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에 빨려들듯, 물론 놀라워하면서 들었던 사람은 카타리나 볼룸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가 바이츠메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시하는 계산에 귀를 기울였다. 바이츠메네가 그 모든 것을 계산해 보이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동안, 볼룸은 화가 난 게 아니라, 그저 놀라움과 경탄이 뒤섞인 긴장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가 말하는 동안 그녀는 25,000킬로미터에 대한 해명은 찾지 않고, 자신이 언제, 어디서, 왜, 어디로 차를 몰고 갔었는지 스스로 분명하게 짚어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50)
이 순간에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이렇게 그녀는 표현했다--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 그사이 그녀는, 심문이 왜 `삶의 세세한 구석까지 파고드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심문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게 되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심문할 때 거론된 세세한 사항--신사의 방문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차이퉁>이 알게 되었는지, 게다가 어떻게 하나같이 왜곡되고 오도된 진술로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서 하흐 검사가 끼어들어 당연히 괴텐 사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지대한 터라 언론의 보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아직 기자 회견은 없었지만 카타리나의 도움 때문에 가능했던 괴텐의 도주로 인해 이제 불가피하게도 두려움과 격분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62-3)
모든 우편물이 익명은 아니었다. 익명이 아닌 제일두툼한 편지 한 통은 인팀 페어잔트하우스라는 통신 판매 회사에서 온 것으로, 갖가지 섹스 용품 목록을 그녀에게 제시했다. 그것은 카타리나의 심정에 이미 지독한 충격을 가했는데, 더 몹쓸 것은 누군가가 손으로 덧붙여 쓴 글귀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다정함이다." ...... "너는 왜 내가 보낸 다정함의 카탈로그를 사용하지 않니? 내가 널 강제로 행복하게 해주어야겠니? 네가 그리도 업신여기며 거절했던 너의 이웃. 내가 너에게 경고하마." 쪽지는 인쇄체로 쓰여 있었는데, 그 필체에서 엘제 볼트서하임은 그가 의사 교육까지는 아니어도 대학 교육은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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