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들은 명백히 위험한 생각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위험하다고 비난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게 잘못됐기 때문에 아니며, 그 질문들이 해로운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들이 진정 위험한 까닭은 널리 퍼져 있는 도덕적인 질문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22) ...... 만약 위험한 생각이 실제로 위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아주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 가운데 위험한 생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를 들어 인간은 평균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아서,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하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녀의 인격 형성에 끼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해도, 그것에 근거해 자녀를 학대하거나 홀대하는 것은 명백히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로 잘못된 일이다. 또한 환경 보호에 현재 유행하는 대중적인 생각들이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더 효과적인 환경 대책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지 그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25)
로봇과의 관계를 보면, 다윈과 그의 위험한 생각, 즉 인간의 독특성이 생각난다. 어린이와 고령자가 로봇 애완동물과 다정함을 주고받을 때, 가장 중요한 물음은, 어린이들이 로봇 애완동물을 현실의 애완동물이나 심지어 부모보다 더 많이 사랑할 것인지가 아니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게 될 것이냐는 것이다. (45)
첫째, 차별을 정당화하는 과학은 나쁜 과학이다. 둘째, 설사 자연적인 불평등이 입증될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권리에 있어서 불평등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셋째, 정치적 이유로 자연주의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판테온에 모셔놓은 하이데거와 기타 반동주의자들부터 거부해야 할 것이다. (85)
악한 행동을 범하는 사람들과, 영웅적인 행위를 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단지 보통사람이고 평균적인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닮았다. 악의 평범함과 영웅주의의 평범함은 서로 유사하다. 둘 다 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유발되는 것이 아니다. ... 그 둘의 행동은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상황에서 도출된 것일 뿐이다. 상황의 힘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그들로 하여금 방관자에서 행동하는 자로 옮겨가도록 밀어붙인 것에 불과하다. (96) ...... 반면 테레사 수녀나 만델라, 간디의 영웅주의는 일생에 걸쳐서 용기 있는 행위로 일관되어 있었다. 장기간에 걸쳐 계속된 영웅주의와 짦은 기간에 그친 영웅주의의 차이는 용기valor와 용감함bravery의 차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98)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믿는다. 우리 자신이 신이나 설계자 같은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의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 것, 우주 속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의 고유함과 특별함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가진 것들을 매우 감사하게 여기게 한다고 믿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단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뿐 아니라 그 결과 강한 도덕률도 갖추게 될 것이다. 삶이란 존경해야 하고 경건하게 숭배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134)
우리는 우리의 존재 내부에 존재한다. 우리 존재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 존재의 외무에 대해서는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우리의 존재는 우주를 위한 어떤 목적도 없고, 우주 역시 우리를 위한 아무 목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 존재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에 관해 묻고 답해야 하는 것이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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