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경제의 새로운 메카 말레이시아 미래에셋 글로벌경제총서 5
박종현 지음 / 김&정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말레이시아에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말레이시아도 한때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당시 외환위기를 투기자본에 의한 일시적 시장 교란으로 보고 국제통화기금의 권고사항을 과감히 거부했다. 그 대신 외환 유출을 통제하고 외국에 나가 있는 자국 통화를 회수하면서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는 등 경제 전문가들이 비웃는 정책을 집행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에 대해서도 외환투기를 통해 동남아 경제 기반을 흔드는 `사악한 투기꾼`이라고 비방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이에 대해 당시 경제 분석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황당한 조치`라고 어이없어했다. (50)

그렇다면 그토록 제한 규정이 많은 이슬람 금융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 그 대표적인 금융상품이 바로 `수쿠크(Sukuk)`다. 일종의 이슬람 채권으로, 부동산과 기계설비 등 실물과 실체가 있는 거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기업은 설비와 장비를 도입하고자 할 때 자금 부족을 겪곤 한다. 이때 설비와 장비에 대한 소유권을 증서로 발행하면 시장에서 유통이 가능해지는데, 이 증서가 바로 수쿠크다. 쿠알라룸프르의 RHB 은행 지점장은 수크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실제로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많은 이슬람권 국가들이 도로와 항만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수크크를 발행하고 있다. (55)

세계 13억 인구가 이슬람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동의 이슬람교도들은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정을 줄 곳도 없다. 여행을 하더라도 이슬람 5대 율법을 지키는 그들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 영국 등은 썩 바람직한 여행지가 아니다. 이에 비해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권 국가로서 기후도 비슷하고 영어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그들이 말레이시아를 주목하는 이유다. (58)

외국인으로서도 조심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말레이시아판 국가보안법(ISA)이다. 말레에시아 법은 헌법이 정한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면 내란죄를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감한 문제라는 것은 술탄의 지위와 권한, 말레이인의 특별한 지위, 국어로서의 말레이어, 국교로서의 기슬람 등에 관한 사항이다. (64)

말레이시아는 현재 인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동남아 국가들은 서로 비슷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지면 곧바로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공산권 국가였던 베트남은 근면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투자를 유인하고 있고, 기회의 땅 인도네시아도 용틀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싱가포르는 경제 활동에 도움이 되는 최적의 환경을 구축해 말레이시아와의 어떠한 경쟁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말레이시아가 F1 개최로 성과를 이루자 말레이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F1 유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68)

부미푸트라는 말레이어에서 나왔다. ... 결국 부미푸트라는 이 땅의 원주민인 말레이인들이 말레이시아의 진짜 주인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신경제정책의 일환인 부미푸트라 정책은 이 땅의 주인인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신경제정책이 빈곤 퇴치와 사회 구조 개혁에 명분을 두고 있다면, 부미푸트라 정책은 상대적으로 소수 민족인 중국계와 인도계 대신 말레이인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자는 게 핵심이다. (88)

사실 부미푸트라 정책은 말레이시아 국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그 비판은 중국계는 물론 말레이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말레이계의 자본 소유 비율이 30%를 이미 넘어섰다는 주장에서부터 세계화 시대에 부미푸트라 정책은 오히려 말레이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까지 비판의 내용도 다양하다. 정책의 혜택을 일부 말레이인들만 독점하고 있고 다수 서민들은 큰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지도 오래됐다. (90)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국왕의 권한은 독립 직후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 그러나 이웃 국가인 태국의 국왕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국가 위기 상황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듯이, 말레이시아의 국왕도 전통과 이슬람을 지키는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 주의 술탄이 국왕이 되든지 국왕은 재임하는 동안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국왕을 최고 통치자를 뜻하는 `양 디퍼르투안 아공`이나 `술탄 아공`으로 부르는 게 관례다. (94)

내가책임제 국가이지만 총리가 불신임을 받은 역사가 없는 말레이시아에서 총리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의 자질과 능력이 국가 발전의 핵이다. 정부 여당의 인적 구성이 국가 발전의 또 다른 요소로 덧붙여지는 정도일 뿐, 말레이시아에서 총리는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이 갖는 힘보다 탁월한 `파워 엔진`과 `가속 페달`을 갖는다. 총리가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그에게는 `브레이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말레이시아 총리가 과속 페달을 밝으면 제어할 브레이크가 없다. 말레이시아를 운전하는 총리의 개인적 성격과 취향까지도 주요 관심사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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