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를 부탁해 - 그냥 일 쫌 하는 보통의 간호사로 살아가기
정인희 지음, 고고핑크 그림 / 원더박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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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선배는 환자 한명 한명을 다 궁금해했다. 선배와 나의 차이는 단순히 환자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아니었다. 신경외과 전임 간호사 역할에 대한 자부심, 환자에 대한 관심, 신경외과에 대한 애정,이 모든 것이 그 모든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원해서 온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온 자리. 애초에 나에겐 그 기대와 지지에 부응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전임 간호사 자리를 향한 의지는 그게 내 자리로 확정되는 순간 사라졌다. - P62

병원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날 문득 내가 한동안 자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이던 시절보다 생활이 더 엉망이고, 몸두 마음도 이렇게 치이고 있는데 말이다. 문득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환자들에게 위안을 받고 있었다. 환자들을 보며 열심히 살아도 이렇게 한순간에 죽는 것, 살아서 뭐하는 하는 절망감을 느끼는 대신 안도감을 느꼈다. 위안을 받았다. 어차피 결국 다 죽는단다. ... 평범한 하루, 평범한 일상, 평범한 너와 네 주변 사람들이 바로 인생의 행복이고 축복이란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이 순간에 감사하며 오늘도, 내일도 일상을 살아가라며 환자들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 P170

일할 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수술실 간호사로서 최선을 다해 환자 살리는 것을 돕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길고 긴 생각이 꼬리를 문다. 모든 목숨은 귀하다. 죽어도 되는 나이 같은 것은 결코 없다. 하지만 그 세월을 살고도 오랜 생각 끝에 죽기로 결정했다면 우리는 그 의견을 어떻게 다뤄야 할가? 이제 20여 년을 산 사람이 살아보니 별것 없다며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죽겠다고 한다면 정신 차리라고 설득하겠지만, 70, 80여 년 살 만큼 살아 봤는데 아직도 삶이 고되다며 죽고 싶다고 한다면 난 그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간호사로서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 P192

이런 조언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슬프지만, 병원에 너무 많은 애정을 갖지 말자. 병원을 위해서 일하지 말자. 수선생님이나 간호과장님을 위해 일하지 말자. ...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고, 처치실에서 물품 아껴 쓸 궁리를 하며 준비를 하는 나를 기특해하는 사람도 없다. 나를 위해서 일하고 환자를 위해서 일하자. 열심히 일한 나 자신에 뿌듯해하며 간호사로서의 자존감을 쌓아가고, 정상을 다해 돌본 환자가 잘 회복하여 퇴원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의미를 찾자. 병원은? ‘월급이나 주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일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진다. 마음의 상처가 덜하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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