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집은 어떤 변화를 통해서도 나와 멀어지지 않았다. 이전의 다른 집보다 더 나의 집이 되었다. 여기에선 남편도, 가장도 아니었다. 여기에선 나 혼자뿐이었다. 배가 난파한 후 고되고 불안한 시기를 투쟁 속에 지냈었다. 종종 내겐 완전히 가망이 없는 전투처럼 보였지만. 여기에서 나는 수년 동안 깊은 고독을 향유하였다. (12)
이따금 저녁나절에 이렇게 앉아 바로 저편 나와 같은 높이에서 떠도는 저녁 구름을 바라보는 기분은 흡족하기 짝이 없다. 나는 저 아래 속세를 내려다보면서 생각한다. 너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나는 이 세계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다. 나는 이 세계와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는 나의 거부감에 대해 충분히 대응하고 보복하여다. 그러나 나를 죽이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살고 있다. 그에게 반항하면서 나 자신을 지켰다. 비록 성공한 공장주나 복서, 혹은 영화 스타가 된 것은 아니지만, 열 두 살 소년 시절부터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 즉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는 우리에게, 우리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조용히, 조심스레 관찰하기만 한다면, 성공한 자나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자가 알지 못하는 것을 많이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배웠다. 관조의 능력은 탁월한 기술이다. 세련되고, 치유력이 있으며, 종종 아주 즐거운 기술이다. (104)
그러나 도화지를 잠시 말린 후 풀밭 위에 세워 놓자 나는 즉시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음을,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음을 알았다. ... 결국 빨간색을 대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예술에서 단 하나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인데! ... 모든 인간은 마음 속에 무언가를 지녔다. 무언가 말할 것을 가졌다. 그러나 침묵하거나 더듬거리는 것이 아니라, 말로든, 색깔로든, 음조로든 실제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단 하나 중요한 것이다! 아이헨도르프는 위대한 사상가가 아니었다. 르누아르도 아마 아주 심오한 사람은 아니었을 게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말해야 하는 것을, 많든 적든 간에, 완전히 표현했었다. 그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연필과 붓을 집어던졌으리라! 또는, 틀어박혀 연습을 계속하였으리라. 연습에 또 연습을. 그리고, 그 역시 무언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무언가 성공을 거둘 때까지 굴복하지 않았으리라. (142)
"아무렴요, 선생님." 마리오가 내게 말한다. "인생은 가혹하지요. 어느 누구에게도 수월하지가 않아요. 하지만, 이보세요. 저녁나절의 포도주 한잔, 일요일에 즐기는 약간의 즐거움과 음악, 그것이 모든 것을 좋게 만들지요." (164)
내 삶을 쉽고 편하게 만드는 방법은 나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그러나 한 가지 기술만은 마음껏 발휘하였다. 아름답게 하는 기술만은. 살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이후로 나는 항상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왔다. 원시적일 때가 많고, 별로 편안하지도 않았지만, 내 창문 앞에는 항상 독특하면서도 크고 넓은 경관이 전개되어 있었다. 나는 테신에서처럼 아름답게 산 적이 없었다. 지금의 주거처럼 충실하게 오랜 세월 머문 적이 없었다. 삼십 오년이나 되었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1907년 처음으로 알게된 테신의 풍광은 예정된 고향처럼, 또는 열망하던 숙소처럼 늘 나를 이끌고 맞이하였다. (1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