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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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변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당신은 정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햇살이 비치면 그건 정원을 밝게 비추는 햇살이다. 저녁이 되면 정원이 휴식을 취하겠구나 생각하며 기뻐한다. - P30

인간이 정원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성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부모의 마음‘을 갖춘 때로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만의 정원이 있어야 한다. - P32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릇 토양에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로 나뉜다. 정원가가 당장 길가로 달려나가 말똥을 몽땅 주워 모으지 않는 건 마지막 남은 부끄러움을 차마 떨치지 못해서다. - P53

하지만 이 세계에 보다 깊이 발을 담그면서.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P56

하느님, 매일 규칙적으로 비를 내려주소서. 자정에서 새벽 세 시 사이가 딱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왕이면 차가운 장대비가 아니라 땅속까지 조용히 스미는 가랑비로 내려주소서. - P112

무엇보다 9월은 ‘땅이 새로이 열리는 달‘, 즉 식물을 또 한 번 심을 수 있는 달이다! - P145

자기 농원의 토질이 좋다고 말하는 주인은 한 명도 없다. 늘 거름을 제대로 못 주었다느니 물이 부족하다느니 냉해를 입었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농원의 꽃이 잘자란 건 순전히 자신의 노력과 애정 덕분임을 그런 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 P149

하지만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 지닌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친구여, 그대는 저 구름들조차 우리 발밑의 흙만큼 변화무쌍하지도 아름답지도 경외할 만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P154

정원에 있는 것들은 시시각각 비율이 어그러진다. 그래서 가을이면 식물을 이리저리 옮겨 심게 된다. 정원가가 해마다 여러해살이를 안아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꼭 새끼를 물어 옮기는 어미고양이 같다. 그는 뿌듯해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 심었군. 드디어 조화가 딱 맞네!" 다음해에도 똑같은 말을 한다.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 - P167

신앙조차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여름이면 우리는 범신론자가 된다. 만물을 추앙하며 우리 자신을 자연의 일부라 여긴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우리는 그저 작은 인간이 된다. 꼭 이마에 성호를 긋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서서히 인간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온다. 집집마다 가정을 지켜주는 신을 위해 따스한 불꽃을 피운다. 집에 대한 사랑은 천상의 신에게 바치는 경배와도 같다. - P171

세상에는 멋진 직업이 많다. 신문에 글을 쓰고, 의회 활동을 하고, ... 등등. 하지만 제아무리 훌륭하고 사회에 보탬이 될지라도 ‘삽을 든 사람‘처럼 존재 자체가 하나의 조각 작품이자 기념비요 동작 하나까지 품격 넘치는 직업은 없다. - P172

감히 말하건대, 자연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잠에 든다는 표현도 사실 틀린 말이다. 그저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들어설 뿐. 생명이란 영원한 것. 섣불리 끝을 가늠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보라.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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