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 1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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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은 집필이 시작될 때 이미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는 결정되어 있기 마련이에요. 가령, 글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고무되어 있지 않으면 필시 자기 역량보다 키가 작은 작품이 나옵니다. 작가의 내면이 문학적 실감으로 충분히 고양된 상태에서 첫 문장을 끄집어 내면 평소에 유지하던 수준보다 높은 단계의 작품이 나올 거예요. (22)

작가는 어떤 존재일까요? 마밀린 먼로의 앵무새가 아니라 내무반의 십자매입니다. 그래서 위기 앞에서 건재할 수 있는 사람, 아파하지 않는 사람, 가스가 새어 나오는데 의연히 살아남는 강인한 사람, 이런 게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 됩니다. ... 이 경우에 십자매는 적어도 세상과 목숨을 걸어놓고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의 상징물로 서 있는 것이죠. 상처를 이타...적으로 써야 되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을 공인이라 함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38)

바로 이 같은 태도로 부단히 취재하고 답사하고 사색하는 것은 창작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걸 언제까지 해야 되는가 하면, 글을 쓰는 내내 작가가 스스로, 무엇보다도 ‘낡은 나‘가 ‘새로운 나‘로 부단히 교체되는 것을 경험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겁니다. 창작의 과정을 통해 작가 스스로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얻지 못하면 좋은 작품을 낳기가 굉장히 어렵죠. (40)

작품을 쓰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단히 어둠 속으로 끌고 가야 합니다. ... 언제나 무대 위에 서 있는 왕자병이자 공주병인 사람은 좋은 작품 쓰기의 필수조건인 ‘세상 바라보기‘가 어려운 사람에 속하죠. 어떤 일상의 영광 속에 놓여있지 말고 그 영광이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 놓여있어야 합니다. (41)

분명한 사실 중 하나는 독자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자리는 반드시 작가가 피눈물을 흘렸던 지점이라는 겁니다. (69)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 전쟁 통엔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71)

"그해 서울 인구는 팔백 명이었다." 하고 말하는 것과 "그때 서울에서는 일천만 칠백구십구 명과 그녀가 살고 있었다."고 쓰는 것은 다르겠지요? 문장 하나가 추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전체를 개괄하면서 집중을 만들어내는 것은 달라요. 작품 전체에서 개괄과 집중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주봉도 놓치지 않고 유기적 총체성도 잃지 않습니다. (138)

최근 작품들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된 것 중 하나가 이겁니다. 대지를 모른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큰 불행입니다. (140)

세 번째로 할 이야기는 장르의 본질을 살리는 일입니다. 장르는 그냥 종류의 차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놓인 현실적 기반의 차이를 안고 있어요. 어떤 것은 서사적인 현실 때문에 발생하고, 또 어떤 것은 서정적인 방식이 아니면 접근 불가능합니다. 이래서 소설과 시는 요리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감동의 계보 자체가 전혀 다른 것에 속합니다. 그래서 소설이라면 소설적 본질, 시라면 시적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해요. (148)

만약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았고, 또 보았다고 하여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면, 재현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의 전 생활이 무의식 속에 지나간다고 하면 그 생활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 이렇게 무...로 돌려지면서 생활은 사라져가는 것이다. 자동화 작용은 사물과 의복과 아내와 전쟁의 공포를 수긍해 가는 것이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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