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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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처럼 스페인 노동 계급... 속에 들어가 함께 어울려본 사람들은 그들의 타고난 품위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솔직함과 관대함에 감명 받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 사람의 관대함은 때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이다. 담배를 한 개비 달라고 하면 한 갑을 억지로 떠안긴다. 또 이런 흔한 의미의 관대함을 넘어서는, 더 깊은 의미의 관대함이 있다. 영혼의 웅대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이다. 나는 대단히 가망 없는 상황에서도 그런 관대함과 여러 번 마주쳤다. (21)

우리 오른쪽 아래편의 통일사회당 초소에서 소리를 지르던 사람은 이 일에서 가히 예술가라 할 만했다. 이따금씩 그는 파시스트들에게 혁명적 구호를 외치는 대신,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인민전선 정부가 배급하는 식량을 이야기할 때면 상상력을 약간씩 가미하곤 했다. "버터 바른 토스트!"--우리는 그의 목소리가 쓸쓸한 골짜기 너머로 메아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우리는 여기 앉아서 버터 바른 토스트를 먹고 있다! 버터 바른 토스트들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너희들도 알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그가 지난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버터라고는 구경도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몹시 추운 밤에 버터 바른 토스트 이야기를 듣고 많은 파시스트들의 입에 침이 고였을 것이다.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아는 내 입에도 침이 고였으니. (61)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은 사실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었다. 스페인 외부의 반파시스트 언론은 그 사실을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었다. 쟁점은 <파시즘 대 민주주의>로 좁혀졌다. 혁명적 측면은 최대한 은폐되었다. 다른 곳보다 언론의 집중이 심하고, 또 대중이 언론에 쉽사리 기만당하는 영국에서는 스페인 전쟁에 대해서 오직 두 가지 이야기만이 입에 오르내렸다. 하나는 기독교 애국자들과 피를 뚝뚝 흘리는 볼셰비키들의 대립이라는 우익의 이야기였다. 또 하나는 신사적인 공화주의자들이 군사 반란을 진압하고 있다는 좌익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해서 핵심적 쟁점을 성공적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 스페인 밖에서는 이곳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반면 스페인 내부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71-2)

그러나 의용군 해체의 주목적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의용군의 민주적 분위기 때문에 혁명적 사상들이 양성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통일노동자당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시행하고 있는 모든 계급 간의 평등 보수 원칙을 쉴새없이 통렬하게 비난했다. 그 결과 전체적인 <부르주의화>, 즉 혁명 초기 몇 달 간 이루어졌던 평등 정신의 고의적 파괴가 일어났다. 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바람에 몇 달 간격으로 스페인을 다시 찾은 사람들은 같은 나라에 온 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스페인은 잠깐이지만 언뜻 노동자 국가로 보였다. 그러나 노동자 국가는 눈앞에서 평범한 부르주아 공화국으로 바뀌어 갔다. (77)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전선에서 알게 된 통일사회당 의용군 병사들이나, 이따금씩 만나는 국제 여단의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결코 트로츠키주의자나 배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 일은 후방의 기자들이 담당했다. 우리에게 반대하는 팸플릿을 쓰고 신문에서 우리를 헐뜯는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집에, 혹은 기껏해야 발렌시아의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다.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었다. ... 이 전쟁의 우울한 결과 나운데 하나는 좌익 언론도 우익 언론만큼이나 똑같이 거짓되고 부정직하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는 점이다. (89)

나는 바로셀로나에서 보았던 모병 포스터를 자주 생각했다. 그 포스터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질책하듯이 묻고 있었다.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식량만 축냈습니다.> 나는 의용군에 입대하면서 파시스트 한 명은 죽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우리 각자가 하나씩 죽이면 파시스트들은 곧 소멸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하나도 죽이지 못했다.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96)

당시에는 그것을 아무리 욕했을지라도, 나중에는 뭔가 신기하고 귀중한 어떤 것과 접해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냉담과 냉소보다는 희망이 더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공동체, <동지>라는 말이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허위가 아니라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지금은 사회주의가 평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임을 나도 잘 안다. ... 그러나 다행히도 이와는 아주 다른 사회주의에 대한 비전도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 사상에 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란 계급 없는 사회일 뿐이다. 그것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41)

균형 감각을 유지하려면, 잘못이 전적으로 어느 한편에 있는 것이 아님을--이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일방적인 편견만 받아들여진 이유는 스페인의 혁명적 정당들이 외국 언론에 아무런 발판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 언론을 아무리 뒤져봐도 전쟁 전 기간에 걸쳐 스페인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우호적인 언급을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모욕을 당했다. 나도 경험을 통해 알지만 그들을 옹호하는 기사를 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206)

<동맥이 날아갔구나.> 나는 생각했다. 경동맥이 잘렸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 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일까. 나를 맞히었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그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파시스트였다면 나도 그를 죽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그 순간에 그가 포로가 되어 내 앞에 끌려 왔다면 잘 쏜 것을 축하해 주기만 했을 것이다. (240)

휴가를 나온 의용병 두 명이 친구를 면회왔다가 나를 알아보였다. 내가 전선에 나간 첫주에 만났던 병사들이었다. 열여덟 살 정도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내 침대 옆에 어색하게 서서 할말을 생각해 내느라 애를 썼다. 이윽고 내가 부상을 당해 안타깝다는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일제히 꺼내 나에게 주었다. 그러고는 돌려줄 틈도 없이 달아나버렸다. 정말 스페인 사람들다웠다! 나중에야 나는 시내 어디를 가도 담배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일주일 치 배급받는 것을 몽땅 털어주고 간 것이었다. (243)

어느 날 아침 내 병동에 있는 사람들을 바르셀로나로 후송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나는 간신히 아내에게 곧 도착한다고 전보를 칠 수 있었다. 곧 병원측에서는 우리는 버스에 빽빽하게 실어 역으로 보냈다. 기차가 출발을 하고 나서야 우리와 함게 가게 된 병원 잡역부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우리가 가는 곳은 바로셀로나가 아니라 타라고나라고 말했다. 기관사의 마음이 바뀌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답군!>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전보를 치는 동안 기차를 세워놓고 기다려주기로 한 것도 역시 스페인다웠다. 그리고 그 전보가 아내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은 더욱더 스페인다웠다. (246)

스마일리의 죽음은 내가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일리는 용감하고 재능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글래스고 대학의 자리를 내팽개쳤다. 또한 내가 목격한 대로, 그는 흠 잡을 데 없는 용기와 흔쾌함으로 전선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저들이 그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방치된 동물처럼 죽게 만든 것뿐이었다. 막대한 인명이 희생되는 대전쟁의 와중에 한 개인의 죽음을 놓고 너무 법석을 떠는 것은 소용없는 일임은 나도 안다. ... 그러나 내가 이런 죽음에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전투중에 죽는 것--그래,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하는 바이다. 그러나 투옥이 되고, 그것도 날조된 범죄 혐의도 없이 그저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악의로 인해 투옥이 되고, 혼자 내팽겨진 채 죽어간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이런 따위의 일...이 어떻게 전쟁의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277)

그 행동이 나에게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었는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내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일을 기록하는 것은, 그것이 왠지 스페인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최악의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아량을 보여주었다. 나는 스페인에 대해서 매우 나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스페인 사람들에게 정말로 화를 낸 기억은 두 번밖에 안 된다. 그 두 번도 모두 나의 잘못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들은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이다. 이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견딜 만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현대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지독스러운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285)

내 역할에 무력함을 느꼈던 이 전쟁은 나에게 대체로 나쁜 기억만을 남겼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런 참사--어떻게 끝이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고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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