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가지 이야기가 있는 나라, 인도네시아 - 개정판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1
임진숙 지음 / 즐거운상상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인도네시아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외국 사람들은 한국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몇 년 전 독일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실시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눈에 띄었다. 우리 나라는 2002년 월드컵 개최국이고, 독일은 2006년 워드컵 개최국이다.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더니, 1위를 차지한 응답이 다음과 같았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위치한다.` (39)

32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 했던 수하르토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며 마지막 연설을 했다. "미안합니다. 그 동안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해주십시오." 그의 인사말을 전하며 한국의 어느 기자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과오를 겸허하게 반성하는 내용인 것은 맞지만, 사실 그 말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내가 한국에 돌아올 때도 이웃 사람들이 "고의든, 아니든,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며 내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42)

"그놈의 무다무다한."
"이번 주까지 그 일을 끝낼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에 현지 직원이 "모쪼록 그렇게 되기를." 하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예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니고, 애써서 끝내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모쪼록이라니, 일을 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그이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은 "내가 그 일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이 표현도 어폐가 있지만--는 것이었을리라. (70)

자바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행동 양식은 `자기감정의 통제`이다. 자바 사람들은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여긴다. 예컨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내는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까지 간주한다. 공손한 말투와 천천히 우아하게 움직이는 몸짓으로 자바 사람들은 예의를 갖춘다. 좁은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앞을 지나칠 때는 `실례합니다.`라고 몸을 숙이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재빨리 걷는다. (96)

수사가 난관에 봉착할 경우, 경찰이 두꾼의 도움을 받는 일도 종종 있다. 두꾼은 사건의 전말을 진단하고 용의자의 행방을 찾는데 협조한다. 살해사건의 경우,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경찰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2002년 발리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인도네시아 수사팀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두꾼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잘 알려진 비화다. ... 수하르토의 막내아들 또미가 사기와 청부 살해 혐의 등으로 수배되어 잠적했을 때도, 경찰은 두꾼을 찾았다. 또미가 조속히 검거될 수 있게 주술을 써달라고 두꾼에게 부탁했지만, 또미도 두꾼의 힘을 빌려 경찰에 맞섰다. 또미는 거액을 들여 신통력이 뒤어난 두꾼을 섭외해,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간발의 차이로 또미가 경찰을 따돌리는 일일 생기자, 언론에서는 `100명의 두꾼이 또미를 지켜준다.`고 헤드라인을 뽑기도 했다. (156)

집 앞에, 또는 차량에 노란 깃발이 달려있으면 상가이거나 영구차란 뜻이다. 이슬람 교도는 사람이 죽었을 때 24시간 안에 매장을 한다. 임종을 앞둔 무슬림은 세정의식 후, 머리를 메카 방향으로 향한 채 신앙고백을 하며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오전에 사망하면 그날 장례를 거행하고, 오후에 사망하면 다음날 정오 이전에 장례식을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시신은 염을 한 다음에 흰 천으로 감싸고 손은 가슴 위에 얹는다. 무슬림은 죽음을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여기기 때문에 곡소리를 내지 않는다. (222)

일본 태생으로 1962년에 인도네시아 영부인이 되었던 데위는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물. 호스티스 출신인 그녀는 수카로느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친선` 차원에서 일본이 수카르노에게 보내준 여자이다. 데위가 인도네시아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숨을 거두었으며 남동생은 자살을 했다. 데위는 수카르노의 사랑을 받으며 숱한 소문과 화제를 뿌렸다. (241)

아울러 부정의 표현 속에도 긍정을 담아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블룸...`이라는 간단한 단어로 수많은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 블룸은 `아직~가 아니다`라는 부정한 표현이다. ... 언젠가 슈퍼마켓에서 건전지를 샀는데 안에 즉석 행운권이 들어있었다. 동전으로 긁어서 결과를 보니 `역시 인도네시아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종이에 `당신은 아직... 운이 없군요.`라고 쓰여있었던 것이다. ... `꽝`이란 단어와 폭탄이 터진 그림보다 훨씬 위안을 주는 글이 아닌가? 다분히 인도네시아다운 표현을 접하고,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249)

깜비라..._ 아기들 묘가 있는 곳. 아기가 잠들어 있는 곳은 수령 300년이 넘는 고목이다. 또라자족은 이가 채 나기도 전에 아기가 죽으면 나무 속에 묻는다. 아기가 너무 어려서 동굴을 탈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기가 죽으면 가족은 시신을 안치할 나무에 표시를 하다. 죽은 아기는 엄마 젖처럼 하얀 수액이 나오는 나무 구멍 속에 무릎꿇은 자세로 안치된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16년이 흐르면, 아기가 그 나무를 떠나 내세로 갈 수 있게 다시 한 번 의식을 치른다. (268)

인도네시아는 대표적인 가정부 송출 국가이다. 인도네시아 가정부들이 낯선 타국에서 부딪히는 현실은 때로 가혹하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비참한 결말을 맺는 가정부들이 수두룩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막대한 외환수입 때문에 인력송출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 국내에서는 상류 계층에게서 하인처럼 부림을 받고, 외국에 나가서조차 무시당하고 학대받는 인도네시아 가정부들. 나라가 못 살면 이렇게 국민이, 특히 가난한 민초들이 고생을 한다. (273)

인도네시아에서는 범죄자를 경찰에 넘기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응징하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이렇게 노상에서 이루어지는 즉결처형을 `후꿈 잘란`이라고 한다. 거리 재판은 보통 현장범을 목격했을 때 발생한다. 소매치기나 절도 행위를 하다가 발각되어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자칫 황천길로 갈 수 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집단 구타를 당해 죽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도망쳐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가는 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287)

온건성, 인내심, 광란성. 어느 인도네시아 학자는 인도네시아인의 국민성을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했다.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어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강하게 응집하곤 한다. 이런 정서를 안다면, 인도네시아에서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인도네시아 속담에 `모기는 죽어도 가려움은 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한번 원한을 품으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도네시아 사람을 대할 때 `든담`을 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든담이란 앙심, 원한, 복수를 일컫는 말이다. ... 단순히 수줍은 정도가 아니라 수치심이나 모멸감이 드는 상황에 처하는 것,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일이다. 평소에는 온순하나 한번 오해가 생겨 마음이 상하면 원상 회복이 쉽지 않다. 무시당하고 위신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은 그 일을 쉽게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둔다. 그러고는 나중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앙갚음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보복을 하기도 한다.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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