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루스 과학사 -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스포루스 인문학 1
정인경 지음, 강응천 기획 / 다산에듀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최근 몇몇 연구는 구석기인들이 농사짓는 법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고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농사법을 알고 있었지만 수렵채집의 생활 방식을 바꿀 절박한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농사짓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자연환경이 변한 것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간도 변화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살아남기 위해서 적응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진화적 압력을 받았던 것이다. - P29

이슬람의 정복과 제국의 건설은 고대 문명의 중심지들을 다시 연결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헬리니즘 문화, 페르시아와 인도의 지적 전통이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이슬람인들은 기독교인, 유대인, 조로아스터교도 등 이교도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 중세의 이슬람 세계는 활력이 넘치는 과학 문화를 창조하며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적어도 500년 동안 번창했다. - P111

이와 같은 이슬람의 번역 사업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고 200년 동안이나 지속된 사회적, 역사적 현상이었다. 또한 정치 엘리트들부터 학자와 전문가, 군인, 상인 등이 참여한 범사회적인 문화 운동이었다. - P113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바람은 특이한 유럽 전통의 결점이 비...유럽권 문명을 오염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이슬람의 과학에서는 과학과 윤리의 분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과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아리스토텔리스의 목적인...이 버려지고 윤리가 과학에서 떨어져 나가자 사태는 급변하고 말았다. ... 과학은 종교, 철학, 역사, 또는 미적 경험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과학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면 큰 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근대과학의 발전으로 인류가 손에 넣은 원자력 병기들의 막강한 파괴력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통제를 받고, 미친 인간이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이 모든 생명체를 전멸시킬 수 있는 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이다. - P139

천문역법에서 보다시피 세종은 뚜력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이 뛰어넘어야 할 산인 중국을 공략하고 그다음이 조선의 독자성을 추구한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대부분의 선진 문물은 중국으로부터 생산되어 주변국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세종은 중국의 최신 지식을 검토하고 조선에 맞는 과학기술을 추구했다. 조선은 더 이상 중국의 아류가 아니며 조선은 중국과 다른다는 것! 세종은 이러한 생각을 천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농학, 의학, 음악 등의 모든 분야에 관철시켰다. - P151

유럽인들은 근대과학이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자부했지만 그 안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가치 중립적인 과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나중에 뉴턴 과학과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정복을 정당화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되었다.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내세워던 ‘문명화의 사명‘에서, 그 문명의 개념은 유럽이 역사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게 만든 과학과 기술에서 나왔다. 과학사학자 니덤은 도덕이 배제된 자연철학잉 동양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웠다. - P276

서양 과학이 동아시아 삼국에 전해졌을 때, 각국마다 받아들이는 양상은 달랐다. 특히 지리적 위치는 서양 과학기술이 전래되는 데 주요 변수였다. 유럽 세력에 쉽게 노출되는 위치에 있었던 일본은 서양 선교사와 상인들이 접근하기 용이했다. 하지만 중국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조선은 서양 선교사[와]의 만남조차 19세기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300년이나 늦었던 셈이다. - P294

이러한 식민지 착취의 패턴은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제국주의 세력이 침략했단 곳곳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서양 과하기술과 산업의 성공은 다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산업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짓밟았다. 식민지 지배는 과학기술과 산업을 신민지 현실에 맞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던 것이다. 그 이후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정치적으로 독립을 해도 경제적 종속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20세기 전 세계로 퍼진 산업화는 불평등을 양산했고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를 심회시켰던 것이다. - P4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