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려면 부득이하게 계산대 너머를 굽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오래 서 있어서 쉬려 했는지 살짝 졸기도 한 모양인 보나파르트 생가의 매표원을 굽어보았던 것은 몇 년이 지나도 가끔씩 떠오르는, 기이하게 길게 늘어진 그런 순간들에 속했다. (15)
하지만 어떤 논리로도 해명되지 않는 임의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고 움직이며, 측정할 수도 없이 사소한 것들에 의해서, 느껴지지도 않는 한줄기 바랍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에 의해, 누군가의 눈에서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인파를 뚫고 전해지는 시선에 의해 결정적인 순간 방향이 바뀌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조차 우리는 실제로 과거가 어떠했는지, 어찌하여 이런저런 세계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진리에는 과거에 대한 아무리 정확한 지식도 얼토당토않은 한마디 주장보다 더 가까이 가닿지 못한다. (21)