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바벨의 도서관 18
로드 던세이니 지음, 정보라 옮김, 이승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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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열심히 쫓아다니고 어떤 유파의 우상이 되고 싶어 하는 유명 작가들이나 음모자들이 넘쳐 나는 우리 시대에, 로드 던세이니는 아주 생소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음유시인의 기질로 꿈에 행복하게 젖어 들었고, 결코 그 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자 군인이었지만, 행복한 자기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왕국이 그에겐 내적 삶의 본질이었다. (14)

새벽빛이 더 넓어졌으며, 나는 강의 가장자리를 가득 메운 황폐한 집들을 보았다. 인간의 영혼 대신 짐짝만이 쌓여 있는 그 죽은 창문들이 내 죽은 눈을 응시했다. 그 버림받은 것들을 바라보다가 너무 지쳐서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나는 이전에는 한 번도 알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떼 지어 모여 있는 그 황폐한 집들도 지난 모든 세월 동안 소리치고 싶어 했으나, 죽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잊혀져 떠도는 것들도 울 수 있다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그것들은 눈도 없고 생명도 없었다. 나 또한 울어 보려 했으나, 나의 죽은 눈에는 눈물이 없었다. 강이 우리에게 마음을 써주길, 우리를 어루만져 주길, 우리를 위해 노래해 주기를 바랐지만, 강은 당당한 선박들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담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19)

나는 그 지방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들판에서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캐물어서, 나는 그저 그 들판이 야외극을 공연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 같아 보인다고 둘러댔다. 그는 흥미를 가질 만한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들판의 무시무시한 재난은 미래에서 오고 있는 것이었다. (33)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내 책의 독자가 내게 보내온 편지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은 결코 카르카손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문장의 출전은 모르지만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49)

운명은 내가 카르카손에 이르지 못한다고 예고했고,우리는 그 운명과의 전쟁에 나섰다. 우리가 그 운명을 뒤바꾼다면 미래가 전부 우리의 것이 되어 예정된 미래는 마른 강바닥처럼 쓸모 없어질 것이다. 우리 불굴의 정복자들이 운명이 계획한 비극 하나조차 막지 못한다면, 인간 종족은 하찮은 노예가 될 것이다.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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