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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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의도는 계량적 연구와 질적 연구를 상호 대립의 관계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종속계급의 역사에 있어서 계량적 연구가 보여주는 엄격한 결과는 질적 연구의 저 악명 높은 인상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다시 말해서 질적 연구 없이는 아직은 안 된다는 것이다). (43)

이전에 메노키오는 동향 사람들에게 자신은 모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을 대표하는 사람들 앞에서 신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었다. 프란체스코 파세타는 말하였다. "그는 제게 말했습니다. 만약 이 일로 인해 정의의 심판을 받는다면 나는 순순히 응할 것이지만, 형편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면 권력자들의 사악한 행위를 낱낱이 말할 것이라고." ... 메노키오는 ...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정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저는 저의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교황이나 왕이나 영주를 배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것들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이라면 저를 죽이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시장과 이단 심문관은 그에게 계속 증언할 것을 권고하였고, 메노키오는 더욱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때는 4월 28일이었다. (83)

메노키오는 동향 사람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단 심문관, 주교 대리 그리고 포르트그루아로의 시장은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설득력 있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한 방앗간 주인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메노키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에 대해서 충분히 확신하고 있었다. ...... 재판관들의 요구에 메노키오는 "저의 영혼은 숭고한 것을 추구하였으며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원하였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올바르게 나아가지 못하고 그토록 많은 허식으로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92)

도대체,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모순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은밀하게 제약하고 있는 그 거대한 힘의 논리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촌스럽고 단순하지만 상당히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99)
......
메노키오에게 있어서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특별히 종교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었다. 한 방앗간 주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게 나누어준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교황 왕 그리고 영주에게 신앙의 진리를 드러낼 것을 요구할 수 있다. ... 메노키오가 기존의 계급 질서를 그토록 열렬하게 비난한 것은 억압을 인식해서뿐만 아니라 종교적 이념, 즉 때로는 성령..., 때로는 `신의 령...`으로 불리는 하나의 `정신`이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바로 그 종교적인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102)

그러나 메노키오는 몽테뉴가 아니었으며 독학으로 공부한 한 사람의 방앗간 주인에 불과하였다. 메노키오는 삶의 대부분을 몬테레알레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어도 라틴어도 몰랐다(기껏해야 약간의 기도문 정도만 알 뿐이었다). 그는 겨우몇 권의 책만을,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들을 여러 번 숙독하여 모든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자신의 읽은 것들에 대해서 수년 동안 되새김하였으며 단어와 구절들은 수년 동안 그의 기억 속에서 숙성되었다. 메노키오의 길고도 힘겨운 노력의 매커니즘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있다. (168)
......
"이 부분에서 저는 육신이 죽으면 영혼도 함께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수가 많고 다양하다 보니 사람들의 신념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171)

이단 심문관: 당신이 하느님이라고 부른 것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창조된 것인가?
메노키오: 그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움직임은 혼돈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나아갑니다.
이단 심문관: 누가 혼돈을 움직이는가?
메노키오: 혼돈은 스스로 움직입니다. (190)

(모든 것을) 할 수도 그리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아버지이시며 주인이신 하느님, 인간인 그리스도, 게을러빠진 사제나 수사들이 만들어낸 복음서, 종교들 사이의 동질성. 이 모든 것은 메노키오가 재판을 받고 굴욕적인 파기 서약을 했으며 수감 생활을 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개정의 의지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각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메노키오의 이러한 태도는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결코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 2년이 지난 1598년 10월 28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단 심문관들은 지나간 재판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메노키오와 도메네고 스칸델라가 동일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종교 재판소의 활동이 재개되었다. (292)

그러나 신화의 제네바, 종교적 자유의 고향(이라고 그는 생각했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러한 현실과 더불어 힘든 순간에 곁에 있어주었던 친구에 대한 변함없는 의리 때문에 메노키오는 도망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는 신앙 문제에 대한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자제할 수도 없었다. 결국 메노키오는 이곳에 남아 자신의 박해자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98)

스콜리오의 예언과 메노키오의 이야기가 서로 유사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공동의 출처, 즉 단테의 <신곡>과 <코란>을 통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스콜리오는 아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메노키오도 그러한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세대를 거듭하면서 구전으로 전승된 전통, 신화 그리고 수많은 열망이 가지는 공통된 부분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두 경우 모두에서 교육을 통해 기록 문화와 접촉함으로써 구전 문화의 심오한 뿌리들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메노키오는 기본 교육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334)

그들의 노동 조건 때문에 방앗간 주인들도, 여인숙 주인들 선술집 주인들 떠돌아다니는 수공업자들과 마찬가지로, 확산되는 새로운 이념들에 비교적 개방된 직업이었다. 그 밖에도 일반적으로 주거지에서 멀리 위치하여 호기심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던 방앗간은 비밀 집회의 장소로는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
결국 방앗간 주인들은 그들의 특별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서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동체로부터 고립되어갔다. 농민들의 적대감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것은 방앗간 주인들이 수세기 동안 방앗세를 통해 특권을 유지하고 있던 지역의 봉건 영주들에 직접적으로 예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340)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근본적인 언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재구성하려고 하였던 농민 문화의 기본 조류와 16세기 문화의 가장 진보적인 집단의 기본 조류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유사성을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확산되는 움직임으로 설명한다면, 이는 사상이란 독점적으로 지배 계층의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결코 수용될 수 없는 입장에 매달리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단순화된 견해를 거부한다면 이 시기에 지배 계층의 문화와 피지배 계층의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이 대한 보다 복합적인 가설을 제시해야만 한다. (353)

가톨릭 세계의 최고 수정인 교황 ...는 ... 메노키오의 죽음을 요구하고자 몸소 관심을 나타냈다. 바로 이 몇 달 동안 로마에서는 전직 수도사인 조르다느 부르노...에 대한 재판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트렌토 공의회에서 공포된 교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가톨릭 교권이 여러 해에 걸쳐 벌여왔던 이중적인 전쟁, 즉 하나는 상충부를, 다른 하나는 하층부를 향한 전쟁을 상징하는 우연의 일치였다. 이는 그 늙은 방앗간 주인에게 다른 때 같았으면 이해될 수 없었을 가혹한 조치였다. ......
이토록 강력한 압력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날 이후 얼마 있지 않아 메노키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359)

우리는 메노키오에 대해서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마르카토 또는 마르코에 대해서는,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처럼 흔적은 남기지 않고 살다가 죽은 다른 많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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