반면 당신은 이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위한 세속적인 정부를 믿고 있으며, 오히려 정반대로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다중 문화주의자 노선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 맞습니다. (103)
마하티르는 내가 정말로 자신의 생각을 알고 싶어하는 것인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는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작은 연못의 덩치 큰 개구리죠. 그는 말레이시아 총리를 꿈꾸었습니다. 물론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 툰쿠 압둘 라만은 그걸 달가워하지 않았고, 결국 리콴유를 내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리콴유가 말레이시아 의회에 있었을 때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런데 그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원들은 그걸 못마땅해했죠. 이에 대해 저는 그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그래서 저를 싫어하는 것일 겁니다." (123)
그러나 안타깝게도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여유로운 성향이 실제로는 지역에서 혹은 세계에서 경제적 경쟁력으로 이어지기에는 나머지 세상이 너무나도 부지런하다. ... 그런데 이런 인식은 과연 타당하고 공정한 것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뛰어난 의사는 말레이계 국민들의 성향을 나무 그늘 아래서 꼼짝하지 않고 졸고 있는 모습으로 정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들에 대한 마하티르의 유일하고도 실질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반면 소수인 중국계는 일반적으로 스스로 동기를 발견하고, 인도계는 전통적이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51)
그러나 마하티르에 반대한 많은 사람들은 프로톤 프로젝트는 1950년대 후반 이후로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역사상 최악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포드의 에드셀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무용지물이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마하티르의 입장에서 프로톤은 단지 자동차 생산만을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프로톤은 일본의 근로 효율성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식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도박이었다. 그것 자체로는 성과가 없었다고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프로젝트였다. (153)
우리의 훌륭한 의사 역시 상황이 한계를 넘을 때,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무력 사용을 명백히 지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대단히 세련된 마하티르와 수준 이하의 독재자들 사이에는 그랜드캐니언의 넓이와 깊이만큼의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마하티르는 공식적인 무력 탄압이 통치자에게 일종의 수치라고, 다시 말해 부드럽고 합리적인 통치에 대한 실패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64)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마하티르의 성과들 중 하나는, 소수 중국계 국민들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불리한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는 것이다. (196)
홍콩 행정장관을 지낸 둥젠화는 공격을 받았거나 공격하기 좋은 국가들을 찾아 아시아 금융시장을 어슬렁거리던 서구의 거대 투자 자본에 저항했던 거의 창의력과 진정한 용기에 대해 홍콩 국민들은 물론이고 지역 및 국제언론으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마하티르는 달랐다. 그것은 그가 언제나 할 말은 하는 밀림의 사자였기 때문이다. ... "평화로운 시절에는 신중과 겸손만큼 남자다운 덕목은 없다. 그러나 전쟁의 포화가 귓전에 울려 퍼질 때 호랑이처럼 움직여야 한다." (245)
마하티르는 구제금융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전통 경제학까지 무시했다. 그 결과로 인해 말레이시아 경제는 일시적으로나마 통화 시스템을 개방하라는 서구의 압력에 오랫동안 버텨온 중국보다 더 고립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의 말레이시아 총리는 중국 정치인들처럼 서구의 조언이 이타주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식민 통치를 경험한 나라들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서구 국가들과 교류할 때조차 집요한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251)
웅장한 페트로나스 타워만 보더라도 우리는 과장된 수사법을 사랑하는 그의 취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인구 기준으로 전 세계 44위 정도에 해당하는,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보다는 더 작은 나라를 이끌었던 마하티르는 세상을 향해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믿었다. 특히 그들만의 강력한 무기가 없을 때에는 더욱. (286)
바로 이 말이 그의 핵심이다. 그는 유대인의 성공을 시기하는 게 아니라 저만큼 뒤처져 있는 이슬람의 후진성을 한탄하는 것이다. 가령 마하티르는 중동에 대한 정책 변화를 미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이슬람 세상이 하나된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란다. 유엔 안버리가 이스라엘에 결의안을 준수하도록 촉구하려고 할 때마다 미국이 매번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에 대해 그는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 (294)
하지만 그 자리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게임의 맨 꼭대기에 있을 때에도 마하티르는 9.11 이후로 서구가 경계했던 이슬람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다른 이슬람 통치자들보다 똑똑했다. 설령 그가 반유대주의자라고 해도, 가슴 한구석에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평화를 중재할 인물로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가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러나 그냥 그렇게 지워버렸다면 서구 사회는 소중한 기회를 놓친 셈이다.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교각을 건설할 일꾼을 잃어버린 것이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더 돋보이는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은 이상을 위해 장점까지 버리라는 소리다. (306)
부록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슬람 지도자들에 대한 2003년 연설처럼, 마하티르의 진심은 이스라엘이 이룩한 엄청난 성취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활력을 잃어버린 이슬람을 탓하는 것이다. 이슬람이 계속해서 머뭇거리는 동안 이스라엘은 더 멀리 달아날 것이고, 그러면 마하티르의 혈압도 따라서 상승할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마하티르가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매일같이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07)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의지란 데이터에 주목하는 정치학자들이 아직까지 임상 현미경으로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래서 설명하기 힘든 놀라운 힘이다. 최근까지도 이들 학자들은 경제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들만이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론 정치적 의지가 중대한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 세상의 부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균형감을 잃었다. 그들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성급하고 무분별한 서양의 한 군주는 두려운 마음에 급기야 다른 나라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군주는 문을 걸어잠그거나,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반면 평생을 이슬람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온 한 군주는 광란의 순간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 그는 이슬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았다. (330)
많은 비판들이 마하티르가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 미친 영향에 대해 그가 통치했던 22년 동안의 실수와 결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자. 반면 말레이시아 경계를 넘어서 그가 미쳤던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 너머에는 분명히 전체적으로 더 크고 중요한 세상이 자리 잡고 있다. 긍정적인 차원에서, 마하티르는 전 세계 이슬람에게 언제나 일관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공동체 내부에 어떠한 폭력도 있어서는 안 되고, 외교정책에서 공격적인 측면이 (특히 폭력을 통해 특정한 정치적 시스템을 주입하려는 강압적 시도가) 있어서도 안 되며, 세상의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 그리고 전쟁이 아니라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신을 믿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을 경배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33)
여기서 저는 우리가 겪은 치욕과 억압의 역사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우리를 비난하고 탄압했던 자들의 이름을 또다시 거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부질없는 짓입니다. 우리가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이슬람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나서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해야 합니다. (...) 우리 모두는 이슬람입니다. 우리 모두 억압을 받고 수모를 겪었습니다. (...) (단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마하티르를 포함한 이슬람 사람들 모두가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336)
우리는 비난했던 이들, 그리고 우리의 적들은 우리가 진정한 이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다 같은 이슬람이며, 테러를 일으킨 종교와 예언자의 추종자이자 공공연한 적에 불과합니다. 수니파든, 시아파든, 알라와이트든, 드주르파든 상관없이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고, 죽이고, 영토를 침범하고,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공격하고 약화시키면서 그들의 침략을 방조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리인을 자처하여 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서 동료 이슬람까지 공격하고 있습니다. (...)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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