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도끼다 - 소설가들이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악스트 편집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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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지 않으려 애썼나?
당연히 그렇다. 나에겐 패거리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나를 환대해주고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무리를 좇았던 것 같다. 그런데 결국 실패했다. 영화판에서도, 문단에서도. 운명인 것 같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경험과 감각의 힘으로 계속 뭔가를 쓰는 거다. (34)

내가 세 번 이혼해서 그게 화제가 될 무렵이었는데, 그때 알았다. 나의 불행과 슬픔이 이 사람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그냥 조금 시끄러운 한 여자의 이혼, 이런 사소한 걸 가지고 위협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명랑하게 사는 게 더 못마땅을 부추긴다는 것도 알았다. 망가지고 소설도 못 쓰고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정신병원 가고 이래야 하는데 정치적인 발언까지 당당하니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53)

"쓰인 글의 침묵 속에서, 눈 아래서 언어가 표현될 때 문학은 시작된다. 목표점이 있는 것은 모두 문학에 속하지 않는다. 수신자가 있는 것은 모두 문학에 속하지 않는다." (112)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재능 같은 것은 낭만주의적 신화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 문장이 감상적으로 느껴지니까 문학에도 감상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정말 그 반대편이에요. 문장은 계속 연습하고 고쳐야 해요. 엔지니어가 계측하듯 완성도가 80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러면 100퍼센트가 될 때까지 문제점을 고쳐가며 완성품을 만드는 것에 가까운 것이지, 작가 개인의 감정을 고조시켜서 그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것, 영혼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거죠. (236)

‘나 자신이 아닌 다른 화자가 나와야 하는구나. 그런 화자가 먼저 만들어져 그 화자의 시각에서 써야 하는구나. 그럼 그 화자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것이 그다음으로 저의 관심사였어요. ... 개인적으로 저도 이상에 대해 아는 게 있고 수필로도 쓰지만, 그걸로는 소설을 위한 문장은 안 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화자를 먼저 만들어야만 소설의 문장을 쓸 수 있구나‘라는 걸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됐고 여러 차례 반복 경험하면서 ‘소설을 쓰는 화자는 나보다 더 나은 존재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화자는 저보다 훌륭한 존재인 거죠. 제가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했으면 그런 화자 같은 건 모르고 살았겠죠. 그런데 소설을 쓰니까 그런 화자가 될 필요가 있는 거예요. (256)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타자나 세계를 받아들이는 품도 좁아지고 사유가 왜곡되죠. 자기중심을 잘 유지하고 있으면 공평하고 관대하게 타자를 대할 수 있는데, 그 반대의 경우는 아무래도 그게 잘 안 되죠. 글을 쓸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272)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진하게 자기 값을 치른 소설 있잖아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소설가를 포함한 모든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샤먼에 속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해요. 샤먼이란 자기희생 제의를 통해 남의 고통을 치유하고 덜어주는 존재잖아요. 그러니 무당이 보상을 바라선 안 되죠. 소설 쓰는 행위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권여선 씨의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무당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287)

무엇을 쓸 것인가, 하고 고민할 때마다 저는 그 철창을 떠올립니다. 원숭이에게는 그 철창이 자신에게 가장 절박한 현실이었겠죠.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쓰는 사람의 심정이 절실해야 독자한테도 그 절실함이 전해지게 마련입니다. (297)

백탑파에 속한 인물 중 상당수가 과학자이면서 인문학자에요. 홍대용은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자이면서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기도 하고 묵자에 빠진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유득공도 발해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관상용 비둘기를 연구했습니다. ... 지금 역사가들 중에서 새 연구를 겸하는 이가 있나요? 제가 백탑파를 좋아하는 것도, 그처럼 대부분의 인물들이 다양한 영역을 함게 즐기기 때문이지요.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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