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의 배신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높은 수준의 불편을 겪으면 결국 더욱 강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말만 되뇐다. 하지만 실제로 조사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역경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실제로는 사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해진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통이나 역경으로부터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높은 수준의 불편을 관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이런 불편의 관리가 불가능해지는 경우에는 반대로 아주 미약한 수준의 불편에도 몸과 마음이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으로 보이게 된다. 그리고 불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더욱 작은 불편으로도 생존본능은 고삐가 풀려 날뒤게 된다. (78)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불편을 변하지 않는 절대불변의 것으로 경험하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불편한 것은 영원히 불편한 것이고, 불편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불편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정 수준의 불편 속에서도 오랫동안 문제없이 잘 살다가, 무언가가 끼어드는 순간 갑자기 그 수준을 더이상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따라서 불편은 우리 생각만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불편은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하나의 경험에 불과하다. 우리의 목표는 불편이 최대로 커졌든, 최소로 작아졌든 상관없이 그 불편을 견디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82)

이제는 고인이 된 심리학자 도널드 헵이 옹호했던 오래된 표현이 있다. "같이 흥분하는 것은 함께 연결된다." 다른 말로 하면, 동시에 일어나는 두 사건은 뇌 속에서 함께 각인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뉴런 집단이 동시에 흥분하면, 초음에는 완전히 개별적인 사건이었다 해도 이제는 결국 이 두 신경네트워크 사이에서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함께 하나로 연결된다. 즉, 두 신경 네트워크가 영구적으로 하나로 묶이면서 두 뉴런 집단이 단일한 하나의 뉴런 집단을 형성하여 그 후로는 모든 신경 흥분이 함께 조절되는 것이다. 고속도로만 나가면 공황발작이 생기고, 특정 음식만 보면 구토가 올라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두 사건 중 어느 하나가 이후에 발생하게 되면 이것이 그 사건과 이제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다른 경험의 신경 네트워크도 함께 일깨우고 만다. (101)

우선 정의를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조건화(conditioning)'란 무언가에 단련되거나 익숙해져서 아무런 노력도 없이 자동적으로 행위가 나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순수하게 신체적 의미로 말하면, 우리는 몸을 조건화시켜서 10킬로그램짜리 아령도 번쩍번쩍 들어올리고, 1킬로미터를 10분 안에 주파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조건화는 이런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몸을 신체적으로 조건화시키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의 생각, 행동, 느낌을 특정 방식으로 조건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는 세포 수준까지도 조건화가 가능해서, 우리 몸이 스트레스나 아예 세균의 침입에 대처하는 방식까지도 조건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염려하는 조건화는 바로 이런 유형의 조건화다. (123)

우리가 바깥세상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잠재의식의 조건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고 반응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모 노릇을 하면서 메시지와 조건화를 통해 쉽게 아파지고, 병을 오래 앓고, 또 세상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만들기도 한다. ... 또 다른 사례를 보면 무엇을 먹고 얼마나 많이 먹는지 등 다른 사람들의 음식 관련 행위를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도 심오한 잠재의식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136)

하지만 잠시 당신의 친구나 가족들을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 사람들 중에서는 차라리 아픈 것을 몰랐으면 더 오래 살았을 것 같은데 오히려 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고 나니 거기에 더 쉽게 굴복하고 더 일찍 죽어버린 것 같은 사람이 없었는가? 그들은 마치 진단을 받은 후에 자신의 운명에 체념하고 아예 싸우기를 포기해버렸던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했던 사람이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생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조건화의 힘은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우리가 얼마나 빨리 늙고, 언제 죽을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49)

젊고 야망도 큰 이 세대는 지겨운 사내 승진 과정에 쉽게 짜증을 느끼고 화를 낸다. 이 세대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결과보다도 의도나 노력을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철학 속에서 자란 세대였다. 이것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지 않고는 그 무엇에서도 가치와 인정을 얻지 못했던 기존 세대의 절망감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생겨난 철학이었다. 그 결과 제크의 세대는 자라면서 무언가 완전히 성공을 거두는 일이 없어도 늘 칭찬을 받으며 컸다. 이 세대는 꼴등으로 들어와도 트로피와 메달을 받고, 그림을 그리든, 숙제를 하든, 하는 일마다 칭찬을 듣고 자란 세대였다.
불행하게도 이 때문에 제크는 자기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보상은 크게 돌아와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고, 자기가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도 빨리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자라온 탓에 제크는 이제 어른이 되어 실제 세상에서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제크는 갈등이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성격이 자리 잡았다. 심지어 그런 회피가 자기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라 해도 말이다. (158-9)

외재화가 동요 수준을 키우는 또 하나의 통로가 있다. 바로 교묘하게 작성된 메시지와 이미지로 우리에게 맹공을 퍼붓는 영화, 뉴스보도, 그림, 잡지, 음악 등과 접촉하면서 그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해하지 않다. 사실 이런 메시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외부적 기준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이런 메시지들은 부지불식간에 외부적 기준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고, 진정한 건강과 내면의 만족을 반영하고 있는 내면적 기준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외재화될수록 우리는 더 큰 불편을 경험하게 된다. (171)

동요 수준은 개개의 스트레스 요인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도한 업무, 직장 동료나 가족과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의 분명한 외부 자극의 형태로 나타나는 스트레스 요인과 달리, 동요는 실체를 종잡기 어려운 존재이고, 보통은 위협으로 경험되거나 불편한 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시간, 동요는 우리의 의식적 각성 아래에 머물러 있지만, 일단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고 나면 결국 명백한 효과를 나타낸다. (181)

그리고 현대기술이 반들반들하게 다듬어놓은 산물인 레코드 앨범 버전보다는 라이브 음악이 훨씬 더 좋다. 그리고 첨단기술의 목표가 완벽함이라 해도, 첨단 기술 영역의 바깥에서 우리가 진정 노력해야 할 부분은 완벽함의 추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수용과 인정의 능력을 메마르게 하고, 타인에 대한 관용을 떨어뜨려 결국 불행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 따라서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완벽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진화하고, 완벽하지 못함을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또 그 안에서 배우며 자신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 있다. ... 완벽함이 아니라 한결같음을 위해 애써야 한다. (184)

과학자들은 환경이 편도체의 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말한다. 더욱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사는 사람들은 편도체의 크기가 더 크다. 이렇게 커진 편도체는 자신의 사회체계를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한 연구에 따르면 편도체는 해마 등 자신과 복잡하게 연결된 다른 뇌 영역과 동반해서 커진다고 한다. (221)

세상을 절대적이지 않은 방식, 즉 이중성의 관점에서 경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핵심 열쇠다. ...... 이것을 좀 더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을 때 내가 즐겨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바로 바다다. 바다 표면은 온갖 혼돈으로 가득하다. 일렁이는 파도와 소용돌이, 해류가 맞부닺히는 역조 등.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수면 아래의 바다는 차분하고 고요하며 수면의 온갖 움직임에도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사실 수면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그저 수면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불과하다. 우리가 하려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수면 아래 자리 잡은 묵직한 바다 같은 내핵(inner core)을 키우려 한다. 겉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안전하고 평화롭게 남아 있을 내면의 알맹이 말이다. (227)

스포츠의 세계 또한 최근의 수많은 연구에서 두려움의 역학이 핵심적으로 다루어졌던 영역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특히나 요즘에는 엘리트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그저 타고난 재능이나 기술 때문에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신체적 특성이나 능력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거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은 바로 불편과 두려움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257)

관리된 불편과 관리되지 않은 불편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 이것은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크나큰 역경은 아예 역경을 접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해로울 수 있다. ... 바꿔 말하면, 불편을 위한 불편은 회복탄력성이나 강인함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불편 그 자체가 아니라 불편을 관리하고 그로부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다. 괴로움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를 잡기는커녕, 궁극적으로는 조건화된 무기력 상태에 빠지고 만다. 진보가 아닌 후퇴와 마비만 찾아올 뿐이다. 하지만 역경과 불편을 관리하는 경우에는 성장과 변화로 이어진다. 옛말이 틀리지 않다. "고통은 피할 길이 없지만, 괴로움은 피할 수 있다." (295-6)

하지만 생존본능에게 구원을 구하지 않고 더 큰 정서적 고통을 인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고통이 오히려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키우고, 직관, 유대감, 영성이 번창하는 좀 더 진화된 의식 상태를 탐험할 수 있는 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불에 데지 않고 감정의 불꽃 위를 통과할 수 있음을 배우지 못하면 이렇게 높게 진화된 의식 상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진짜 문제인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불편한 정보나 경험을 체험한다 해도, 그것을 안전하게 다루고 관리할 수 있음을 뇌, 몸, 심지어 영혼까지도(당신이 영혼을 믿는다면) 알고 있어야만 이런 수준 높은 경험을 실제로 일구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안전을 느끼지 못하면 이런 진화된 의식 상태를 일관되게 끌어안을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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