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작가들의 서신과 잡지, 문헌자료들이 놓인 작은 전시장 벽에는 1989년 8월 6일 작가 구더신이 했던 한마디가 씌어 있었다. "중국 예술가들은 돈이 없는 것, 큰 작업실이 없는 것 외에는 다 갖고 있어요. 게다가 전부 제일 좋은 것이에요." (86)
중앙미술학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매년 10만 명이 넘는 미래의 예술가와 예술 전문가들이 배출되고 있어요. 그리고 중국은 발전하면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예술의 지위도 더 높아질 거에요. 한국과 일본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으리라고 보지만 중국도 이제까지 서양미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제 졸업한, 앞으로 졸업할 새로운 작가들은 진짜 아시아성을 찾고 그에서 비롯된 진짜 새로운 예술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141)
"집도 없는 야생의 들개처럼 살고 싶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마르고, 병들고, 갖은 일을 겪겠지만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싸우고 싶을 때 싸우고, 친하고 싶은 이와 친한, 그런 들개처럼 살고 싶다." (178)
1952년생, 이 예술가에게서는 단 1%의 '아저씨' 모습도 섞여 있지 않다. 그래서 전시를 위한 미팅도, 인터뷰도 항상 황루이를 만나면 모두 마치 데이트하는 느낌이다. 그의 외관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중국에서, 이 시대에 그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218)
맞아요. 1978년 10월 시인 베이다오, 망커, 그리고 저 세 사람이 문학잡지 <찐티엔>을 창간했어요. 저는 미술편집을 맡아 모든 그림과 디자인, 미술평론을 담당했죠. 저는 시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좋은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저와 베이다오 집은 아주 가까워서 종종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책을 나눠 읽곤 했죠. 당시의 문인들은 다른 어떤 예술영역보다 앞서 있었어요. 미술은 현실, 3차원의 것을 2차원의 평면에 나타내거나 2차원을 3차원의 입체로 나타냅니다. 어떤 형식에든 결과물은 2차원, 3차원이라는 것에 묶여 있었어요. 하지만 시는 달라요. 완전히 상상의 것이죠. 시라는 것은 어떤 시간, 시대, 상황이 있을 때 꽃을 피워요. 그 때의 베이다오, 망커의 시를 보면 정말 그래요. 불가사의할 정도죠. 하지만 우리, 그림 그리는 이들은 그렇지 못했어요. (226)
제도와 사회는 사람을 길들여요. 이 길들여진 습관은 바꾸기 어렵죠. 설사 변화한다 해도 그 변화는 흔적을 남기고요. 러시아에 갔을 때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이 중국과 너무나 닮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중국은 체제를 유지하면서 변화하고, 러시아는 완전히 그 체제가 깨졌지만 두 나라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나뭇가지가 강한 바람에 휘어지듯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겠죠. 이런 큰 외적인 변화에 의해 꺾인, 휘어진 과정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표정이 있어요. 좌절, 그것이 마치 상처의 흔적처럼 그들에게 남아 있는 거에요. (251)
대학 때도 수채화를 그리긴 했지만 베이징에 와서 더 많이 그렸어요. 수채화는 유화보다 훨씬 그리기가 쉽잖아요. 작은 종이 한 장, 의자 하나, 책상 하나, 물감 조금과 물 한 잔이면 그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작품 안에 사람 손길이 나타나는 것이 싫어요. 한 획 한 획 그린 느낌이 작품 안에 출현하는 것이 싫어요. 제 그림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마치 그 사물이 종이 안에서 자라난 듯 매끈하고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333)
그는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부모님을 가졌다. 남방의 도시는 북방에 비해 편안하고 느릿하다. 따뜻하고 좋은 기후를 가진 땅에 사는 사람들은 큰 욕심보다는 생활 속의 작은 만족과 편안한 리듬에 몸을 밑길 줄 안다. 그의 작품에는 바로 이런 자연스러움이 있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여유로움이 아니었자면 이 공격적인 베이징 예술세계에서 그처럼 조용하고 소소한 작품을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더 큰 작품, 더 강한 작품, 더 깜짝 놀랄 만한 파워풀한 작품을 만들어야 눈에 띌 것 같은 이곳에서 그는 늘 그렇듯 웃는 얼굴로 변함없이 자신의 작품을 하고 있다.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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