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집께서는 교세확장을 통하여 누긋하게 인원을 불려가면서 힘을 모아 치고 나가자는 셈을 하십니다만 안 됩니다. 푹 가라앉은 백성, 불씨 잃은 백성이 주문만 외고서는 법당에 앉아 저승길 닦는 절의 신도들과 한 푼 다를 것이 없지요. 어디가지나 동학은 위장이어야 하오. 신도들 대가리 수에 희망을 걸지 마시오. - P50
순간 혜관의 낯빛이 흐려진다. 윤도집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기 때문이다. 메마른 정열, 그렇다, 환이의 정열은 메마른 것이다. 메말랐기 때문에 냉철한 것이다. 목적은 있으나 희미하고 과정만이 뚜렷하다. 대담하고 인내심 깊은 것은 야망을 위한 집념 때문이 아니다. 절망의 정열, 그렇다. 환이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걷고 있다. 혜관의 입에선 자신도 모를 한숨이 새어나왔다. - P55
구천아! 수동의 절규다. 환이 돌아보았을 때 최치수의 총구는 자기에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 환의 귀에 연달아 들려오는 수동의 고함소리, 고함은 고함을 부르고 또 부르고 연이어져 연속된다. 강포수, 텁석부리 강포수는 남쪽을 향해 뛰었다. 서쪽을 향해 뛰는 환의 방향을 몰랐을 리 없다. 강포수는 우회함으로써 환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런 시절이. 꽃구름 같은 시절이라 할까 통곡의 시절이라 할까. 지나간 시절은 아름답다. 이제는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산천도 사람도 처절한 비애, 젊었던 육신도. - P67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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