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는 어떤 집에서 살까 - 특별하지 않게 특별하게 사는 집 스토리
김인철, 김진애 외 지음, 김재경 사진 / 서울포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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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좁고 기다란 거실의 특징을 활용해 영화를 볼 수 있게 했다. 스크린을 설치하러 왔던 사람들이 가정집인지 몰랐을 정도로 대형 화면이 가능했던 것은 공간의 깊이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스피커와 기기들을 천정 속으로 밀어 넣었으므로 공간의 단순성은 방해 받지 않았다. 소위 A/V시스템을 갖춘 셈이지만 모두 은밀하게 숨겨져 있어서 텅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생활의 기기들이 드러나면 그것의 용도가 무엇인가 보다 그것의 생김새가 앞서서 보이게 되므로 필요할 때 그 기능을 제공할 수 있으면 되었다. (29)

까뮈는 반복적 일상을 ‘구토‘라고 했다,
나에게 일상이란 반복되지 않는 깨어남이다.
...
그의 일상을 반복된 습관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깨어남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 것이다. (42)

집이란 악기와 같아서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좋은 악기에는 좋은 연주자가 필요하다. (43)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있다. 그것은 건물 관리에 대한 것이다. 결혼 이후 계속 아파트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점차로 단독주택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살면서 이런 것들을 싫건 좋건 배우게 되기 때문에 설계할 때도 어떻게 하면 관리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방수, 냉난방, 전기, 상하수도, 전화, 통신, 단열, 폐기물 처리, 수목관리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을 잘했다고 꼭 좋은 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마치 오래된 충치처럼 집주인의 일상생활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설계자가 잘 알고 미리 챙기면 단독주택도 아파트 못지않게 관리에 들어가는 노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6)

여기로 이사 오면서 한 가지 마음먹은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정기적으로 집과 사무실을 공개하겠다는 것이었다. (59)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주변의 공간들을 내 자신의 고유한 리듬으로 네트워킹하면서 사는데 익숙해졌고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명륜동 일대는 이런 나이 거주 방식을 유지하고 지속하는데 적절한 동네인 듯싶다. 즉 나는 ‘집‘ 안에 있을 때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집 밖에서도 거주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였다. (78)

내가 다섯 살 때, 6.25전쟁이 나고 한달이 채 지나기 전 아버님이 인민군들에게 붙잡혀 간 후 아직껏 돌아오시지 않은 대문의 두툼한 빗장은 이제 열어드릴 수도 없게 사라져 버렸다. 나의 아버님이 다시 돌아올 집이 사라진 것처럼 나의 어린 시즐의 집 또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집의 척도가 되어 지금도 나타난다. 낮은 다락 밑에서 마주친 병풍의 그림들, 이불들, 오래된 책들 책 틈에서 나온 잉크 자욱 선명한, 그러나 읽기 어려운 편지 같은 것들, 손때 묻은 제상과 향로, 향로 속의 재, 재속의 숯 덩어리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던 것들 속에서 한발자국씩 나는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87)

그래서 성장한 뒤 우리는 세 종류의 집 속에서 동시에 거주하게 된다. 유년시절을 보내던 기억의 지과 함게 살고 있는 집, 그리고 만일 우리가 아직도 용기 있고, 사는 것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이다. 이 세 가지 집이 겹쳐서 하나가 된 집에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할 때 ‘집‘으로부터 자유러워지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자기 자신의 신체에 맞는 고유한 리듬을 찾아내어 사는 삶의 방식이다.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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