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놀이 - 그 여자, 그 남자의
김진애 지음 / 반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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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집안일을 남에게 맡기는 집에서는 집 놀이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러니까 너무 큰 집, 너무 화려한 집, 너무 팬시한 집은 집다운 집으로 존재하기 쉽지 않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스스로 집안일을 하는 집이 진짜 집이다. (8)

둘째, 여자 남자는 물론 가족 모두가 집안일에 참여하는 집에서 집 놀이가 일어난다. (8)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바로 ‘이 집에서‘라는 것이다. 살맛 나야 하는 곳은 바로 지금 사는 이 집이다. 집이 되어야 하는 집은 바로 지금 사는 이 집이다. 행복감을 자주 느끼며 살아야 하는 곳은 지금 사는 바로 이 집이다. ‘내 집을 갖게 되면 하지, 좀 더 돈을 벌면 하지, 집이 좀 더 커지면 하지, 내 집을 짓게 되면 하지, 애들이 크면 하지, 좀 더 시간 여유가 생기면 하지!‘ 같은 생각은 핑계에 불과하다. 바로 지금 사는 이 집에서 요모조모 궁리하고 이모저모 실행해 보는 자체가 ‘집 놀이‘다. (12)

우리의 집에서 새삼 다시 찾아야 할 공간이라면, ‘바깥 부엌‘이다. 하늘을 보고 시원한 바람을 쐬고 빗방울도 맞을 수 있는 곳, 바닥에 물을 쏟고 음식을 흘려도 괜찮은 곳, 아무리 어지러워져도 호스로 물을 쫙 뿌리기만 하면 깨끗해지는 곳.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꽃이 활활 피어오르는 지옥처럼 시뻘건 불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최고다. 물론 이런 공간은 부엌과 더불어 식당 노릇도 하게 된다. (49)

분류의 최고 수준은 내가 잘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도 잘 찾을 수 있는 것임을 잊지 말자. 공동으로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족 모두 분류 시스템을 잘 숙지해야 한다. 설령 온갖 가재도구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아야 한다 하더라도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자. 살림이 아내의 영역, 엄마의 영역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존중해주는 척하다가 낭패를 보지 말자. 살림이 나의 책임이자 나의 권한이라는 명분 아닌 명분으로 독점하면서 나만 아는 살림으로 만들어 주도권을 행사하려고 들지 말라. (64)

이렇게 그 무엇을 감추고 있는 집, 또는 그 무엇을 가리고 있는 집은 한마디로 ‘겹‘이 있다. 사람도 겹이 많으면 매력적이듯이, 집 역시 겹을 가진 집이 매력적이다. 한 겹이 벗겨질 때 또 다른 ‘결‘이 나타난다. 또 다른 매력이 나타나는 순간이다. 겹겹이 전개되는 산들의 신비로움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새로운 집, 모르던 결을 발견하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움직인다. (189)

감옥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갇힌 사람의 심리에 엄청난 효과를 미친다고 한다. 사람은 쪽 창문을 통해 보이는 쪽 하늘에서도 온갖 자유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방이 꽉 막혀 있을 때 ‘절망과 포기‘만이 엄습하는 것과 달리, 작은 쪽 창문만 있더라도 ‘희망과 기대‘를 품게 만든다. 인간의 능력은 아주 살짝 보이는 힌트만으로도 더 큰 무엇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192)

내 꿈 중 하나는, 2년에 한 번씩 지방 도시를 바꾸어가며 사는 것이다. 이루기 어렵겠지만 그래서 계속 꿈꾼다. 지방 도시마다 특이한 스타일의 집이 꼭 있다. 전주 한옥에서, 광주의 솟을지붕 집에서, 부산의 달동네 집에서, 제주의 돌집에서 돌아가며 산다면 우리나라 전체를 집으로 여기고 살게 되는 것 아닐까? (223)

오래된 시간은 왜 좋은가?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가치를 느끼면서 여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오래 살아온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다. 깊은 안정감이 들고 왠지 품격이 높아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마치 항상 거기에 있었던 듯한, 항상 거기에 있을 듯한 영원의 느낌도 좋다. 어떻게 오래된 시간을 집으로 끌어들일까? ... 가족의 역사는 그중 으뜸 원천이다. 친정과 본가에서 오래된 물건 하나쯤은 꼭 챙기자, 엄마 아빠가 쓰던 것,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던 것 하나쯤 있다면 이미 기분은 갖춘 것이다. 새것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도 충분히 고마워할 것을 물려주리라 생각하면 가구 고르는 마음도 달라질 것이다. (234)

파티가 열려야 집은 더 집 같아진다. 집은 은밀한 가족 공간이지만 자칫 매너리즘에 빠진다. 너무 잘 아는 사람들끼리 부대끼다 보면 똑같은 일상이 지루해지는 것이다. 파티는 집을 새롭게 만들고 손님들은 색다른 기운을 집에 몰고 온다. 1년에 두 번은 파티, 설날과 추석까지 합하면 1년에 네 번은 파티하는 집이 될 수 있다. 포트럭 파티를 하는 집을 만들어보라.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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