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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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버지는 보천보 전투를 우습게 생각한 겁니다. 국가 건설사업이 먼저라고 판단한 거죠. 그게 아버지의 단점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김일성이 나이가 열두 살 아래니까 애송이 취급한 게 아닐가 싶어요. 그래도 정통성이라는 게 있는데 소련이 대국가인 만큼 원칙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겁니다. 그런 배경에서 보천보 사건을 얕본 것 같아요. 소련 역시 어느 선까지는 인정하고 어느 선까지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정리하지 않겠느냐고 본 거죠. 그런데 이런 것은 정치를 모르는 이야기거든요. 그냥 혁명정신과 투쟁정신으로만 정통성을 잇는 것은 아닌데 이 샌님 같은 양반이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김일성에 대한 발언을 함구시켰어요. (88)

박헌영: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그대들 말대로 나는 미국의 스파이였다고 하자. 모든 것은 내가 주도했을 뿐 남로당 간부들은 전혀 책임이 없다. 그들은 모두 조국의 해방과 통일, 사회주의 혁명과업을 위해 밤낮으로 일해온 정직한 애국자들이다. 나에게 떨어진 죄의 대가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달게 받겠으니 죄 없는 남로당 간부들을 용서해달라. 거듭 부탁한다.
......
최용건: ... 박헌영을 사형에 처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재판소 재판장 최용건. (119)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군대에서 느낀 점입니다. 제가 해군 가서는 뭐 했겠어요? 군대에서 훈련받으면서 배우는 게 뭡니까? "김일성 때려잡자." 아닙니까? 실제로 나는 그때 김일성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특수부대를 선택했습니다. 유디티에 지원해요. 거기서 진해 하수구란 하수구는 다 빠져 다니는 훈련. 그 무서운 수중폭파, 선반용접, 낙하훈련, 사격, 단검 쓰는 훈련 등을 하며 혹독한 나날을 보내죠. 그러면서 정말 김일성을 죽일 수 없을까 생각했어요. (126)

한마디만 더 말씀드린다면, 아버지의 복권은, ..., 저는 급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 남로당 전체, 이름 없이 산화된 그 사람들의 명예를 정말이지 바로 찾아야 합니다. 물론, 박헌영 선생이 복권되면 그것도 덩달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지만요. 일단 아버지는 아무리 금기시하고 억압해도 언젠가는 이름 석 자가 나오고, 100년 뒤든 언제가 됐든 학자들의 입에서는 나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역적이 되든 충신이 되든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광복 운동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남로당이 되려고 그렇게 청춘을 불살랐던 건 아니거든요. 남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고 보니까 모든 게 뒤틀린 거죠. (159)

네. 우리가, 제가 뭘 요구한다고 해서 이북이 받아줄 리 없고, 그렇다고 남에서 받아줄 리도 없고 이 문제는 그저 운명론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국운에도 운명이 있을 듯한데, 저는 박헌영 선생은 복권하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동행자들에 대해 진실이 밝혀지고 또 그분들 한 분 한 분을 복권시켜 주는 것이, 그 자손들에게도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68)

만일 그렇게 정권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 동포 중 절대다수 거의 90퍼센트나 되는 근로대중은, 소수 특권계급의 독재정치 밑에서 또다시 종전 그대로의 본의가 아닌 무리한 착취와 압박을 받게 될 것이요 민주주의 권리가 억압될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 공산당에서는 우리의 정권을 민주주의적으로 해결하자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민족의 통일을 주장하되 원칙 있는 통일, 즉 종래의 특권계급의 기본 부대인 친일파, 민족 반역자를 제외한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완강히 투쟁하고 있으며 이 원칙이 서지 않은 통일, 즉 덮어놓고 한데 뭉치자는 것은 그 본 의도와 결과에 있어서 친일파 민족 반역자로 구성된 소수의 조선의 특권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외 다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공산당은 물론이고 진정한 민주주의자들은 결코 이러한 민족 유해의 통일을 찬성할 리 만무할 것이오. 가령 통일이란 미명에 일시적으로 미혹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 순간의 일일 것입니다. (177)

세계 문제가 해결되는 마당에 따라서 조선 해방은 가능하였다. 지금은 모든 국가를 개별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개별적 국가의 문제를 전 세계의 견지에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 세계 정치의 흐름이다. 이것은 민족주의에 대한 국제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교훈이다. 파시즘과 일본과의 전쟁에서 조선은 자기의 떳떳한 역할을 하지 못하였고 식민지로서 일본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조선의 의사는 아니었지만 조선이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협조를 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조선 인민이 이 사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여야 할 때가 왔다. 이것은 앞으로 조선이 다른 나라들 중에서 진보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전제인 것이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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