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호랑이가 온다
피오나 맥팔레인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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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프리가 이번 통화를 아주 따뜻하게 끝내자 당연한 일이지만 루스는 처음으로 자신이 걱정되었다. 다정한 태도에 마음이 흔들렸다. 루스는 아들들이 조금은 무서웠다. 그들의 젊은 권위에 의해 자신들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게 드려웠다. 루스는 젊었을 때 활기차고 매력적이며 사교적인 단란한 가족 구성원들을 보면 신경이 과민해지곤 했는데 이제 자신이 그런 아들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들들의 목소리가 확실히 무겁게 다가왔다. (23)

루스는 거실로 돌아가 한동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귀에 들리는 것은 모두 평범한 소리였고 서늘한 실내는 딱딱하게 경직되어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파에 누운 뒤 등을 돌려 창문의 레이스를 등진 채로 기다렸다. 뭔가가 그녀 몸에 닿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것이 무엇이든 눈을 뜨지 않은 채 기다리는 게 아주 중요한 것 같았다. 그것이 호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지만 다른 무엇이라도 괜찮았다. 어쩌면 새일 수도 있지만 꼭 새일 필요도 없었다. 파리 한 마리라도 괜찮았다. 노란 바람에 실려 떠다니는 잎 하나라도 괜찮았다. 두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동안 루스는 그녀의 정글이 돌아온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노란빛이 있었을 수도 있고 호랑이가 루스의 등에 넓적한 코를 갖다 대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콸콸 소리를 내면서 수도관을 흘러가는 물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73)

어떻게 그처럼 무엇을 물어도 의견이 끝없이 나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의견을 어떻게 그토록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루스는 리처드가 자신보다 훨씬 똑똑하고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느낌을 그렇게 말로 옮기는 그의 능력이 믿기지 않았다. ... 리처드가 말하는 식의 이야기만 의견이라고 한다면 루스에게는 의견이 없었고 그저 좋고 나쁜 느낌만 있으며 그것도 종종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자신에게도 의견이 있지만... 의견을 깊이 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거라고 여겼다. 루스는 책이나 미술, 음악에 대한 취향을 억지로 밝힐 때면 좋아하는 색깔에 관해 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해리와는 즐길 거리를 편안하게 함께할 수 있었다. 그가 느끼는 즐거움도 마찬가지로 모호했기 때문이다. (92)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제프리가 말했다.
루스는 전화기에 대고 얼굴을 찡그렸다. 즐거운 시간이라고! 내 갈비뼈 밑에 널 품고 아홉 달이나 다녔어. 루스가 생각했다. 내 몸으로 널 먹여 살렸다고. 난 신이야. 그때 루스의 머리에 떠오른 말은 `개새끼`였다. 하지만 그러면 루스가 개가 된다. (98)

루스는 엘런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아울러 프리다에게도 고마웠다. 프리다는 집과 고양이와 루스를 위해 끊임없는 관심을 쏟으며 자기 몸이 닳도록 일했고 호랑이를 쫓아내주었다. 하지만 루스는 프리다를 화나게 하는 무슨 일을 저지른 것처럼 불안감이 찾아오는 걸 알아차렸다. 왜 프리다가 무서운 걸까? 두려움이 몰려왔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어제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든 것과 관련된 일이 기억났다. 바닥에 알약을 던지고 모래언덕에 꽃을 던졌다. 프리다가 화를 내는 게 당연했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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