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어떤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나는 태양 아래 호박 처럼 누워 있는 어떤 존재였다. 나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말 행복했다. 아마 우리가 죽어서 태양과 공기 또는 선과 지식과 같이 어떤 완전한 것의 일부가 될 때 우리는 그런 것을 느낄 것이다. 어쨌든 내가 느낀 것은 행복이었다. 완전하고도 위대한 어떤 것 속으로 스며들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그런 행복은 잠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29)
"내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애초에 내가 널 만나러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난 정말 너한테 가보고 싶었어. 너한테 늘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 어쩌면 안토니아가 너한테 허튼 짓을 하면 안된다고 나한테 말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너를 그냥 혼자 있게 내버려두었잖아. 그렇지?" (278)
"그럼 그건 네가 우리한테서 영원히 먼 데로 간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널 잃게 된다는 뜻은 아니야. 여기 계신 우리 아빠를 봐. 아빠는 돌아가신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지만,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나한테는 더 실제처럼 살아 계셔. 아빤 내 인생 밖에 계신 게 아냐. 난 늘 아빠와 이야기하고 의논해. 내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난 아빠를 더 잘 알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하게 돼." (301) ......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넌 여기 있는 거야. 우리 아빠처럼. 그래서 난 외롭지 않을 거야." (303)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것이, 이를테면 그녀의 이 따위가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는 안토니아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의 불꽃은 사그라져 버린 많은 여자들을 알고 있다. 다른 무엇이 안토니아에게서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그녀는 생명의 불을 잃지 않고 있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그녀의 피부는 갈색이고 딱딱해졌지만 생기가 은근히 말라붙어서 축 늘어진 피부로는 보이지 않았다. (315)
그녀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보편적인 진리라고 깨닫고 있는 태고에서부터 이어져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내 생각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사랑스러운 소녀가 아니라 고생으로 찌든 아줌마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으며, 평범한 것들 속에서 의미를 드러내는 눈짓 하나 또는 몸짓 하나로 상대방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과수원에 서서 작은 사과나무에 손을 얹고 사과들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그 모습은 보는 이에게 묘목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일에 대해서 선량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녀의 가슴 속에 있는 강렬한 힘이, 지치지 않고 아낌없이 베푸는 그녀의 관대한 마음씨가 그녀의 육체에 드러났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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