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권하다 -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에게 책은 일차적으로 하나의 상품, 하나의 물건입니다. 솔직히 하나의 물건으로서도 탐탁치 않은 책을 마음의 양식으로 받들어 소화하기는 어렵지요. 반면 똑 떨어지는 물건을 손에 넣은 소비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립니다. 이 책은 그런 미소를 안겨주는 스마트한 물건입니다. 번역 편집 제본과 같은 물질적인 면에서도, 내용의 재미와 접근성 그리고 충실함에 있어서도잘 빠졌습니다.’ 물론 권하는 책의 조건으로서 잘 빠짐은 기본이겠죠. 근래 읽은 여러 책들 중 이 책이 특별히 마음에 남은 까닭은 세 가지입니다.

 

  우선, 저는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와 같은 아테네 철학자들의 철학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해맑고 단순한 시절의 산물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느낌을 이 책이 확실히 교정해 주었답니다! 책을 따라가보니 놀랍게도, 아테네학당의 여러 철학들(복수)은 발생 당시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평범한 개인의 실용적 삶의 원리로서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공동체를 위한 정신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검토되고 있었어요.

 

  둘째로 이 책은 세련된 교양철학서이기 전에 한 평범한 젊은이의 정신적 비망록입니다. 고통과 절망의 긴 터널을 안간힘을 다해 탈출해 본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오는 보다 사적이고 진실하고 겸허하면서도 자신감이 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로 나오는 과정에서 겪은 극심한 정서장애를 인지행동치료로 극복한 저자는 이 치료의 지적 기원에 고대 그리스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파고들게 됩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지요. 책에 “blood knowledge”(피를 흘려 얻은 지식)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책 자체가 종이의 지식이 아니라 피의 지식이기에 주는 감동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복이라는 말이 책에 자주 나옵니다만 사실 이 책이 탐구하는 바는 협의의 행복(happiness)보다는 제대로 산다는 것(well-being)에 철학—더 정확히는 철학하기, 왜냐하면 철학은 실천이니까—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얼마전 AI로 양계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지요. 그런데 사회 전체로 본다면 허약한 교양과 철학의 부재야말로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뿌리째 흔들며 비웃어온 전염병이지 않았나요? 아니 한국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철학 없는 발전에 중독된 나머지 진지한 철학은 행복과 웰빙의 적이라는 궤변을 스스로 믿어 버린 것은.

 

 

  그래서 삶과 위태로운 순간들을 위한 철학이라는 원제를 삶을 사랑하는 기술: 철학을 권하다라고 옮기기로 한 출판사의 결정에도 저는 찬성합니다. 이 책은 그 모든 약점과 시련 그리고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자신의 삶을 애정하도록 만들어주는 거리의 철학에 대한 근거 있는 예찬이거든요. 어느 한 철학학파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진지한 자세로 삶 속에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가능케 하는 변화의 가능성을 평이하면서도 유머 있는 언어로 역설하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좋은 죽음이 별로 없어요. 죽어가는 사람이 직접 대본을 쓰는 그런 죽음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이 자신의 대본을 직접 쓰는 방법이에요.”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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