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눈으로 가득 찬 신발을 끌고서 바람을 버치며 걸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종이에 베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걸어가다가 울타리 안에 있던 소 한 마리가 그와 보조를 맞춰 걷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가 천천히 걷자 그 동물도 속도를 늦췄다. 그는 멈춰 서서 그 동물을 돌아봤다. 동물도 멈추고는 입김을 뿜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소는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주자처럼 등에 눈을 얹고 있었다. 소가 머리를 쳐들었다. 그 울부짖는 차가운 눈빛 속에서 그는 알았다. 자신이 또다시 틀렸음을, 가죽이 반만 벗겨진 소의 붉은 눈은 항상 그를 응시하고 있었음을. (34)
거기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 보라. 구름 그림자가 영사기로 쏜 영화처럼 황색 바위 위를 질주한다. 그 영화의 배우들은 여드름처럼 울퉁불퉁하고 메스껍게 덮여 있는 땅의 입자들이다. 바람이 쉿쉿 소리를 토한다. 이것은 이 고장 특유의 산들바람이 아니라 지세가 바뀌면서 불기 시작한 사나운 광풍이다. 비죽비죽 솟은 쪽빛 산봉우리, 끝없는 초원, 퇴락한 도시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바위, 활활 타오르듯 펼쳐진 하늘. 거친 자연은 우리의 영혼에 전율을 일으킨다. 들을 수는 없고 느낄 수만 있는 깊은 음처럼, 또 뱃속 깊이 박힌 짐승의 발톱처럼. 위험하고도 냉담한 대지, 그 굳건한 대지에 비하면 인간 비극은 하찮다. (112)
그 고장에서 남자 아이들은 은행에 저축해둔 돈과 같았고, 아이스는 노동력을 벌충하기 위해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에겐 크리스마스 때는 밧줄을 주었고, 생일 때는 손 한 번 잡아주고 빌어먹을 케이크를 먹였다. 아이들이 배운 것은 가축 돌보는 일과 목장 일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아주 어릴 때부터 초원에서 혼자 잘 줄 알았다. 비라도 내리면 초원에 무릎을 곧추 세우고 앉아 머리에 뒤집어쓴 우비 위로 비가 후드득후드득 귓가를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가을이 되어 소몰이가 끝나면 아이들은 취미로가 아니라 실제 먹을 고기를 얻기 위해 젤름산에 사냥을 나섰다. 아이들은 한창 때의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들은 불편한 것에 이골이 난 지칠 줄 모르는 일꾼이었으며, 술과 담배, 그리고 일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근육질의 키가 크고 단단한 이 아이들이 새벽 서리가 걷히기도 전에 말에 올라타 박차를 가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 일은 없었다. (116)
황야와 말, 가축,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고, 그들이 사랑하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었다. 8형제는 황야를 누볐고, 형제와 아버지 아이스는 모두 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넓은 평야를 달리며 가축을 돌보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없는 이상한 고집이 생겨난다. 던마이어 가족은 자기들이 매일같이 말 타고 달리며 본 것을 통해 아름다움과 종교를 가늠했고, 이것이 예술과 지성을 경멸하도록 부추겼다. 그들은 좀 괴상하게 교만했으며 자기네 방식만 옳다는 경직된 태도를 고수했다. (119)
스코프의 어머니가 갓난아기 렌치를 돌봤던 시절부터 두 사람은 서로 최고의 친구였다. 아기 놀이울도 함께 썼다. 스크롭의 형 트레인은 놀이울 사이로 둘에게 얼굴을 찡그리거나 둘이 볼 수 있는 테이블 아래 누워 자기 플라스틱 말을 갖고 약을 올렸다. 스크롭에게 아내 제리는 사우스다코타에서 날아와 잠시 둥지를 틀었다가 다시 날아가버린 작은 새였지만, 친구 존 렌치는 처음부터 그의 옆에 있었고 둘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의 관을 메게 될 사이였다. (190)
아이네즈는 진흙 위로 말을 타고 갔다. 오른쪽 토끼풀 덤불에서 커다란 암컷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는 누런 사팔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바람이 불어 늑대의 털이 흔들렸다. 아이네즈는 본증적으로 밧줄을 풀고 올가미를 만들어 던졌다. 코 주위까지만 던지는 실수를 몇 번 하는 사이, 늑대는 공중으로 곧장 몸을 날렸고 암갈색 말은 앞발을 들어 곧추섰다. 늑대는 뒤로 돌아 몸을 웅크렸다. 말은 다시 한 번 앞발을 들어 몸을 세우고 서커스 말처럼 뒷걸음질 치더니 쓰러져 머리를 땅에 심하게 부딪혔다. 아이네스의 몸이 날아 턱부터 땅에 떨어지며 앞으로 미끄러졌다. 목이 부러지고, 입은 벌어지고, 아랫니는 붉은 흙을 쟁기질했다. 밧줄은 떨어져 있었고 늑대는 바람에 뻣뻣하게 흔들리는 세이지 숲으로 달아났다. (210)
크레이지 우먼 크리크 배수 유역에 있는 고물 트레일러에서 살던 해, 나는 조제니 스카일스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한밤중에 불이나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집. 그렇게 생각한 것은 지루하고 말 많은 시골이기 때문인 듯하고, 또 마음에 이는 작은 불 같은 것은 대개 저절로 사그라지는 법이지만 어떤 사람 안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화재로 치솟기 때문인 듯하다. (231)
세 여자 모두 결혼한 적이 있었다. 싸움과 멍든 눈, 흐느끼며 퍼붓는 저주로 가득 찬 고된 결혼 생활이었고, 술 마시는 남자와 불같은 성미가 무슨 문제를 불러오는지 셋 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와이오밍 사람은 시한폭탄이며, 다혈질에 성미 급하고 육체적인 욕구도 강하다. 가축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곳 사람들은 늘 서로 악수를 하고 도닥거리고 쓰다듬고 애무하고 껴안는다. 이런 본능은 화를 낼 때도 드러난다. 눈앞에 불이 번쩍이게 손등으로 치고, 중심을 잃고 휘청거릴 정도로 엉덩이를 때리고, 팔꿈치로 가격하고, 팔을 홱 잡아당겨 비틀고, 손으로 찰싹 때리고, 죽일 작정으로 덤비고 그러다가 때로 죽이기도 한다. (238)
경찰이 왔을 때, 오넬리스는 목에 관통상을 입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이제 요들은 부를 수 없게 됐다. 엘크는 벌써 죽은 상태였다. 조제너는 죽어가고 있었다. 쓰러진 조재너 아래 그녀의 총 블랙호크가 놓여 있었다. 내 생각을 말해볼까? 라일리의 말처럼, 조재너는 기회를 보았고 그 기회를 잡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친구여, 어두운 충동에 굴복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쉽다. (254)
둘은 불가에서 유쾌한 저녁식사를 했다. 콩 통조림 한 통씩은 각자, 튀긴 감자와 위스키 한 병은 같이 나눠 먹었다. ...... 두 사람은 서로의 견해를 존중했고,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 동지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취해 비틀거리는 등불을 들고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고 양 떼에게 돌아가면서, 에니스는 이렇게 좋은 시간은 평생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발을 뻗으면 달에라도 닿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다. (324)
"알아? 옛날 브로크백이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줬고, 그건 끝나선 안 된다는 걸.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건지 해결책을 찾아야 돼." 에니스가 말했다. "그해 여름, 우리가 돈을 받고 헤어질 때 복통이 너무 심해서 길옆으로 가 토하려고 했어. 뒤부아에서 먹은 게 잘못된 줄 알았거든. 일 년 뒤에야 깨달았지. 널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걸 알았을 때는 한참, 아주 한참 지난 뒤였어. 너무 늦어버린 거지." (334)
잭은 억누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이 기억하고 갈망했다. 브로크백에서 보냈던 그 아득한 여름, 에니스가 뒤로 다가와 그를 끌어당긴 순간 함께 느꼈던 열망, 성욕 아닌 그 열망을 만족시켰던 침묵의 포옹을. 그들은 불 앞에서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타오르는 모닥불은 붉은빛을 흔들며 둘의 그림자를 하나의 기둥으로 바위에 드리웠다.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것은 에니스의 주머니에 있는 회중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와 숲으로 변해가는 장작의 탁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모닥불 위에서 아른대는 아지랑이 사이로 별이 반짝였다. 에니스의 숨결이 느리고 고요하게 와 닿았다. 에니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불꽃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몸을 흔들었고, 잭은 고른 심장박동, 희미한 전류 같은 콧노래의 진동에 기대서서 잠 아닌 잠에, 나른하고 꿈결 같은 상태에 빠져 있었다. ...... 그 나른한 포옹은 떨어져 있는 그들의 고된 삶에서 유일하게 솔직하고 즐거운 행복의 순간으로 그의 기억 속에 굳어졌다. ...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은 더 얻을 수 없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대로 두라, 그대로 두라. (347)
그가 아는 것과 믿으려 했던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고칠 수 없다면 견뎌야 했다. (3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