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때 우리한테 동정을 한 사람들도, 나, 나는 고맙게 생각하지 않소. 피멍은 피멍대로 남아야지요. 쓸어준다고." - P102
"위인이 순직하고 입정이 나빠 탈이었지만 도량이 넓고, 무엇이든지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 사욕이라곤 터럭만치도 없는, 목수로서 기량도 좋았고, 옛말에도 도편수는 정승감이라여 한다고들 했으니, 태어날 곳에 태어났더라면 아주 훌륭한 장수가 되었을 게야." - P107
그런 말을 하는 정목수 얼굴은 담담했고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말대로 대패질하듯 세상을 천천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말을 들려준 후 정목수와 용이는 친숙해졌다. - P155
‘지금 애기씨는 내게 있어 한 마리의 꾀꼬리 새끼란 말일까? 나는 애기씨를 위해 누구의 목을 비틀고 있는 게지?‘ - P214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 P354
나쁜 사람 좋은 사람 그런 얘기는 아니고요, 사람의 정이 있느냐 없느냐....... 아무리 남에게 좋게 보여도 정이 없는 자는 거짓말쟁입니다. 네, 거짓말쟁입니다. 가증한 거짓말쟁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그건 거짓말쟁입니다. 자신을 슬프게 생각해본 일도, 불쌍하다 생각해본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슬픈 것처럼, 불쌍한 것처럼 읊조리지요. 남에게는 대자대비한 것처럼 몸짓이 아주 큽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거짓말입니다. - P400
나는 언젠가 어느 주막에서 눈물 한 방울을 쪼르르 흘리며 이 보란 듯 옷고름으로 찍어내는 늙은 영감쟁이를 본 일이 있소. 눈물은 아니 흘려도 슬픈 것이요 비 오듯 쏟아져도 슬픈 것인데 어거지로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을 소중하게 옷고름으로 찍어내는 그 품을 보고 구역질을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 네. 의락 아니란 말입니다. 상전에 대한, 나를 길러 준 데 대한 의리가 아니라 그 말입니다. 서희애기씨는 보물입니다. 연꽃이지요. 꾀꼬리 새낍니다. 윤보 목수는 웃어도 슬펐지요, 울어도 태평스러고요. 그 못생긴 곰보 얼굴이 얼마나 예뻤는지 생각나지 않습니까?" - P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