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사강의 - 개정판
한국근현대사학회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독립운동의 공간이 국내에서 국외로 확장되었고, 주요한 방략으로서 독립전쟁론에 합의를 이루었다. 독립전쟁론이란 민족의 군대를 양성하였다가 일제가 중 미 소 등 열강들과 전쟁을 일으킬 때 이들과 함께 독립전쟁을 감행하여 독립을 쟁취한다는 방안이었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서 민족의 군대인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독립운동의 전열을 정비하고 민족의 역량을 축적해 갔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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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제가 패망하였을 때, 강대국들이 한민족의 이러한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연합국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또 연합국이 일제를 패방시켜 주기만을 기다렸다면, 그것이야말로 타율적인 독립운동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제관계를 부정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독립운동은 한민족의 자주적인 노력과 함께 변화하는 세계정세와 국제관계를 이용하면서 전개되고 있었다. (28)

물론 조선말기에도 이미 토지 사유권이 확립되어 있어서 토지의 자유로운 매매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등기제도와 같이 사유권을 법제적으로 보장하는 증명제도가 불충분하였을 뿐 아니라, 토지에 농민층의 여러 권리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토지의 사유권에 있어서 지주의 권리만을 인정하고 그 외의 농민의 권리는 모두 배제시켰다. ... 예컨대 일제는 조선 후기 이후 계속 성장하고 있던 농민둘의 관습상의 경작권 개간권 도지권 입회권 등을 철저히 부정하고 단지 지주의 사유권만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 결과 많은 농민의 토지가 국유지로 강제편입되거나 지주 소유지로 바뀌었다. 결국 토지조사사업은 식민지 지주제의 발전과 농민층의 계층분화와 몰락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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