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 즉 삶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 저의 위치에 대해 제가 품고 있던 근본적인 명제는 제가 '중심부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의 중심부에는 우리의 삶보다 더 풍부하고 매력적인 삶이 있었습니다. ... 마찬가지로, 세계문학은 존재하되 그 중심은 저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실상 제가 생각했던 것은 서양문학이지 세계문학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터키인은 그 경계 밖에 있었습니다. -54쪽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 방 안에 갇혀 오랜 세월 동안 기교를 발전시키고, 어떤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작가는 자신의 비밀스런 상처로부터 시작된 글쓰기를 통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류에게 깊은 믿음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작가의 상처들과 유사한 것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들은 서로 닮았고, 서로를 이해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모든 문학은 인간들이 서로 닮았다는 이러한 순진하고 낙관적인 믿음에 근거합니다. 방에 틀어박혀 수년 동안 글을 쓴 사람은 바로 이러한 인간애 그리고 중심부가 되지 못한 세계에 호소하고 싶어합니다. -59쪽
그렇다고 문학이 사실 기록과 동일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실록과 증언이 제공하는 사실이 얼마나 적은지 알아야 합니다. 게다가 그것들은 종종 사건의 원인과 동기를 감추기도 합니다. 문학이 진실을 다룬다는 말은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사건의 전개 과정까지 남김없이 드러낸다는 뜻이니, 이것이 바로 문학이 가진 힘입니다. -89쪽
진실은 복수로만 존재한다는 문학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문학작품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현실만이 아닌 다수의 현실이 존재하는데도 말입니다. 단 하나의 유일한 진실만을 수호하려는 자들에게 문학은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작가란, 그 직업이 그런 것이지만, 과거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족속입니다. 그들은 너무 빨리 아문 상처들을 열어젖히고, 입구를 봉해놓은 지하실에서 시체를 발굴해내고, 금지된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금단의 음식을 먹어치웁니다. ... 하지만 그들[작가들을 말함]의 가장 나쁜 잘못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적 과정에서 승리한 자들과 한통속이 되기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패배자들이 서 있든 변두리를 즐겨 서성거리면서, 그들이 몹시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내막 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패배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은 승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주위에 패배자를 불러 모으는 사람은 패배자의 편입니다. -123쪽
그렇다고 언어가 경험의 대용품은 아닙니다. ... 노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정의, 언어란 단 한 번도 삶에 부응할 수 없다는 바로 그 깨달음입니다. 언어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언어란 노예, 집단 학살, 전쟁을 '못 박아' 말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또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오만을 갖고자 갈망해서도 안 됩니다. 언어의 힘이란, 언어의 축복이란 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도달하려는 데 있습니다. -244쪽
체면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특수한 당신의 세계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이야기를 지어내십시오. 내러티브는 혁명적이라서 창조되는 그 순간 우리도 창조합니다. -249쪽
시인과 거지, 음악가와 예언자, 전사와 악당, 이 불행한 현실 속에 사는 모든 창조물은 거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우리의 삶을 믿게끔 만들 수 있는 전통적인 도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고독의 핵심입니다. ... 우리 현실을 타인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갈수록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수록 우리를 덜 자유롭게 하며, 갈수록 고독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할 뿐입니다. -265쪽
즉 소설가가 그의 작품에 이르는 데는 수천 가지 방법과 수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중요하고 유일하게 결단력 있는 것은 작품 그 자체입니다. ...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작가가 동시대인에게 전달하는 글은 형식과 내용에 상관없이 증오 때문에 퇴색되지도, 살인 기계의 소음에 가려지지도 않아야 하고, 사랑으로 태어나야 하며, 자유에 대한 사고의 여유로움과 고귀한 인간 정신에 의해 고무되어야 할 것입니다. 작가와 작품이 어떤 한 방식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인간과 인간성이라는 목적을 충족시키지 않는 한, 어떠한 목적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283쪽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예술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저 꼭대기에 이 예술을 올려놓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반대로 예술이 제게 필요한 것이이라면 그것은 예술이 그 누구와도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며, 제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294쪽
약하지만 끈질기고, 정의롭지 못하면서도 정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작가는 수치심도 교만함도 없이 만인이 보는 앞에서 작품을 쌓아올리며, 언제나 고통과 아름다움 사이에 찢어져 있으면서 자신의 이중적 존재로부터 작품이라는 창조물을 이끌어내 그것을 역사의 파괴적인 움직임 속에 우뚝 세워 놓고자 끈질기게 애씁니다. 그러할진대 누가 감히 작가에게서 미리 만들어놓은 해답이나 허울 좋은 도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은 신비롭고 달아나기 쉬운 것이어서 늘 새로이 전취해야 합니다. 자유는 위험하고 우리를 열광하게도 하지만 그만큼 체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목표를 향해 힘겹게, 그러나 꿋꿋하게 걸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먼 길을 가다가 도중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리부터 단단히 각오하고서 말입니다. 그러니 과연 어떤 작가가 제정신으로 덕목을 설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299쪽
끝으로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개인적인 감사의 표시로, 저마다의 예술가가 날마다 스스로에게 무언중에 되풀이하는 오래전부터의 똑같은 약속, 항상 변함없이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공식적으로 드리는 바입니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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