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힘이 세다
이옥순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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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통상요금의 열 배가 넘는 금액을 불렀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째려보자, 청년이 말했다. "돈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돈 좀 주면 어때요?" 옳은 말이다. 베풀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 인도엔 널렸다. -27쪽

앞에서 말했듯이 인도의 영국인은 권력을 가졌으나 금력을 다 가지진 못했다. 영국이 지배해도 인도 상인의 활약은 줄지 않았다. ... 영국의 끝은 좋지 않았다. 인도가 독립할 무렵에 영국은 인도에 13억 파운드의 빚을 졌다. ...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느라고 인도에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간디가 이끄는 독립운동이 거세지면서 영국은 식민지 인도의 곳간에서 돈과 물품을 맘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 ...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배급제를 실시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영국은 1947년 인도를 떠나면서 빚을 탕감해달라고 요청했다가 단박에 거절당했다. 인도의 부수상 파텔은 빚을 갚는 것이 영국의 신성한 의무라고 대답하여 굴욕감을 안겼다. 오랜 식민 통치를 받아 빈곤한 나라가 된 인도는 이후 그 빚을 요긴하게 받아썼다. -152쪽

인도의 아이들은 이런 설화를 들으며 다수의 횡포와 진리의 험난한 노정을 배우고 새긴다. 공식적인 교육이 부족해도 인도인이 지혜로운 건 이런 전통에서 살기 때문이다. 대개 이야기꾼은 "옛날 옛적에 어느 마을에"로 이야기를 시작해 듣는 사람을 다른 세계에 끌여들였다가 이곳의 현실로 데려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 그 왕자님을 시장에서 봤는데, 내게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지나가더라"로 끝이 난다. 그렇게 하여 먼 시대 남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내 이야기가 된다. -192쪽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활약하는 인도인이 갖는 상대적 장점은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영어가 영국 식민통치의 덕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영어를 말하는 인구가 약 10퍼센트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비율은 알려지지 않는다. 인도정부가 자존심을 지키려고 영어를 구사하는 인구를 조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한 나라가 그 정도의 자존심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영국이 인도를 포기하고 떠난 것은 더이상 영어가 망가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랍니다." ... 이러한 농담은 세계적으로 퍼진 인도인의 영어 실력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비슷하다. 즉 영국에서 태어난 영어가 미국에 가서 자랐고 호주에 가서 병들었다가 인도에 가서 죽었다는 것이다. -202쪽

"내가 보낼 유일한 부탁은 절대적으로 참되고 무저항적 수단으로 조선이 조선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뿐입니다." 이 글은 1927년 1월 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간디의 편지다. 일본의 압제를 받는 같은 처지의 '조선민족'에게 간디가 보낸 격려의 글이다. -286쪽

인도인은 기록의 생산에 무심했다. 인도는 불경이 나올 때까지 역사적 기록이 없는 상태였다.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은 19세기 중반에야 발견되었다. 입으로 전해지다가 문자로 쓰인 베다는 인도의 종교와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 대표적 문헌이다. 고대 인도의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를 알려주는 사료로서 다루어진다. 그러나 베다에는 왕의 정복활동과 왕조의 이야기는 없다. 중국이 방대한 기록과 문헌을 남기며 문화를 계승했다면 인도는 구비전통으로 문화를 이어왔다. -331쪽

이와 달리 개인적인 성행이 강한 인도는 중국처럼 한목소리로 강한 국가를 추구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다양한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도에서 정부가 위로부터 집합적 자아나 애국심을 부과하거나 강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과 달리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인도에서 중앙정부나 국가는 힘이 없고, 그래서 함부로 힘을 쓰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받기 십상이다. -340쪽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중국과 여럿의 목소리가 혼재하는 인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인도의 공식어는 22개로 여러 나라가 모인 유럽대륙처럼 다양성을 자랑한다. 인도아리아어와 드라비다어처럼 완전히 다른 어족이 네개나 있다. 200개의 모국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도는 다름을 관용하는 문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반면에 중국은 사투리가 많아도 다수 한족이 쓰는 한어가 지배적 위상을 갖는 나라로 인도보다 통일성이 강하고, 그래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유리하다. -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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